2011. 5. 2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18)
본문 : 마 5:33-37
제목 : 맹세하지 말라.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오늘 설교의 주제는 맹세에 관한 것입니다.
맹세라는 말은 여러분이 잘 아는 말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맹세를 “일정한 약속이나 목표를 꼭 실천하려고 다짐함” 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말로 서약, 다짐, 선서, 약속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맹세들을 많이 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고 학습이나 세례를 받을 때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임직 식을 할 때에도 그 직분을 잘 감당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임직 식을 합니다.
이런 서약들이 맹세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랑 신부가 서약을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서로 도와주며 사랑하고 살겠습니까? 라고 하면 손을 들고 예라고 대답을 해야 부부가 됨을 선언합니다.
이런 것도 맹세에 속한 것입니다.

또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많은 맹세들을 합니다.
연초가 되면 올해는 주초를 끊겠다. 올해는 공부를 잘해서 10등 안에 들겠다.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를 꼭 건축하겠다. 이런 크고 작은 약속과 다짐들을 많이 합니다. 이런 것들도 맹세에 속할 것입니다.

이런 맹세에 대해서 옛 사람 즉 구약의 율법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 한 것을 주님께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고쳐서 말씀을 하시기를 도무지 맹세라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맹세에 관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맹세는 귀한 것이며 꼭 지켜야 합니다.
본문 33절 말씀에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했습니다.

“헛맹세를 하지 말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그 뜻을 좀 생각해 봐야 하는 말씀입니다.
맹세는 헛된 것이니까 하지 말라는 말씀인지, 맹세는 하되 지킬 수 없는 헛된 맹세는 하지 말라는 말씀인지를 하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NIV 영어성경에서는 “Do not break your oath”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번역에 따르면 “맹세를 깨드리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맹세를 나쁜 것이니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맹세는 하되 그 맹세를 깨뜨리지 말고 꼭 실천하라는 뜻으로 이해를 합니다.

사실 성경에는 많은 맹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 자신을 들어 맹세를 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22:15-17). 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맹세를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2-13).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민족과 민족 간에 개인과 개인 간에 서로 중요한 일들을 맹세하고 약속을 한 일들이 성경에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른 맹세들의 정신을 살펴보면 아주 중요한 때에만 맹세를 했고 맹세는 꼭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고 한번 맹세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이런 맹세의 원칙을 무시하고 잘못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유전에 따라서 백성들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 23장에 보면 그들이 무엇을 잘못 가르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마23:16-19) 라고 했습니다.

이 가르침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맹세의 원칙을 다 무시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가르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일에만 맹세를 하게 해야 하는데 사소한 일까지도 맹세를 하게 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해야 되는데 성전이나 제단으로 맹세하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아니한 맹세니까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리고 맹세한 것은 다 지켜야 하는데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지키게 했습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는데 성전의 금으로 맹세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성전의 제단으로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제단 위의 예물로 맹세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무슨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까?
금이나 예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전이고 제단입니다.
그러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이요 예물입니다.
바치면 자기들이 가지는 것이니까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맹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했습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우리 스스로 맹세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34-3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가르친 바에 의하면 맹세는 선한 것이고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지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들이 맹세를 하고 지킬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도무지, 절대로 맹세 같은 것은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믿게 하려고 하늘을 걸고 맹세하고 땅을 걸고 맹세를 하고 성전을 걸고 맹세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자기의 머리를 걸고 맹세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늘이 땅이 예루살렘이 자기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머리를 걸면 자기가 자기 머리카락 하나라도 마음대로 희고 검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염색이야 하겠지만 머리카락에 나타나는 그 세월을 마음대로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란 내일 일을 모릅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맹세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들인데 남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제가 소싯적에 그런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습니다.
남의 말을 들이니까 금방 돈이 벌릴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영국에서 일본에서 이런 물건을 사려고 찾고 있으니까 이 물건 사서 수출하면 떼 부자 된다고 해서 여기저기 가서 돈을 빌립니다.
예 돈 천만 원만 빌려 주시면 넉넉잡고 석 달 후에는 이자 쳐서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맹세를 하고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서 투자를 했는데 장사는 무슨 투자한 돈만 날리고 빚만 지고 그런 일 많이 했습니다. 

감언이설에 속아서 남의 말만 듣고 따라다니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뭔가 사업을 하려면 그 분야를 전공하든지 오랜 경험이 있던지 자신이 잘 알아야지 남의 말 듣고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런 꼴 안 보려고 목회를 시작했는데 목회자가 되어도 그런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전도사 때 어떤 목사님은 은행을 만들어서 나를 믿음 은행 은행장 시켜준다고 하는 목사도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세상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 은행장을 하시면 잘 하실 것 같다고 해서 조금은 그래도 미련을 가지고 은근히 믿었습니다.
은행은 무슨 은행 은행장은 고사하고 쫓아내지나 말지 기도해보니까 전도사님 우리 교회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교회에 가시라고 그래서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쫓겨났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제가 이렇게 엎드려 있으니까 불쌍했든지 자기가 학교를 세우는데 와서 교장선생님 해 달라고 해서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그 때 따라갔더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제가 우리교회 선교사님도 계시고 부목사님도 계시고 전도사님도 계시지만 장래에 대해서 무슨 말 잘 안합니다.
내일 일을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일은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이렇쿵 저렇쿵 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남을 속이는 일을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돈을 빌리거나 남에게 피해가 될 만한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나 또 다른 사람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직분 자들은 정말로 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말을 할 때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잘 못되면 하나님까지 욕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이 맹세하지 말라는 교훈을 제 3계명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연결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이름까지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지식과 판단 능력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틀림이 없어 이것은 죽었다가 깨나도 확실한 것이야 절대 잘못될 일이 없어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라는 말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만 절대주권자이시고 우리는 다 상대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말은 조건들이 다 붙어 있습니다. 
나에게 이 말을 해 준 사람이 정말로 틀림이 없을 때, 또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때 모든 일들이 그 사람이 말 하는 대로 다 될 때 그런 조건이 항상 붙어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자기 생각대로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인터넷 공간입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들을 하지만 거기에 진실이 있는지 잘못되면 책임을 질 사람이 있는지 아무도 보장을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익을 위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들은 자기의 이이을 위해서 유익한 말만 하고 부작용이나 잘 안 되는 부분은 절대로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장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 세상에 왜 대머리가 있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전에 해양심층수를 개발해서 그 물을 좋은 물이라고 선전을 해서 몇 천원 주면 될 물을 수십만 원씩 주고 사서 먹었습니다.
깨끗하고 오래 먹을 수 있고 영양분이 충분한 물이라고 선전을 하니까 정말로 좋은 물인 줄 알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먹을 수 있는 물이면 됐지 더 깨끗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주 사다가 먹으면 됐지 오래가는 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정적으로 영영분이 많다고 해서 비싸게 샀는데 보통 물의 수십 배 영양분이라는 말만 들었지 물에 영양분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는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비싸게 주고 산 물에 들어 있는 영양분은 콩 반쪽만 먹어도 되고 멸치 한 마리만 먹어도 그만한 영양분이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그것도 장사꾼이 하는 말만 듣고 그것이 사실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헛된 맹세를 하는 사람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가 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 폐단 때문에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본문 37절 말씀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을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닌 것인데도 옳다고 말을 하고 옳은 것인데도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바른말만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맹세와 관련해서 해석을 하면 맹세란 옳은 것을 옳다고 할 때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생들의 맹세는 그와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닌 것을 옳다고 말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때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맹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말하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맹세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와 아니오를 바르게 말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야 되고 우리 체면도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옳다고 다 예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 우리 교과서에서 어려운 말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뜰의 콩까지가 깐 콩 콩깍지인가 안 깐 콩 콩깍지인가. 이런 발음하기 어려운 것이 어려운 말이 아니라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말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신앙고백에 있어서 예와 아니오는 참 중요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과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가 나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이 예와 아니오 라고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예라고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하고 보증인을 세우든지 맹세를 하든지 했으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것은 다 보증인이고 맹세고 필요가 없지만 신앙고백에 예라고 하는 것과 아니오라고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만은 그 말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혜택이 얼마나 큰 것인데 그냥 말로만 예하면 된다고 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전 재산이라도 걸고 목숨이라도 걸고 맹세를 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인데 그냥 예라고만 하면 된답니다.

너무나 쉽고 좋은 것이니까 우리 한번 다시 해 볼까요?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을 믿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까?

이 대답에 맹세가 필요 없습니다. 보증인도 필요 없습니다. 바르게 살겠다는 서원도 필요 없습니다. 충성하겠다는 맹세도 필요 없습니다.
예라고 대답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분이 바로 이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모여서 이 말씀을 받고 이 말씀에 예라고 대답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이런 귀한 신앙의 고백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율로게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맹세는 귀한 것입니다.
중요한 일에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고 그 맹세를 지키는 일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옳은 일은 옳다고 하고 아닌 일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귀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