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31)

  본문 : 행 19:35-41

  제목 :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5.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를 향하여 전파될 때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의 복음전파가 성공리에 끝난다고 생각할 즈음에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나타나서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의 수호신이라고 믿는 아데미의 신상모형을 만들어 팔아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나타나서 그렇게 손으로 만든 신은 다 헛된 신이라고 하면서 하나님만 참 신이며 예수님이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와 그 일행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렇게 확장되어 나가면 그동안 자신들이 신상을 만들어 팔아서 호황을 누리던 사업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데메드리오의 방해공작으로 일어난 소동과 그것을 수습하는 장면이 23절에서 41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의 서기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데메드리오로 인해서 일어난 소요를 수습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건을 이렇게 긴 문장을 통해서 남겨 둔 것은 후세를 사는 우리가 받을 교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습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본문 35-36절에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에베소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는 사람은 서기장이라고 했습니다. 서기장은 에베소 본토사람 중에서 선출된 에베소의 책임자입니다. 시 의회를 통하여 선출한 에베소의 최고의 행정 관리였습니다. 에베소에서 민란이 일어나거나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책임이 있는 사람이 에베소 사람들의 소요사태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가 기독교인들을 살해하고 그로 인해서 큰 민란이 일어나게 되면 서기장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서기장이 나서서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조목조목 설명을 합니다. 당신들이 이렇게 난리를 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당신들이 더 우세한데 몇몇 안 되는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해칠 필요가 있겠느냐고 설득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상의 신전지기”라는 말은 좀 생소한 말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상의 전각지기”(개역한글) “신상의 수호자”(현대인) “신전 수호자”(새번역)로 다양하게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단어 자체는 그저 신전을 청소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신전과 신을 섬기는 의식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만한 자리라고 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에게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들은 아데미 신과 제우스신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소문이 난 사람들이고 이것을 부인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에베소 사람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그대로 믿고 잘 섬겼습니다. 그 중에 제우스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아데미신을 잘 섬겼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고 합니다. 한 면의 길이가 120m이고 다른 한 면이 60m로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34배나 더 컸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신이라고 믿었던 제우스신을 따르고 그의 딸이며 에베소의 수호신이라고 믿었던 아데미신을 따랐고 엄청난 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에베소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그 신을 섬기는 사람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들이 이제 시작한 소규모 사람들이나 따르는 그런 기독교를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당신들이 섬기는 신을 잘 섬기면 되지 별 것 아닌 사람들에게 그렇게 과잉대응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의 종교 분포가 오늘날과 같습니다. 에베소에서의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오늘날 온갖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과 기독교의 비율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엄청난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종교는 다 하나같이 사람이 만든 종교들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으로 종교를 만들고 사람을 신으로 섬기든지 사람의 손으로 신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 우상종교들에 비하면 우리 기독교는 소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종교들이 기독교에만 배타적이고 연합해서 공격을 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는 다 사람이 만든 헛된 신이고 우리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아니라고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으로 세력으로 공격을 합니다. 거짓이 진실을 공격하는 방법은 힘으로 우기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모슬렘 같은 종교는 점점 그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데 기독교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기독교 이단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교회의 성도들은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교회 안에도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성도들은 점점 줄어들고 대강 적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만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진리를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구원받을 백성은 많지 않습니다. 구원을 세력으로 사람의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 편에 꼭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의 편에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알지 못하고 가지 못하는 그 길을 우리는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나 갈 수 없는 이 구원의 길을 우리는 특별히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본문 37-39절에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라고 했습니다.

 

  서기장이 두 번째로 그들을 설득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전의 물건을 훔쳐간 도둑도 아니고 우리들이 섬기는 여신을 비방한 것도 아닌데 왜 이 사람들을 붙잡아 왔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사실 여신을 직접적으로 비난 한 것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신은 다 헛된 신이라고 했으니까 비난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아데미 신을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데미 신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식 절차를 밟아서 정식으로 고발을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도 잘못을 재판하는 기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재판을 하는 날도 정해져 있었고 소송을 담당할 총독도 있었고 오늘날 시 의회나 국회 같은 민회도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런 절차들을 거쳐서 얼마든지 처벌을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불법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세상은 늘 교회를 비난합니다. 교회가 자기들 보고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 것을 훔쳐온 것도 아니고 자기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도 아닌데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거품을 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 잘못된 교회들이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 나쁜 짓을 하는 일부 나쁜 목회자들에게 욕을 해야지 교회 전체가 그런 나쁜 집단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 교회가 있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니까 세상이 이 정도라도 덜 부패한 세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파출소를 하나 세우는 것보다 교회를 하나 더 세우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는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세상 사람들보다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바르고 착하게 산다고 선택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 올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 보라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본문 40-41절에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서기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소요사건이 일어날 때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까닭이 없이 아무 일도 없는 이 일에 소요사건으로 인해서 책망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불법 집회이고 이 집회에 대해서 뭐라고 보고할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사건을 키우지 말고 여기서 해산하라고 했습니다. 서기장의 설명을 다 들은 군중들은 거기서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흩어졌고 소요사태는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인데 일부러 감사에 관한 주제로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서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통해서 교회가 헌금이나 밝히고 장사꾼처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를 하실까봐 감사절 특별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는 교회를 운영해야 하는 책임자로서 가끔은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라고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그 헌금을 목사의 이익을 위해서 쓴다면 속이 보이는 설교라고 생각하겠지만 교회의 운영을 위해서 복음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엄청난 것들을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은혜로 거저 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제가 혹 헌금 이야기를 하면 교회가 재정이 좀 어려운가보다 라고 생각하시고 그것을 하나님께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목숨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다고 해도 그 은혜는 갚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본문을 설교하면서 추수감사절과 연관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자세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일을 대할 때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는가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에 데메드리오라 하는 은장색의 말을 듣고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연극장에 모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 경솔하게 생각하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이 무슨 말을 하면 왜 그런지 그것이 경우에 합당한 일인지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잘 생각해 보고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냥 남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을 해 버리고 부정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이권에 관심을 두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주머니에 돈이 나가는 일은 자기가 손해를 보는 일은 무조건 나쁜 일이라고 판단을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주어지는 일은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이런 이권의 욕심 때문에 사람들이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이권에 눈이 어두워져서 불의의 길로 가고 많이 타락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우리에게서 지혜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서기장은 그보다는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는데 개의치 말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살펴보고 바르게 잘 대처하자고 했습니다. 서기장이 하는 말이 다 옳은 말은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잘 살피고 정확하게 판단을 해서 바른 행동을 하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기 위해서 적당히 다른 사람들을 달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것을 훔치지 않고 내가 섬기는 신을 모욕하지 않은 이상 다른 사람을 악하게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매사를 나쁘게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면 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매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남들보다 좀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쉽게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사는가, 감사하면서 사는가는 우리가 신앙인인가 불신앙인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이런 감사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이 감사를 표현하는 일부가 되겠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이고 정말로 우리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우상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도 욕심 때문에 맘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 쉬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너무 재물에 욕심내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늘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