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19)

  본문 : 행 18:5-8 

  제목 :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흔히들 사도행전은 역사서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세계만방으로 흘러들어갔는가를 기록한 역사서임이 분명합니다. 성령님께서 사도들과 미리 준비한 복음의 일꾼들을 통해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역사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해두셨습니다. 사도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도 보여주셨고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무엇인지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 복음이 얼마나 진실 된 것인지, 그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받게 될 구원과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얼마나 엄청난 복인가를 알게 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그 문제가 많은 도시인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또 회당 옆에 사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이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복음이 어떻게 전하여지는가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철학이나 윤리나 인간의 경험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읽기는 하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이야기를 설교라고 하는 잘못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밝히 증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나 구원이 그리 반갑지 않은 것처럼 소홀하게 취급하는 잘못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한 것처럼 오늘날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을 바른 진리로 인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본문 5절 말씀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베뢰아를 떠나 아덴으로 올 때 함께 동행했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 실라와 디모데가 와서 합류했습니다. 혼자 와서 힘이 없었던 바울이 동역자들이 오니까 힘이 났는가봅니다. 그동안도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이란 헬라어에서 로고스(λόγο)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로고스라는 단어는 단순히 말씀이라는 뜻보다는 더 강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진리, 이성, 논리, 법칙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단순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진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칙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 하나님의 뜻,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라고 했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고 할 때 여기 말씀도 그런 넓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에 붙잡혀서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기록된 성경말씀을 뜻합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붙잡혔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성경을 기록하신 분이 성령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께 붙잡혀서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이라는 말을 말씀충만이라는 말로 같이 씁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실 때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히게 될 때 즉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게 될 때 그가 하는 일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중점적인 일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일입니다. 말씀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는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되심을 외치게 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되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심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교회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엉터리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교회가 타락했을 때 타락의 주요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황의 말이나 인간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을 앞세워서 인간의 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고 믿음으로 보다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거기에 대항해서 루터나 칼빈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타락한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교회를 개혁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경 말씀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성경 속에 있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제한적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 중에도 사람들에 따라서 여러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따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성경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외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하고 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사는 우리 성도들도 말씀에 붙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교회에 출석하는 것 정도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믿음 외에 믿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며 살라고 주신 계명들을 바로 알고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기도하고 응답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적들도 체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닙니다.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구원 받았으니까 그 대가로 바른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백성에게 특별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특별한 은혜가 말씀에 붙잡혀서 사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본문 6절에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말씀에 붙잡혀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자 그 증언을 들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했습니다. 대적하고 비방했다는 말은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반대하고 욕설을 퍼붓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증언할 때 유대인들이 욕을 퍼붓고 반대를 하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야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이 이를 갈고 반대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신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들은 아주 죽을 죄인이 되기 때문에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욕을 퍼부으면서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달했으니까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이 할 일이고 당신들이 그 죄 값을 받아야 할 일이고 나는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이 끝나거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날 때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는가, 믿지 않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그 때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뻐 뛰면서 춤을 추겠지만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댈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다. 복음을 들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거짓말 같아서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면 더 자세하게 더 믿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어야지 그냥 예수 믿어라만 하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라고 불평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핑계나 불평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고 가슴을 쳐도 소용이 없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빈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는 이미 늦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문제로 후회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능력은 대단하기 때문에 좀 믿음생활 잘 못했다고 해도 그런 것 가지고 내어쫒기거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후회할 것이 있다면 이렇게 귀한 이렇게 위대한 믿음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 후회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후회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붙잡고 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지옥에나 갈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죄악 된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서 살았던 일들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삶이 얼마나 좋은 삶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삶인데,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데 그렇게 살지 못한 삶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사람이 되었다는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그런 특권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본문 7-8절에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을 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욕을 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좀 더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를 하고 욕을 퍼부으면서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바울도 더 이상 그들에게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고 믿어 달라고 사정을 하지도 않고 유대인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은 믿어달라고 사정할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꼭 믿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회당 옆에 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고 하는 사람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이방인으로 로마시민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바울이 회당에서 떠나게 되자 자기의 집을 전도처소로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회당장으로 있던 그리스보라는 사람도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들이 반대를 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 후에 가족과 더불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경도 알지 못하고 이방신을 섬기면서 음란한 삶을 살던 고린도 인들이 예수님을 더 잘 믿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을 사람인지 믿지 않을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에 와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무슨 구걸을 하는 사람처럼 도움을 바라는 사람처럼 복음을 믿어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라고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이 복음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못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엄청난 복이 주어지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면서 믿어 달라고 사정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 제가 사정을 해야 하는 그런 시시한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인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