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7)

본문 : 마 6:26-27

제목 : 공중의 새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전서 강해설교를 들으신 분은 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염려에 대한 교훈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때 염라대왕과 그의 동생 염려대왕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세상에는 염라대왕이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염려대왕이 있는데 죽고 나서 염라대왕을 만나면 안 되고 이 세상에 살면서는 그 동생 염려대왕을 만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서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염려대왕을 만나서 지옥 같은 세상을 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염라대왕이나 염려대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어 만들어 본 이야기입니다.

염려라는 것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염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과 재물 이 두 주인을 같이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 생명을 위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아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우리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도 염려에 대한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26절, 2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공중의 새를 보라.

본문 26절 말씀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옛날과 다르게 그렇게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을 옷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는 세상입니다.

좀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 걱정하고 좀 더 멋있는 옷을 입기 위해서 걱정하지 아예 없어서 걱정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의식주 때문에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입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먹고 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잘살아 볼까 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 됐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먹여 주시는데 뭘 걱정하느냐 라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돈을 잘 벌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법칙은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는 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신 삶의 법칙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동원하여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여기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지나친 염려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하라는 명령은 따르지 않고 그냥 걱정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고 있으면 더 이상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그냥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서 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이 씨를 뿌리는지 새들이 추수를 하는지 새들이 창고에 곡식을 쌓아두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새들은 우리처럼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회사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거나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매일 매일 나가서 자연 속에 있는 먹이들을 먹으면서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인간들이 새를 잡으려고 독약이 든 음식을 뿌려놓으니까 그것을 잘못 먹고 죽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죽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새들을 기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새들을 다 먹고 살게 해 주시기 때문에 새들이 다 먹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새들이 몇 마리나 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떤 분이 조사를 해 보았는데 대략 1000억 마리쯤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의 인구를 60억으로 본다면 사람 숫자보다 16배 이상이 많습니다.

 

이 천억 마리의 새들이 다 무엇을 먹고 살까요?

새들이니까 뭐 별로 많이 먹지 않겠지 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새들도 엄청 먹어댑니다.

어느 교수가 제비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제비가 새끼를 키울 때 하루에 100번 이상 먹이를 물어다가 주더라는 것입니다.

어미 제비가 3주 동안에 곤충 2천 마리 정도를 잡아다가 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숫자의 새들이 그 많은 먹이를 먹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그 새들을 먹이실 때 우리처럼 사료를 만들어서 먹이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산 그대로를 먹이시는데 다들 잘 먹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하시려고 만물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만물들을 삶의 도구로 삼아서 먹고 입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는 만물들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염려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공중의 새를 보고 깨달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게으른 자에게 가서 개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겨울에 먹을 것을 모으는 개미를 보고 그 근면성을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여서 겨울을 잘 지내는데 베짱이는 노래만 부르고 놀다가 추운 겨울에 어려움을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개미와 베짱이의 삶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베짱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미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개미를 중심으로 보면 1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짱이는 6개월 밖에 못산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개미가 베짱이를 따라 여름에 노래나 부르면서 놀고먹었다면 겨울에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베짱이가 여름에 놀지도 못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만 했다면 참 억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수고한 모든 것이 다 개미의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6개월만 살다가 죽는 베짱이에게는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만 먹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겨울을 지내야 하는 개미에게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먹을 것을 모을 수 있는 기술을 주셨습니다.

개미나 베짱이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에게 먹고 살도록 다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120년을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물론 원래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지만 타락한 이후의 수명은 120년으로 제한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2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기술들을 주셨습니다.

농사를 짓고 짐승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고 하는 기술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서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방법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똑똑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 외에 더 많은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여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창조질서를 위반하는 인간의 기술 때문에 우리는 점차 더 악한 환경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가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도 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놓지도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시기 때문에 걱정 없이 잘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만물들은 그 만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시고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역시 26절 하반절 말씀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르신다면 우리는 이 새들보다 더 귀한 인간이기 때문에 열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새를 부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 부럽습니까?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를 보면 참 부럽습니다.

나도 저렇게 날아갈 수 없을까? 그래서 이 세상 어디든지 날아가서 모든 것을 다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새처럼 날아가기 위해서 만든 것이 비행기입니다.

우리 직접 날개로 날지는 못하지만 비행기 날개를 이용해서 새들보다 더 높이 날고 있습니다.

 

새들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하늘을 날고 있지만 머리가 없어서 아직도 스스로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지혜가 있어서 새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날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의 어느 동물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의 것들과 다르게 구별해서 만드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를 하셨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을 주셨고 신비한 몸도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우리가 짐승들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고 생각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좀 귀엽고 잘 따른다고 해서 개를 인간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자연의 만물들이 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주셨기 때문에 그 자연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와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개를 키우다가 죽으면 사람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고 무덤을 만들어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개는 짐승일 뿐이고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별 볼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정하셨는데 어떤 이유든 그 질서를 깨면 안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이 구별법입니다.

구별을 잘 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과 땅에 쌓아두는 것,

하나님을 주인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

성한 눈과 나쁜 눈을 가지는 것,

목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목숨을 위해서 있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런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잘 분별을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하늘의 새가 중요한가, 너희가 중요한가를 구별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미물에 불과한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창조하신 우리 인간들을 그냥 두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듣고 어떤 학생이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이시는데 왜 아직도 이 세상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질문을 하면 저도 대답을 잘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르시는데 왜 굶어 죽을까요?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 세상에 너무 많이 가진 부자들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자기도 쓰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재물을 모은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에 뜻있는 사람들이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서 분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종교들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이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는 불교국가나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못사는 나라가 많습니다.

 

또 국가지도자가 독재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못사는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나라나 기독교의 복음이 잘 전해진 나라들은 비교적 잘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먹을 것 때문에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 후 폐허인 상태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겠지만 기독교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욕을 하지만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만들고 갈 곳 없는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생각을 바꾸게 하고 새벽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그런 노력들 때문에 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 결정적인 것은 여기 “너희는”이라고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너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 성도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할 때 그 뜻은 거룩한 무리, 구별된 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도 구별이 되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특별한 우리가 공중의 새와 비교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과 부르심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관리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본문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염려의 무익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염려를 한다고 키가 한 자라도 커지더냐는 것입니다.

 

여기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는 말은 수명을 일 년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 로 번역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NIV)에서는 그의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로 번역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될 일이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키가 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하니까 어떻게 하든지 키를 키우려고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음식조절 운동요법들을 통해서 키가 크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 노력에 의해서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한자 약 2-30센티 정도를 크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전자 속에 얼마나 키가 클 것인지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운동도 하고 체력조절도 하고 약도 먹고 수많은 노력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날은 넘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것들 우리가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 즉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면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요 염려를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 되는 일들이 많으십니까? 공중의 새를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추수를 하지도 창고에 쌓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르시기 때문에 잘 살고 있습니다.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간들 그 중에서도 우리 성도들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해도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