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를 잊어버린 백성

 

민수기 114~9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는 참으로 버리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욕심(慾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욕심이 무조건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욕심이 필요합니다. 이 욕심으로 인해 사람은 더 나은 삶을 향해서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이 욕심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연단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욕심은 오늘보다 내일을 더 풍요롭게 살아가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에게 있는 이 욕심이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욕심이 끝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명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죄(原罪)”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사탄의 함정에 빠졌고, 저들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은 저들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라고 속삭임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했습니다(3:5). 이 사탄의 꾐에 넘어간 저들은 욕심의 눈으로 그 나무의 실과를 바라보았고, 결국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의 욕심은 인류에게 죄가 찾아오는 통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아담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는 모든 인류는 아담의 이 죄의 영향 아래에서 태어납니다, 즉 우리는 어머니 태중에서 이미 죄인으로 잉태되었고,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 원죄의 영향을 받아 많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들은 대부분 우리의 욕심에서 시작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라고 하기도 했습니다(1:15).

 

오늘 본문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욕심이 어디까지 이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참으로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에게는 만족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전혀 없습니다. 그토록 큰 은혜를 입었건만, 그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아니 잊어버렸다고 하기보다는 그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도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지, 얼마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저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날과 다름이 없이 평탄했던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자기 불평의 말을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4절에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출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한 많은 잡족들이 있었습니다(12:38).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저들과는 분명 다른 백성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저 다른 민족들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데까지 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까?

 

광성의 성도 여러분! 지금 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은 없다고 할 자신이 있습니까? 우리는 저들을 향해 손가락질할 수 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의 모습은 바로 저들의 모습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너무나 큽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면서 내 손에 없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욕심을 부리게 되면,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바로 감사(感謝)”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입술에서는 찬양(讚揚)”이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한 구절로 설명한다면 이스라엘은 감사를 잊어버린 백성이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감사를 잊어버린 백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출애굽의 역사(구원)를 잊어버린 백성입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4~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상 만민 가운데서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구별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기 위함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을 세상의 민족들과는 완전하게 구별하셔서 따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렇게 만드시기 위해서 저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날개에 엎듯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여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길로 갔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43:1).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의 정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출발이요, 오늘 이스라엘의 현실이요, 장차 이스라엘의 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구원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역사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굽을 속량물로 주셨습니다(43: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홍해에 애굽의 군대를 수장(水葬)시키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어떠한 일까지 행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을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역사로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닙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저들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들은 하루를 먹을 수 있는 만나(מָן)”라고 하는 특별한 양식을 주셨습니다(16). 저들이 물이 없어서 고통을 겪을 때는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저들이 마시도록 하셨습니다(17).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17).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토록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가벼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잊어버린 이스라엘, 저들에게서 감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찬양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불과 얼마 전에 저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는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며 감사했었지 않습니까?(15) 그런데 이제는 그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감사도 없고, 찬양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과 불만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임을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한 존재임을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넘치는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행하신 그 놀라운 역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찬양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소망)을 잊어버린 백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이 광야에 있습니까?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과 바람만이 있는 이 광활한 광야에 머무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바로 가나안입니다.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출애굽했고, 지금은 이 광야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은 어디입니까? 그 가나안이 어떤 땅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에 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 때문에 가나안 땅까지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8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약속은 이미 저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입니다. 창세기 127절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람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63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이삭을 막으신 하나님은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813절에서 하나님은 형을 피해 도망하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3:6). 이는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그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모세가 죽은 후에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성취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1:6).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절대주권의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결단코 변경하거나 취소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일을 반드시 성취하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니 그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만 잘 먹고,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한 것입니다(15:16).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약속을 잊어버린 결과, 저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붙잡고 감사하며 찬양해야 할 이스라엘이 오히려 그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사라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기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약속을 바라보지 않고 이 땅의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땅의 것을 바라보고 소망해도 세상은 우리에게 땅의 것으로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욕심만 커지게 됩니다. 불평과 불만만 많아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성취되는 날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을 잊어버린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려는 하나님이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3:12). 이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321~2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만나에 대해서 분명한 정보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만나는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그 어떤 민족이나 사람도 그 만나를 보지 못하고, 또한 먹을 수 없는 양식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으로 거두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서 주신 양식입니다. 출애굽기 1613~15절에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곡식을 먹기 직전까지 매일 그 만나를 먹었습니다(5:12).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 광야까지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저들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양육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라도 왕의 역할을 완전하게 감당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눈만 뜨고 바라보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하나님이 왕으로서,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먹이시는 분이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립니다. 아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들이 그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찬양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나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위해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코 그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시편 5022~23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과 기업에 대한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원하기는 우리 광성의 성도들은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