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95)

본문 : 행 15:19-21

제목 :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19.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이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15장에 들어와서 예루살렘교회에서 모인 총회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할례도 받지않고 율법도 지켜지 않아도 되는가?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유대인 지도자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 선교사인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여러 유대인들의 주장과 그리고 베드로사도와 바울사도의 의견을 청취한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 아고보가 베드로사도와 바울의 주장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과 일치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에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이라고 하면서 회의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이라고 번역을 해서 야고보의 개인 사견을 말한 것처럼 보이지만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면 단순히 야고보의 개인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의견’으로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는 ‘크리노(κρίνω)’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판결, 결정”으로 주로 번역을 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성격으로 볼 때 단순이 개인 사견을 말한 것이 아니라 총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내리는 최종 판결문입니다.

 

검사격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음을 고발하자 변호사격인 베드로사도와 바울사도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방인들을 변호하고 재판장 격인 야고보가 최후의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문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19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참으로 귀한 사람들입니다. 집을 나간 사람이 돌아온다거나 고향을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우선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혜를 베푸셔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이렇게 좋은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정에 의해서 잠깐 교회에 오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한번 교회를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일도 정말로 어렵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교회에 남아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은 정말로 귀한 존재들입니다.

 

또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일어나는 그 신분의 변화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이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통과해서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사람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이것저것 시키면서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괴롭힌다는 말은 은혜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대가로 요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율법을 행하여야 한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의무를 행하여야 한다,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사탄의 종으로 사탄이 요구하는 대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인데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니까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옛날 사탄의 종과 같은 삶을 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사람들을 더 힘들게 살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살다가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자유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참된 자유를 누리는 행복한 삶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 같지만 그것은 사탄의 종으로서 죄의 종으로서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고 자유롭게 산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비참한 삶일 뿐입니다.

 

제가 인생을 좀 살다가보니까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가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산다고 세상에 나가서 사는 사람들 중에는 자유인이 아니라 사탄의 노예 죄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의 노예가 되어서 인생을 술로 망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두 번 즐기던 오락이나 도박 때문에 가산 다 탕진하고 비참하게 폐인이 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어쩌다 한번 잘못 만난 남자 때문에, 여자 때문에 잘못된 이성교제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게으름 나태 무책임 회피 이런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고 살면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런 달콤한 유혹으로 인생을 절망에 빠뜨리고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 영원한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거기 빠지면 안 됩니다.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본문 20절에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결한 야고보는 최소한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려함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나 혼자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어울러서 살기 때문에 각자가 지켜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최소한도로 지켜야 할 기본 예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우상의 더러운 것을 멀리하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일 첫 번째 항목이며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 철저하게 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이고, 하나님보다 다른 그 무엇을 더 사랑하는 일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 온 사람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을 미신처럼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아십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산 아래에서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엉뚱하게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미신처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섬기던 신들과 같은 신으로 알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산신령이나 용왕을 섬기던 사람들처럼 제물을 바치고 복이나 받아보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돈 좀 내놓고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상을 멀리하라고 할 때 직접적으로는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과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고 미신을 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강단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되 바로 알고 섬기지 못함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 설교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우상숭배와도 같습니다.

 

2)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말은 서로 연관 관계가 있습니다. 목매어 죽인 것은 피가 그 몸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피를 멀리하라는 말은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피를 먹는 자체를 금하는 목적이 아니라 피가 상징하는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피를 멀리하라는 말은 십계명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계명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위해서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라고 하시며 동물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동물을 먹되 피째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창9:4-5)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족이 8명만 이 지구상에 남았는데 빨리 빨리 생육하고 번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채식만 먹던 것을 육식도 먹게 하셨고 인간의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며 목숨의 중심인 피를 흘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즉 인간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서 피를 흘리는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라고 했는데 이 말은 사람을 죽게 하면 그 사람도 죽게 될 것이니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죽게 한 것이 사람이면 그 사람도 죽게 하고 혹 짐승이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그 짐승도 죽이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를 누리는 우리들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생명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피를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 몇 푼 훔치려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큰 죄입니다. 돈 좀 벌려고 다른 사람의 생명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가짜 약을 판다든가 몸에 해로운 음식을 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좀 잘 살려고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걱정거리를 주어서 육신의 건강을 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3) 음행을 멀리하라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씀이라면 음행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육하며 번성하게 하시며 주신 제도가 가족 제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기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자자손손 번성해 나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음행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이런 가족제도를 무너뜨리는 일을 말합니다. 음행 때문에 가정이 불행해지고 파괴되는 일이 많습니다. 건전한 가정을 꾸미고 자녀를 낳고 사는 일이 인간에게 주어진 행복이고 이것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는 일입니다.

 

이 음행을 멀리하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음행을 영적인 일로 해석을 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좋아하는 일을 영적인 음행이라고 합니다. 이런 영적인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당시에 만연한 축첩제도를 금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당시의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부인을 여러 명 두는 것이 합법화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양반들이 첩을 많이 두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믿으려면 첩들을 다 내보내고 믿으라고 했습니다.

 

이교도와의 결혼을 금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결혼은 항상 주안에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약속하는 불신자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이미 불신결혼을 한 후에 나만 예수님을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신앙이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불신자와 결혼을 해서 자신도 불신앙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꼭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멀리 하라, 피째 먹지 말라 즉 살인을 하지 말라, 음행을 멀리하라,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을 억압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 금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좀 더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한 우리를 위한 최소한의 금령입니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21절에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21절은 간단하게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구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성도들이 율법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구절을 이방인들도 각 지역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율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최소한의 것만 말하고 점차적으로 회당에서 율법을 배워서 율법을 행하라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배워서 지키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점점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말이라고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동안 아주 오랫동안 회당에서 율법을 배웠고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제일 소중한 일로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유대인들에게 지금 당장 율법을 지키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또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율법을 그대로 다 준행을 하여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데 유대인들이 끝까지 고집을 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다가 보니까 사실은 위선자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율법이 주는 그 정신을 따라 살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남들이 보는 앞에서만 지키는 체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죄를 지으면서 죄를 안 지은 척 거짓말을 하는 위선자가 됩니다.

 

그런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율법을 지키는척하면서 그 쉽고 좋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놓쳐버리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동안 배운 율법을 지키면서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되 다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점점 나아가게 하자는 뜻입니다.

 

칼빈은 본문을 후자로 해석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점점 율법을 행하여서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이방인들에게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행하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지키면 너무나 좋은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더욱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예루살렘에서 열린 교회의 총회에서 내린 판결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이방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누가 시비하거나 괴롭게 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행복하게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멀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상숭배와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일과 가정을 파괴하는 음행을 멀리해야 한다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