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25)

  본문 : 행 19:8-12

  제목 :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8.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어 중의 하나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천국” 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이 감히 “여호와”나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불경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호와는 주님으로 하나님은 하늘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쓴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라고 표현을 하였고 다른 복음서들은 “하나님 나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천국)는 성경의 핵심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하나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도행전도 그 주제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세계로 퍼져나가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에 하신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28:30-31)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시작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사도행전의 마지막이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그 하나님 나라의 핵심인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전파는 사도행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교회의 임무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본문 8절에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이 활동하고 있는 곳은 에베소라는 도시입니다.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회당에 들어가서 3개월이라고 했고 뒤에 보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서 인사를 한 말 가운데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3년여 동안을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지방의 중심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후일 바울이 이교회에 써서 보낸 에베소서는 하나님나라 복음의 핵심이 기록된 책입니다. 사도요한을 통해서 쓴 요한계시록의 소아시아에 보내는 편지에 있어서도 에베소교회가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비록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2-3)고 칭찬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좁혀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지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타락한 인간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서 한 민족을 만드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은 완전한 하나님나라가 아니고 하나님나라를 준비하는 예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민족을 통하여 메시야를 오게 하시고 메시야를 통해서 새롭게 시작되는 나라가 진정한 하나님나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조금 일찍 활동을 하면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한 세례요한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의 활동을 마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3:1-2)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그 때까지 아직 오지 않았었고 천국 즉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도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4-15)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시작될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의 시작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종합하여 보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이 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새롭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아닙니다. 미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훈련을 받으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망하면서 삽니다.

 

  완전한 하나님나라는 앞으로 우리 성도들이 가서 영원히 살게 될 영원한 천국을 말합니다. 그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따로 모여서 그 나라를 기다리면서 삽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완성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는 길입니다.

 

  “강론하며 권면하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강론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권면’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으라고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잘 설명을 한다고 해서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호소를 하고 설득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잘 결정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억지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권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담대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하고 권면하기를 담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을 하거나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비슷한 것이나 대체될만한 것이 없으며 비교되거나 우열을 가릴만한 다른 진리가 없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뭘 전할까봐 우물쭈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저것 고를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담대하게 선포하면 됩니다.

 

 

이 도를 비방하거늘

 

  본문 9-10절 말씀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도 살펴 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믿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고 그 중에는 이 하나님 나라의 도를 비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이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소식보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크고 놀랍고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에나 가야할 불쌍한 인생이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된다고 하는데 이게 그냥 듣고 말아야 할 그런 시시한 소식입니까? 누구나가 반갑게 맞이하고 기쁘게 받아야 할 이 진리의 도를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복음을 ‘도’라고 했습니다.

  그 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길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억만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는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이런 귀한 유일한 길을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방을 한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믿을 수 없고 따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타락한 인간 스스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실 때만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만 믿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강론하고 권면해도 믿지 않고 따르지 않고 오히려 비방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때 바울은 거기서 떠났습니다. 회당 사람들이 도를 따르지 않고 비방을 하자 제자들을 데리고 떠나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 와서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을 2년 동안이나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아마도 두란노라는 사람이 세웠거나 가르치는 일종의 학교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리를 전파할 때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따르면 참 좋은 일이겠지만 역사는 늘 그 복음의 진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이상하게 진리보다 거짓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고 진리의 편에 서는 사람은 늘 비교적 소수였습니다.

 

  회당은 주로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회당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르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따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을 놓치기 싫었기 때문에 그 귀한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중세시대의 로마 가톨릭도 복음의 진리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교회의 조직을 통하여 얻는 이익들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바르게 삶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침으로서 얻는 그 이익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일부 잘못된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구원 받는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대가를 자불하게 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의 복음 진리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계속에서 분리해서 나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구교에서 개신교로 개신교에서 개혁주의 교회로 계속해서 분리되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왜 자꾸 분파가 생기느냐고 비웃습니다. 분파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진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분리해야 합니다. 그들의 세력이 크고 재물이 많다고 해도 기기에 복음이 없다면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없다면 분리해야 합니다.

 

  바울이 회당을 떠나서 두란노 서원에서 이년 동안 바른 복음을 전할 때 그로 인해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전 아시아 사람들이 바울에게 직접 복음을 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 소식이 사람들을 통하여 전하여 져서 모든 아시아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소아시아 지방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본문 11-12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을 주셔서 가끔은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특별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런 능력을 주셔서 바울이 쓰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으면 병도 떠나고 악귀도 떠났습니다.

 

  이런 기사를 보면 우선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오늘날도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일어난다면 우리 주변에는 왜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자신이 기도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방법이 다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이런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을 행하게 해주셨습니다. 기도나 특별한 선행이 없이 그냥 그가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져다가 환자에게 올려두면 그냥 비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병든 자를 고쳐주시기 위해서 행한 이적이라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진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인용한 세례요한의 이야기입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메시야이신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메시야라고 생각이 되는 예수님이 이런저런 일을 행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이 그 메시야이신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고치시고 질병과 악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계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7:22)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이신지 아닌지 이런 현상을 보고 판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런 현상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야이신지 아닌지를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사29:18)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35:5-6)

 

  사도바울이나 베드로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 이런 기적들이 얼어나는 것은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진짜이며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이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지에서 비슷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복음의 진리를 알고 있고 수많은 증인들로 하여금 이 복음이 진실되다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를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증인들을 통해서 우리가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담대하게 강론하고 권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기적을 일으키게 하셔서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확실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원의 길을 외면하고 비방하지만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얼마나 귀하고 소종한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