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4.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52)

본문 : 마 7:1-5

제목 : 우리의 눈을 고칩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의 역사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의 5공 시절이나 그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시절에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정부의 하는 일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특별히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사람은 정보기관에 잡혀가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유신시절에는 이런 비판을 유언비어라고 해서 이런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자는 벌을 받도록 특별조치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나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면서도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의 1인 독재정치를 비판함으로 인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많은 발전을 이루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남을 비판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잘못한 것을 끄집어내서 비판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비판을 하지 말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것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를 보고 빼게 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남을 헤아리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이든지 비판을 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는 늘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나쁜 일인지 올바른 판단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한다고 무조건 따라가다가는 낭패를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비판도 하고 때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도 해야 남에게 속지 않고 바른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비판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크리노(κρίνω)라는 단어는 비판이나 판단, 결단 등으로도 번역이 되는 말이지만 재판이나 심판이나 정죄로 번역을 하는 것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건전한 비판이나 판단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거나 심판하거나 재판을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해석 방법은 오늘 본문에 형제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비판을 하거나 정죄를 할 수 있을지라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끼리는 비판을 하거나 정죄하거나 심판을 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정치나 경제나 우리가 사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비판도 하고 정죄도 함으로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서 공평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우리들끼리는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보다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눈을 고칩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판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고 비판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지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눈을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1.진리를 바르게 분별하는 눈을 가집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비판하지 말란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따라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서 정죄하거나 재판을 하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세상사는 일에 대해서 바른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다른 말씀에 보면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판단을 해서 그런가, 아닌가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3절에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칭찬을 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용납하고 무조건 그들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이나 행동이 바른지 거짓 되는지를 시험해보고 분별해서 거짓선지자들을 드러낸 것을 예수님께서 칭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언 17:15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이래도 흥하고 저래도 흥하면서 악인이나 의인이나 누구든지 좋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악하다고 하고 의인은 의인이라고 할 수 있도록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보아서 비판을 하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판을 해야 할 일은 비판을 하고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속지 말아야 하고 꼭 올바른 것을 취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세상의 일들도 판단을 잘 해서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지만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로 속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구원에 관한 문제는 속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파악을 하고 그 핵심을 따르는 일에서만큼은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주제는 주로 도덕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담배를 피워서 안 된다,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 주일날 일을 하면 안 된다. 주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서로 논하고 서로 비판을 합니다.

 

목사님을 평가 할 때도 설교를 재미있게 잘 한다든지 좋은 학교를 나왔다든지 외모가 잘 생기고 목소리가 좋다든지 이런 것을 가지고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목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핵심 진리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아무리 마음씨고 곱다고 해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거나 십자가의 복음보다도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가르친다면 그 목사는 나쁜 목사입니다.

자기가 가진 달란트를 가지고 복음을 더 잘 전해야지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술을 한 잔도 안하고 담배를 안 피우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의 의미를 모르고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종교인일 뿐이지 구원받은 성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이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눈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단들이 얼마나 설쳐댈지 모릅니다.

앞으로 다른 종교들이 사탄의 앞잡이들이 얼마나 우리를 유혹할지 모릅니다.

 

돈을 앞세우고 출세를 앞세우고 명예를 앞세우고 쾌락을 앞세워서 여러분을 유혹할 것입니다.

진리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와 반대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버릴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잘못을 보고 비판하기 보다는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하는 눈을 가집시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서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은 형제들 즉 주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끼리는 비판을 하거나 정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늘 비판만 합니다.

남을 비판하고 자신이 잘난 체 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그런 비판하는 눈을 바꾸어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비판을 할 때 정당하게 비판을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비판에는 좋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을 조심해야합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교하면서 불법적인 비판이나 판단의 예를 몇 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로, 주제넘은 참견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여서 자기 자신이 재판관이나 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잘 아는 것처럼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추정에 근거를 두고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떠도는 소문만 듣고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위선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사실은 그 보다 못하면서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성급하거나 분별이 없이 비판하는 것입니다.

비판을 할 때는 정말 그런지를 잘 알아보고 바른 판단을 하고 비판을 하여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할 때 성급하게 분별도 하지 않고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부당하게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언급이 되지 않은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언급되지 않은 일들을 가지고 비판을 하는 것을 부당한 비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금하지 않으신 일들을 사람이 금하고 사람이 비판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불공정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을 앞세워서 판단을 하고 비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의 저울이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도덕과 양심이 있습니다.

그 도덕과 양심에 의해서 비판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양심의 자가 고장이 났거나 맞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장 난 저울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재어보고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한 비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일이 보이더라도 거기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무자비합니다.

자기 자신이 잘못한 일에는 관대하지만 남이 잘못하면 아부 엄격하게 법대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일에는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함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남의 잘못을 보고 비판하기 보다는 남의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하는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점도 많은 반면에 장점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단점만 살펴봅니다.

단점만 살펴보는 사람의 눈에는 언제나 그 단점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남을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을 만났을 때 좋은 점만 살펴보게 됩니다.

좋은 점만 살펴보는 사람의 눈에는 언제나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습니까?

단점만 보고 비판을 하려는 사람은 만나기가 싫습니다.

만나봤자 기분 나쁜 소리만 할 것이 뻔한데 그런 사람 뭐 하러 만나고 싶겠습니까?

 

좋은 점을 발견하고 칭찬해주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또 나도 그 사람을 칭찬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눈이 그렇게 바뀐다면 여러분의 삶이 바뀌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간에 단점을 발견하고 비판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늘 단서가 붙습니다. 나나 되니까 이런 이야기 해 주는 거야. 라고 하면서 기분을 나쁘게 합니다.

 

부부간에나 부모 자식 간에나 형제간에 가까운 사람이라도 서로 장점을 보고 칭찬해주면서 사시면 가정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것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것 때문에 우리도 비판을 받고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또 이것저것 따지고 헤아릴 때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비판을 받고 헤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주의하여야 할 것은 우리가 비판을 받고 헤아림을 받을 때 그 주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우리를 비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매몰차게 비판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매몰차게 비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단점은 덮어두고 장점으로 보고 칭찬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고 우리의 잘한 점만 보시고 칭찬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장점을 보고 칭찬해주는 눈으로 바뀌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장점만 보시고 우리를 칭찬해주시고 상을 주실 것입니다.

 

3.나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집시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도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티를 뺀다고 하는 어리석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고 제거 하고 난 후에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는 것이 순서라는 것입니다.

 

여기 들보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집을 지을 때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해서 지붕을 만드는 큰 나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티는 아주 작은 것을 말하는데 아마도 들보와 비교해서 나무를 켜면 남는 톱밥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주 큰 것과 아주 작은 것을 비교해서 말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의 눈에는 아주 작은 허물이 있고 내 눈에는 아주 엄청나게 큰 허물이 있는데 나의 큰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허물을 잘 보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자신은 자신의 모습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혹 본다고 해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의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준은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가 아는 대로 자기가 경험한대로 그것이 옳은 줄로 알기 때문에 그 기준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상당한 신앙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입니다.

신앙은 자기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데서 시작하는 것이고 진정한 신앙의 성숙도 매일매일 자신이 죄임임을 발견하는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도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했고 매일매일 자신을 십자가 앞에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정말로 죄로 뒤덮여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 허물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교만해서 또 생각하지 못해서 내 안에 있는 죄를 그대로 두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잘못을 먼저 발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을 바꾸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남의 허물을 보고 비판하기보다 장점을 보고 칭찬할 줄 아는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잘못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