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32)

  본문 : 행 20:1-6

  제목 :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1.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라”

 

 

  옛날에는 카메라 같은 것이 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보는 것이 귀한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 좋은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셀카도 찍어서 볼 수 있고 동영상도 찍어서 내 모습이 어떤지 잘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가끔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내 모습을 보면 걸음걸이나 말하는 모습이나 어색해서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꼭 보아야 할 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지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지, 내가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나쁜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데 바르게 믿는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과연 나의 믿음을 바른 믿음으로 인정을 해 주실지 나의 신앙생활을 정상적인 신앙생활이라고 인정해 주실지 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한교회의 가족으로서 살고 있는 것은 우리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함도 있습니다. 함께 설교를 들으면서, 함께 성경공부를 하면서 진리를 바르게 알아가고, 신앙생활을 배워가고 점점 더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배우면서 특별히 사도바울의 세계 전도여행을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가 구약성경을 가지고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구약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성경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가 세계만방에 다니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것이며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오늘부터 사도행전 20장을 공부하게 되는데 20장은 19장에 이어 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3차 전도여행 가운데 에베소에서의 전도를 끝내고 그 다음으로 마게도냐를 거쳐서 드로아에 이르는 여행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록이지만 여러 도시들을 약 10개월에 걸쳐서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내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확장을 위한 바울의 사역

 

  오늘 본문에는 많은 도시들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마게도냐, 헬라, 수리아, 아시아, 베뢰아, 데살로니가, 더베, 드로아 등의 도시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들이 바울이 이때 다 방문한 도시는 아니지만 바울이 1,2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진 도시들입니다.

 

  수리아는 이스라엘 복부지방에 있고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이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파송을 받았습니다. 아시아는 소아시아로 지금의 터키지방을 말하고 더베와 드로아도 그 소아시아 지방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헬라, 베뢰아, 데살로니가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 유럽의 초입에 위치한 도시들입니다. 사도바울이 수리아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로 그리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한 도시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쪽으로 진행하여서 소아시아로 유럽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이자 명령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로 퍼져나갈 것임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제자들이 그 일에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그 예언과 그 명령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지금도 계속 이루어져가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그 일에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일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특별하게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게 해 주신 일입니다. 복음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그 비밀을 맡은 자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특별히 알게 된 사람들의 사명은 이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려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목숨까지 버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복음을 알고 믿는 일에 열심을 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새해에는 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에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돌아보는 바울의 사역

 

  본문 1-3절에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친 바울이 유럽에서 소아시아를 거쳐 다시 그를 파송한 지역인 수리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헬라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건너가려고 할 때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공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을 포기하고 육로를 통하여 돌아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각 도시를 지날 때 그냥 거쳐 가는 것이 아니라 각 도시에 들러 그곳에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믿음을 확인하고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하는 일을 1절과 2절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1절에서는 에베소를 떠나면서 거기 있는 제자들을 불러서 권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도 마게도냐 지방으로 다니면서 제자들에게 권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 권하였다는 말은 권면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권면이라는 말에는 격려라는 말과 위로라는 말도 포함이 되어 있는 말입니다. 복음을 바르게 알고 믿고 따르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타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훤하게 알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여 복을 받는다는 유대교의 교리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종교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 신에게 복을 빌고 신이 원하는 것을 바치고 신에게 맹종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믿음의 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는 바울의 말이 옳은 것 같아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바울이 떠나고 나면 금방 복음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을 따릅니다.

 

  다른 종교를 신봉하던 거짓선생들이 와서 복음을 비웃습니다.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대신해서 죽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선행이나 고행도 없이 믿음으로만 엄청난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란 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하게 살자고 따르는 것인데 보이지도 않는 천국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는 고생만 하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선 지금이 좋아야지 지금은 고생하고 나중에 죽은 후에나 그 보상이 있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그 교회를 찾아가서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그 복음이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 하고 힘들더라도 복음을 믿고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르기가 너무나 힘이 들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반대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니까 마음을 바로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틈이 나는 대로 지나온 교회들을 향하여 편지를 씁니다. 특별히 다른 복음을 따르려고 하는 교회들을 향하여 편지를 써서 다른 복음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믿음의 원리를 자세하게 기록해서 전했습니다. 그런 편지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서신서들입니다. 로마서 에베소서를 비롯한 13-14편의 바울서신서들이 그런 내용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때도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복을 받아서 잘 사는 것이 좋지 먼 미래를 위해서 지금 고생하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영원한 천국의 복음을 전하기보다도 지금 이 세상에서 바로바로 복을 받는 다른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천국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 즉 이 세상의 행복을 전하는 설교를 좋아하고 그런 설교를 하는 교회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중요하게 살펴볼 것은 바른 복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른 복음을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거짓선생들이 퍼트린 가짜 복음, 다른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주 말씀을 드리지만 제가 그냥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형편에서의 신앙생활과, 다양한 공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너무나 확실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성경전체의 핵심이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모든 성경의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그 외의 모든 사도들이 확신하고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복음의 핵심을 잘 모르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변질된 복음을 가지고 있고 변질된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도 외형적으로 더 성장을 합니다. 외형적인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그런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을 따르다가 보니까 교회의 본질인 복음을 놓치고 엉뚱한 길로 가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변질된 교회들을 찾아가서 다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서신을 기록해서 보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교회도 이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른 교회들도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바른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바울의 동역자들

 

  본문 4-5절에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수리아를 거쳐서 예루살렘교회로 가고자 할 때 바울과 동행하려고 했던 몇몇 사람의 이름을 본문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출신지명을 기록한 것은 아마도 이 사람들이 그 지역교회의 대표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교회의 대표들이 바울이 가는 길에 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동역자이었을 것이며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로 갈 때도 동역자로 동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동행을 하는 목적은 아마도 바울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유대인들이 바울 해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했고 후일 바울의 고백에도 전도여행길에 많은 위험을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그가 당한 어려움들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6-27)라고 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전도 여행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여러 동역자들이 동행을 하면서 그런 위험에서 바울을 보호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동역자들은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각 교회에서 모금한 연보를 가지고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주기 위해서 헌금을 하여서 가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큰 교회는 너무 돈이 넘쳐서 돈으로 인해서 시험이 들고 작은 교회는 너무 돈이 없어서 시험이 듭니다. 큰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작은 교회들을 도우면 좋을 것인데 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라고 할지라도 더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교회들을 도울 줄 알아야 합니다. 당시의 지역교회들도 넉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막 시작을 한 작은 교회였지만 더 어려움을 당하는 다른 교회를 도우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어려운 교회지만 더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를 돌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교회를 돌아보는 일에 우리 성도님들이 다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을 통하여 우리가 행할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모든 사람에게 까지 전파하는 일에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따르는 참된 성도들을 위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귀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