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12. 광성교회 성례식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105)
본문 : 눅 22: 19-20
제목 : 나를 기억하라.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여러분들은 다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마지막 유월절을 보내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누었던 마지막 식사 자리라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먼저 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그 그림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인가 하고 관심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를 모델로 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데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예수님을 그린 모델과 가롯 유다를 그린 모델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그리고 가롯 유다를 그리기 위해서 감옥에 갔는데 가장 적당하게 악하게 생긴 사람을 모델로 지정을 하고 그렸는데 사실을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전에 예수님의 모델을 했던 사람인데 어쩌다가 타락하여 이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그림에서 무슨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그림 속에서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십자가에 우리 대신 죽으실 시간을 얼마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십니다.

떡을 떼어서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명령에 따라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예식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앞서 말씀드린 그 최후의 만찬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생각해야 될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기념하라, 나를 기억하라, 나를 잊지 말고 생각해라 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19절 말씀 중에 "나를 기념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기념하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ϛ)라는 말인데 이 말은 아나(ἀνά)라고 하는 말과 밈네스코(μιμνήσκω)라는 말이 합해서 된 말입니다.

아나(ἀνά)라고 하는 말은 "다시" 또는 "뒤로"라고 하는 말이고요
밈네스코(μιμνήσκω)라는 말은 "생각하다" "기억하다" "회상하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생각하고" "다시 기억하고" "다시 회상하라"는 말입니다.

기념하라는 말이나 기억하라는 말은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념식을 연상케 하는 기념이라는 말보다는 기억하라는 말이 우리의 감각에 더 실질적인 것 같아서 나를 기념하라는 말 보다는 나를 기억하라 라고 오늘 설교 제목을 정했습니다.

오늘 이 성찬예식에 참여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예식에 참여하면서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무엇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셨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나(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본문 19절 말씀에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 몸을 십자가에 달아서 내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너희를 사랑한 나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이 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이 사랑이라는 말을 실천하며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작고 그나마 너무나 이기주의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잘해 주어야 사랑을 하는 것이고 나와 어떤 이권관계가 있어야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도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는 그저 형식적이고 볼 때만 눈 앞에서만 그저 사랑하는 척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우리 인간들의 그런 알량한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온 우주에 홀로 뛰어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전에 어떤 교회에 집사 임직 식에 참여를 했습니다.
임직 받는 집사님이 답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선거철인데 일개 도시의 장이나 의원이 되어도 너무나 감격스러워하고 그것이 되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 줄 모르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일군으로 임직을 받게 된 것이 너무나 영광스럽다고 울먹이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일꾼이기에 앞서서 우리는 우주의 주인이시요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으며 모든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오늘도 이 우주의 만물들을 다스리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다 잊더라도 나의 이 사랑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고 도 새기면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최고의 것을 희생하시면서 주시는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 독생 하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서 몸소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자신이 지은 사람들에게 모진 고난을 받으셨고 끝내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고통을 체험하시면서 까지 사랑하신 그 가치 있는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요로우신 분이니까 그저 먹다 남은 찌꺼기 쓰다 남은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희생하면서 몸소 고난을 당하시면서 베푸신 그 가치 있는 사랑을 최고의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로 주시는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 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는 것, 부활하는 것,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 이런 최고의 선물을 우리가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선물로 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선물이라는 것은 너무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문 꽃 한 송이라도 선물로 받으면 마음이 기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은 우리의 화폐가치로 측량을 할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시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뒤로하고 인간의 사랑에 매여서 주님을 떠나 다른 데로 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희생적인 사랑을 뒤로하고 좀 편하고 좀 잘살려고 주님을 떠나 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귀한 선물을 뒤로하고 꼴랑 돈 몇 푼 때문에 이 세상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세상으로 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날 사랑하시기 위해 그 험한 십자가에 몸 버려 피 흘려 희생을 당하신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나(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본문 20절 말씀에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받게 될 위대한 축복의 약속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새 언약"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옛 언약과 구별이 되는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은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지켜서 의롭게 되게 하는 그 율법은 오히려 그대로 행치 못해서 그 율법에 의해서 정죄를 받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라고 했습니다.

이 율 법외에 새롭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옛 언약 말고 새로운 언약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새로운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2)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성령님에 관한 약속을 여러분들이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고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약속이 없었다면 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받는 혜택들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주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약속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신앙생활의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기도 하고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고 헌금을 하기도 하고 착한 것처럼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만 그 믿음이 참 믿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힘만 의지하는 신앙은 패할 수밖에 없는 신앙입니다.
불평과 불만 마지못해서 억지로 지겹게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약속으로 보내주신 그 성령을 마음에 모시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삶이된다는 것입니다.

3)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그 언약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를 대비하면서 사는 것이 이 약속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신 그 이후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주님께서 우리와 맺은 언약은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에게 유리한 언약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꼭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끝내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 약속은 피로 맺은 새 언약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그 언약을 보증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언해서 말씀을 드릴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기억하면 할수록 좋은 것을 다시 기억을 해야 된다고 강조를 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습성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금방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습성입니다.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성례식은 평생 한번만 해도 되지요
그러나 자꾸 잊어버리니까 잊어버릴 만하면 또 해서 생각나게 하구요 또 잊어버릴 만하면 또 해서 기억이 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주 성례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성례식을 자주 하지 않으니까 오래도록 꼭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그 좋은 언약들을 잊지 마시고 꼭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과 그 언약 안에서 사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 몸을 십자가에 피 흘리게 내어 주시고 기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이 성찬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이 성찬에 참여하시면서 그 의미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고 이 사실을 이지 말고 늘 기억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