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51)

본문 : 마 6:34

제목 :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말고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늘 염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염려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염려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보물을 땅에 쌓으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 제일의 가치를 두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보려는 욕심 때문에 늘 염려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놓지 못한 것 때문에 늘 염려하면서 살게 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돈을 어떻게 하면 지킬까 하는 것 때문에 염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애통하면서 고난을 당하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복인 줄을 알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재물이 있고 없음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노력을 해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목숨, 자기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보호하고 지키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늘 염려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요한 것들을 다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이 그런 걱정을 하지만 믿음을 가진 우리 성도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나라의 필요한 것들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늘 염려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우리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나라를 구하고 그 하나님나라에서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살면 덤으로 이 세상의 행복들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염려에 대한 교훈들을 마무리 하는 결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마음에 새기시고 염려하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더 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염려할 일이 생기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염려되는 일들을 다 해결해 주시고 더 좋은 것들을 덤으로 주실 것입니다.

 

1.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오늘 본문 말씀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1)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 세상에 염려거리가 없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실 때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염려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시작하는 25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즉 우리 성도들은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염려할 일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늘 염려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과거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떤 신분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의 일들을 가지고 염려나 하면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흉악한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고 저주를 받아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동생을 시기하여 죽인 가인, 노아홍수 때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홍수로 침몰당한 수많은 사람들, 하나님을 대항해서 바벨탑을 하늘까지 쌓아올리려고 했던 사람들, 신하의 아내를 빼앗으려고 신하를 죽인 다윗,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쓴 솔로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겉으로만 율법을 지키는 체 하고 온갖 교만을 다부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심지어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의 고백 이런 모든 죄악들이 나에게도 있는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흉악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엄청나게 다른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염려나 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받게 되는 혜택들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안다면 염려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게 되었습니까?

부모님을 잘 만나서입니까? 남편이나 아내를 잘 만나서입니까?

친구를 잘 만나서, 이웃을 잘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예수님을 믿을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를 성령님께서 알아보시고 우리 속에 오셔서 감동시키셔서 예수님을 믿도록 해 주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 혜택이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받는 혜택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죽을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옥에 갈 인생이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저주받을 인생이 하나님의 칭찬과 사랑을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혼자 이 세상을 살면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고독한 인생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요?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정도의 은혜를 받았으면 이정도의 사랑을 받았으면 이정도로 모든 것을 보장 받았으면 더 이상 무엇을 염려하며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2)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염려란 대부분 내일이나 먼 장래의 일로 걱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는 일 대부분 나타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서 미리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일이란 우리의 현실에는 없습니다.

내일이 되면 그날이 오늘이요 내일은 또 다시 미래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매일 매일 지금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아무런 염려도 없이 그냥 있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오늘 지금 먹을 것이 없는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앉아만 있다면 그 사람은 좀 모자란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일 염려를 없애는 방법입니다.

매일 매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내일은 하나님께 맡겨도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옛날 번역 성경에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번역을 해서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에 가서 염려하라는 말로 이해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번역의 말씀이 원어를 바르게 해석을 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는 것이지 오늘 내가 염려할 일도 내일에 가서 내가 염려할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스스로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일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내일 일어날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염려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일어나는 일들도 결국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그러나 오늘 일어나는 일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내일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모릅니다.

내일 우리가 염려하는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종말이 와서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말지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을 취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임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주관하셔서 만들어나가실 것입니다.

 

강해설교의 대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는 이 본문을 설교하면서 염려를 의인화 하는 것으로 보아서 염려를 사탄의 세력으로 보았습니다.

 

염려는 특별히 내일에 대한 염려는 대부분 없는 것인데 사탄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우리 속에 역사하여서 많은 상상력을 동원시키게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있지도 않는 일을 있을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충만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생활을 잘 하고 있을 때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좀 좌절하고 신앙생활을 좀 소홀하게 할 때 사탄은 염려라는 무기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키기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고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부정적인 일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들게 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농담으로 염라대왕 동생 염려대왕이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사탄이 염려대왕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을 사탄의 올무에 빠지게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음에 근심걱정이 생겨서 염려하게 될 때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한번 외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신세계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쩔 수없는 절망의 구렁텅으로 빠지게 되는 위험한 세상입니다.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고 오락에 빠지고 세상의 유행 따라 헛된 길로 가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나쁜 인간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어른들도 유혹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타락한 인생들 인간을 무의미하게 사는 사람들 남을 속이면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정말로 우리가 따라가서는 안 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사람이지 하고 따라다니다가는 나도 어느새 그 사람처럼 죄인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절망적인 일에 빠지고 맙니다.

 

어떻게 하든지 바른 삶이 무엇인지 날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바른 길이 진리의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나도 세상 사람들처럼 나쁜 길로 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나이가 들면 정상적인 생각을 놓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치매라는 병이 들었다고 말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병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른 병도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치매만은 걸리지 말아야 할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침해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시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시고 날마다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의 정신의 세계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나쁜 마음을 줍니다.

진리를 따라가지 못하게 합니다.

엉뚱한 것을 넣어주려고 합니다.

온갖 거짓선생들 이단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세계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염려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마음에 염려를 넣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염려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있지도 않을 일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아무 쓸모없는 염려를 하게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빼앗아가고 세상의 욕심을 불러 넣어주고

구구절절 귀한 말씀들을 듣지 못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염려하면서 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탄이나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줘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내일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염려하는 것은 사탄의 꾐에 빠지는 것이고 내일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하나님께서 맡아 주관하실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는 것입니다.

 

3.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오늘 본문에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일 매일 겪어야 할 괴로움들이 있는 세상입니다.

오늘 당할 괴로움도 우리가 견디기 힘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괴로운 일을 오늘 당하는 것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인데 우리 소관도 아닌 있을지도 모르는 내일 일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는 다 같습니다.

조금 쉽게 사는 사람도 있고 조금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다 어렵게 세상을 살아야만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떤 사람들은 염려하고 걱정을 하면서 삽니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 어떤 사람들은 낙천주의로 삽니다.

어떤 사람이 잘 사는 것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걱정도 없이 늘 웃고만 살면 앞날이 엉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늘 염려만 하면서 산다고 해도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이 그냥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염려하지 않고 산다면 그 삶이 바른 삶은 아닐 것입니다.

더 어려운 일들이 겹쳐서 고통이 더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사는 것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포기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일은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오늘 고생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각도로 염려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의 설교 집에 나오는 교훈 하나 말씀드리고 염려에 대한 교훈을 마치려고 합니다.

 

1세기 초에 쓰여진 어떤 헬라어 사본에 “티테디오스 아메림노스”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고 합니다.

티테디오스는 고유명사로 그 사람의 이름이고 아메림노스는 결코 염려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 티테디오스”라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염려를 많이 하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이방인이 기독교인이 된 후에 별명을 앞에 붙여서 새롭게 만든 이름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이름에도 이 “아메림노스”라는 별명을 넣자는 것입니다.

“결코 염려하지 않는 사람 양향모” 이 이름이 이제 우리의 이름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데 어찌 염려할 일이 없겠습니까?

염려되는 일 하나 지나가면 또 염려거리가 생기고 여기는 큰 염려 저기는 작은 염려 많은 염려거리들이 우리 주변에 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탄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주는 것일 수도 있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염려일수도 있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나쁜 것이며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자라도 크게 할 수 없는 백해무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 일을 위해서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된 신분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들을 살펴보면 결코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일 염려는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만 해도 괴로운 인생을 삽니다.

오늘 무거운 짐까지도 주님께 맡기시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까지도 덤으로 더 행복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고 기쁨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