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7.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0)

본문 : 마 6:13

제목 : 나라와 권세와 영광.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인 송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이 부분을 괄호 안에 넣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불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 부분을 괄호 안에 넣어서 처리하거나 어떤 역본에는 생략을 한 것은 이 부분이 오래된 중요한 사본들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원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원본이 있다고 한다면 수천억 수조원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원본을 보고 쓴 사본들이 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이 구절을 생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후대 사람이 기도를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하고 끝내니까 좀 이상하고 또 다른 기도문에는 보통 송영이 있어야 되는데 여기에는 빠져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채워 넣은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시시한 부분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없었던 것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본을 만든 사람들이 실수로 이 부분을 놓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놓쳤든 누군가가 삽입을 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기자를 통하여 기록하신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본문의 송영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대개”라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예날 성경찬송가 앞에 나오는 주기도문에는 “대개”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습니다.

성경 본문에는 없었지만 주기도문에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버릇이 돼서 대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찬송가를 편집하신 분에게 왜 대개라는 말을 뺐는지 질문을 해보았다고 합니다.

이유를 말하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대개라는 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대개라고 쓰는 단어는 한자어가 다른 대개(大槪)라는 말로 이해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대강, 대부분”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에서 대개라는 말은 한자어가 다른 단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쓰는 대개는 한자어는 개(槪)자를 대개 개자를 써서 대개(大槪)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에서는 뚜껑 개(蓋)자를 써서 대개(大蓋)라고 합니다.

“일의 큰 원칙”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 대개(大蓋)입니다.

 

 

헬라어 원어는 호티(ὅτι)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왜냐하면”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for로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기도를 마치고 왜 이렇게 기도하느냐 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죄 사함을 구하고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느냐 하면 그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권세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기도문처럼 기도하는 이유를 바르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이 송영의 부분이고 그래서 그것을 연결하는 대개라는 말이 참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생략하지 말고 그대로 사용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비단 주기도문만 그 이유를 알고 기도할 것이 아니리라 모든 부분에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참 중요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믿음 말고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고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왜 하필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새로 정하신 의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우리의 삶이 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주일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구원해 주셨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찬송을 불러야 합니까?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설교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까?

비록 목사라는 한 인간이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을 하고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왜 매주 이렇게 설교를 들어야 합니까?

왜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하실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기도를 마친 후 송영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왜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기도하는 것이 참된 기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나라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나라"라는 말은 "주권" 곧 “다스림”을 뜻하는 말입니다.

천국의 가장 첫째 되는 뜻은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이나 화려한 환경이 아니라 왕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천국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다스리시고 내가 그 다스림에 복종할 때 우리도 이미 하나님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으면 그 가정이 천국이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관계가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살면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사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다스리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는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와 같을 수 없습니다.

누가 대통령을 한다고 해도 거기는 온갖 실수들이 있게 마련이고 공평과 정의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공평과 정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실 수 있는 만왕의 왕이시오 참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주권이라는 말을 하나님께 쓸 때 절대주권이라는 말로 씁니다.

하나님은 상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대주권이 있는 것은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실 때 거기 공평과 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절대 권력을 준다면 거기는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들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권력을 싫어하고 순종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교회에서 순종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참 싫어합니다.

권력에 희생당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순종은 사람에게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기도가 달라집니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와 같은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왕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그 하나님의 나라가 왕성해지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먼저 기도합니다.

 

 

그들은 나 자신이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게 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완전한 나라요 영원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에 이미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종이나 혹 회사의 사원이 그 주인이나 사주에게 결재를 올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 때 그 결정의 권한을 절대적으로 그 주인이나 사주에게 있는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원이 사주에게 종이 주인에게 결정해줄 것을 강요할 수 없고 다만 그의 생각을 말하고 주인의 뜻과 일치하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결정은 주인이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도할 때도 이러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온갖 것을 구할 수는 있지만 주시고 안 주시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즉 구하는 자의 태도나 공로나 열정이나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혹시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거나 잘못 구한 것이나 불리하게 구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라는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고집스럽게 하는 기도는 이 하나님의 주권에 반항하는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도 끝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덧붙였음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2. 권세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권세"→"두나미스"→"다이내믹"→"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권세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마치면서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잘 못 되었거나 응답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기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무한하십니다.

말씀으로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일은 없으십니다.

다만 우리를 위하여 안 하시는 것일 뿐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제단과 대결하던 바알의 제사장이 하던 것처럼 광적으로 상처를 내면서 자학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도할 때에 마치 하나님께서 주무시기나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를 드려서도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능력이 영원토록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권세라고 할 때 능력이라고 할 때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본 말씀은 복음의 능력일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라고 했습니다.

여기 능력이라는 말이 권세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죄인이 바로 의인이 되고, 사탄의 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신비한 몸으로 부활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도 믿지 못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가셨다고 하면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물 위로 걸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도 돌을 밟고 지나가셨는데 제자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는다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그 전능하심으로 못하실 것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3.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을 교회에서 많이 씁니다.

개혁주의자들의 주장 중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주제가 있을 만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막상 영광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 말을 잘 모릅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를 말하고 비슷한 말로는 명예, 광영 등이 있고 반대말로는 치욕, 불명예, 굴욕 등의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광이란 최고로 빛나는 것이고 최고로 아름다운 것이며 최고로 선한 것이며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이며 최상의 기쁨 최고의 명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최고의 칭찬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떤 순간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영원토록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최고의 가치와 칭찬을 사람에게 돌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만 이런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마라톤 선수가 세계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정말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순간입니다.

시상대에 올라서 금메달을 받고 인터뷰를 합니다.

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

예 저를 이렇게 훈련시켜주신 감독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 저를 낳아주시고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예 저와 함께 이 고난의 길을 걸어온 사랑하는 아내에게 돌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저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일을 하지도 못하고 또 했다고 해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미화하고 자랑하기에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나 영원한 세상에서나 선하시고 좋으신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십니다.

칭찬을 받으실만한 분은 인정을 받으실만한 분은 영광을 받으실만한 분은 우리 하나님 밖에 없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도와주실만한 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만한 분은 우리가 잘못기도했을지라도 더 좋은 것을 주실만한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주기도문 강해를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할 것은 그저 주기도문을 시간에 따라 순서에 따라 외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뜻을 깨닫고 그 뜻을 깊이 새기면서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기도로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 기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뜻이 이루어 지이다. 라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욕심은 몇 십 년 먹을 것을 쌓아 놓고 싶으면서 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받을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이나 마귀의 죄를 미워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개, 즉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나라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권세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영광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올바른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