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4.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23)

본문 : 마 6:2-4

제목 : 구제할 때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가 산상보훈을 공부하면서 성도된 우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 된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여 줘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그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어서 사람들이 우리가 행하는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착한 행실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구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하여야 할 가장 선한 일 중에 하나로 여겼는데 이런 선한 행동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뭐하느냐고 항의를 하고 비웃는데 당당하게 이런 선한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랑스럽게 나팔을 불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당시의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보일 목적으로 가식적인 구제를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나 금식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구제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된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진실함이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구제를 하는 체 하는 잘못에 대한 지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구제와 같은 선한 행동들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형식적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혹은 사람들에게 보여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이런 선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크리테스(ύποκριτής)는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나 가장하거나 꾸미는 것을 의미할 때 쓰는 말입니다.

구제를 하는 것을 착한 일을 하는 척 연기를 하거나 꾸미거나 가장을 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선포하여야 하는 교회들이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처럼 약장사들이 가짜 약을 가지고 거짓말을 말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을 행하거나 심지어 교회에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저의를 의심하면서 좋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가 구제와 같은 선한 일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위선적인 행동이 가미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구제를 많이 하시되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심으로 하나님께 많은 상을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구제는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본문 2절 말씀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라고 했습니다.

구제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제는 교회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구제를 해야 한다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구제할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5:10) 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제를 할 때에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하는 모든 일에,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언의 말씀에는 구제에 대한 교훈들이 많이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4)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흩어 구제를 하면 가난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제를 하면 더 부자가 되고 아끼는 자가 오히려 가난하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구제를 하면 풍족하게 되고 남을 윤택하게 하면 자기도 더 윤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따라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제하는 것이 그들의 공적을 쌓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심이 많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가 하면 구제를 하는 것을 보고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고 구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제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소유를 팔아서까지 구제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구제는 마치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어 거기 보물을 넣어두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구제로 쌓은 공로는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더 많은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참된 경건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경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제는 고아와 과부들을이 당하는 어려움을 돌봐주고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며 그런 구제가 참된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고아와 과부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교회가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구제는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구제가 아닐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육신적인 면에서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구제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복지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돌 봐 줄 사람이 없는 고아나 과부는 정부에서 기본 생활은 하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구제는 어려운 사람에게 쌀 한 말 주는 것이 구제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도록 해 주는 것이 참된 구제일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열심히 노력을 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참된 구제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이 아동 청소년 복지사업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정말로 좋은 구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고 지혜롭게 살게 해서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남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을 바꾸어서 열심히 노력을 하여 오히려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 만들어서 달고 다니는 직책이 하나 있습니다.

가난세습 방지 위원회 위원장이 그 직책입니다.

가난이 세습되지 않도록 어려운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할 때 이 구제를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회사나 개인이나 교회나 구제를 하는 일 즉,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기부를 하고 나누어주는 것을 높이 평가를 합니다.

회사가 돈을 벌어서 움켜쥐고 있으면 나쁜 회사라고 합니다.

복지시설에 기부를 많이 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합니다.

연예인들도 돈을 벌어서 기부를 많이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개인들도 많고 적고 간에 기부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특별이 이 구제하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구제하는 일에 많이 투자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제를 많이 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들 머리로 하고 성도들이 각 지체가 되는 한 몸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은 우리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이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그들도 우리와 같이 잘 살게 하기 위해서 힘을 합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빨리 성장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누어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나누어주면 더 풍성한 교회 더 풍성한 성도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2.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2절 말씀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제는 반드시 해야 할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 구제를 행함에 있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구제는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음으로 하나님께 받을 상을 이미 받아버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영광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구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이나 거리에서 구제를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팔을 불면서 자랑을 하면서 구제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 저 사람 참 의로운 사람이구나. 라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구제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구제를 많이 하면 다 좋은 것인데 좋은 일 하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셨을까요?

 

 

1)그런 외식적인 구제는 내용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그것도 정말로 많이 주는 사람들은 특별히 자랑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 줄 것이고 많은 칭찬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별 것 주는 것도 없으면서 요란하게 나팔만 불어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길거리에서 회당에서 요란스럽게 하는 것으로 보아서 거기도 먹을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십중팔구는 별로 주는 것도 없으면서 소리만 요란하게 냈을 것입니다.

 

 

2)그런 외식적인 구제는 받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구제이기 때문입니다.

구제를 함에 있어서 구제를 받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뭘 좀 주면서 받는 사람을 거지취급을 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정말로 구제를 받아야 할 사람은 거기 나타나지 않고 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더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그들을 배려하면서 구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 선한 일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선한 일로 내가 잘못한 죄를 다 탕감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한 일 조금 하고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선한 일을 하고도 나는 부족한 죄인임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한 일로 자랑을 해서도 안 됩니다.

 

 

3.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본문 3절 말씀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라고 했습니다.

 

 

구제를 할 때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하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은 그렇게 겸손하게 말없이 은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구제를 한다고 해도 사실은 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나의 공로로 자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것도 안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비교를 하면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 할 것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은 말없이 은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남에게 자랑하려고 하지 말고 남들이 모르게 아주 은밀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 구제를 하지 말고 교회를 통하는 것도 은밀하게 하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개인의 이름으로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이름으로 하면 자신은 감춰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이중으로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의 또 한 가지의 의미는 반대급부를 바라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할 때 나중에 그 은혜에 보답을 받기 위해서 혹은 인사라도 받기 위해서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오른손은 베풀고 왼손으로 거두어들이는 사람을 빙자한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풍습 그러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날에도 그런 의도로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러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잔치 때 축의금을 받거나 장례식 때 조의금을 받으면 어떻게 합니까?

누가 얼마를 했는지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사람이 일을 당하면 얼마를 했나를 보고 거기에 맞추어서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상부상조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는 기록을 없애야 합니다.

남에게 베푼 기록은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기록하면 꼭 나중에 서운한 마음이 생겨집니다.

내가 전에 얼마를 도와줬는데 나에게 감사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동양속담이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선한 일을 하고 그것을 바다에 던지라 물고기들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리라”

 

 

우리가 행한 모든 선한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일일이 기록을 하시고 계십니다.

양과 염소의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우리 주님은 우리가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준 것 까지도 다 일고 계시고 그것을 칭찬하시고 상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 한 것은 다 물에 던져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4.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십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지 않고 은밀하게 선한 일을 할 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할 때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큰 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교만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을 통해서 그런 교만이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오게 한 죄악인지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항상 나 자신의 기쁨보다 나 자신의 자랑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자각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성공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의 선한 일에 대해서 분에 넘치는 보상을 하실 것입니다.

그 상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은밀한 중에 많은 선한 일들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선한 일을 할 때에 우리 속에 있는 거짓들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서서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을 행할 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