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믿음의 사람인가?

 

 

 

마가복음 921~29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기독교는 믿음은 참으로 많이 강조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높이 들었던 기치 가운데 하나가 오직 믿음(Sola Fide)”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이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이 믿음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믿음을 남용(濫用)하고 오용(誤用)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표현을 너무 쉽게 사용합니다. 그리고 엉뚱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의미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로 덮어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이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제자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눈에 보인 것은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변론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어지는 내용을 본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일에 대해서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의 일행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저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16). 그런데 예수님의 이 질문에 제자들이 아닌 한 사람이 와서 상황을 설명합니다. 즉 자기 아들이 귀신이 들려서 데려왔는데 제자들이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탄식하시면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고, 아이가 예수님 앞에 왔을 때, 귀신이 그 아이를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앞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실 본문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본문의 주제는 한 아버지, 또는 제자들의 믿음이 아닙니다. 즉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은 19절에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의 믿음은 구원과 관계되는 믿음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저들에게는 이 믿음은 없고 단지 지식적인 믿음, 교리적인 믿음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본문 23절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으로 인해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입니까? 바꾸어 말한다면 우리가 오늘날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병든 자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나는 믿음의 사람인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는 자인가?

 

 

본문 21~22절에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현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상황은 너무나도 위급하고 위험했습니다.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자주 몰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로서 자기의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손을 놓고 있었겠습니까? 아마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서라고 아들에게 있는 귀신을 내쫓을 수 있다면 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온갖 노력도 아들에게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아들을 바라보면서 무너지는 자신의 가슴만 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의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는 분명 복음(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 예수님께만 가면 자기의 아들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은 없고 제자들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라도 아들을 고쳐 달라고 청했지만,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절망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기의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현에서 특징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본문 22절에서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에게 이 일, 즉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즉 이 아버지는 예수님의 치유하심에 대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염두에 두면서,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는 믿음이 아닙니다. 과연 누가 예수님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단서가 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권세와 능력이 없는 분이십니까? 사실 예수님에게 이 단서를 붙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이 표현은 마치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의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탄이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면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4:3). 성전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4:6).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드시지 못하시는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성전의 꼭대기에 뛰어내리면 죽는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는 분이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는 단서를 붙일 수가 있습니까?

 

 

이 표현이 등장하는 자리가 또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조롱했습니다(27:4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올 능력이 없어서 거기 매달려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실 오늘의 우리가 이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실존과 실체, 그리고 그분의 능력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그분 앞에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단서를 달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에는 단서 조항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단서를 단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완전하게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데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인가? 예수님인가?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단서 조항을 붙이자, 예수님은 호통을 치듯이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다면 할 수 있거든? 누가 나에게 그런 단서를 달 수 있지?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 앞에 도달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표현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 봅시다. 과연 본문에서 예수님이 믿는 자라고 하셨는데, 믿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나입니까? 아니면 내가 믿는 예수님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믿는 자가 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말씀으로 빌립보서 4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바울의 고백을 인용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합니까? 우리가 믿음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교회 안에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교회는 불완전할까요? 믿음으로 하면 다 되는데 왜 성도의 삶은 어렵고 힘이 들까요? 그러한 교회와 성도는 믿음이 없어서 그럴까요?

 

 

사실 본문의 믿는 자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나는 너희가 할 수 있거든이라는 단서를 붙일 수 없는 존재다. 네가 믿는 나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모든 것이 가능한 전능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전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예수님, 즉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1:40). 아무리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하고자 하시면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내가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을 믿을 뿐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 승천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성령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성도답게 살아가는 능력을 주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가 믿는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까지도 다 하십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타내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다 하십니다. 우리는 이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 오직 기도로

 

 

본문 24절에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앞뒤가 맞지 않는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분명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또한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아버지는 이성적으로는 믿어지지 않지만, 의지적으로는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 배경에는 자기 아들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 간절함이 믿음을 낳고 은혜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아이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귀신에게 명령하셨고, 귀신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전능자이신 예수님은 능히 그 일을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증명하셨습니다. 자신이 전능자이신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이 의문이 생겼습니다. 본문 28절에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과거에 엄청난 경험을 했었습니다. 마태복음 101절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둘씩 보내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며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하셨습니다(10:8). 그때 제자들이 나가서 전했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9:6). 또한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칠십 인을 따로 보내시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중에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10:17).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그래서 조용히 사람들이 없을 때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본문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1720절에서는 예수님이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기도와 믿음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즉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을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능력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능력도 불완전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믿고 그분께 기도로 맡기면,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이요,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광성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적인 믿음이 아닌 우리의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는 인격을 다 동원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에 대한 결과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 앞에 나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나 자신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광성의 성도들이 참 믿음의 사람이 되고, 예수님 앞에 우리의 믿음을 기도로 고백함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나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복된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