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99)

  본문 : 행 15:30-35

  제목 :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0.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없음) 35.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고 난 후에 처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교회가 시작이 될 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는 방법은 과거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하면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립니다. 과거에는 제사장들과 성전의 지도자들이 중심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 중심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키던 것이 이제는 세례를 받고 성찬예식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달랐기 때문에 과거의 유대교를 지키려고 하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성전의 지도자들이 새로 시작하는 기독교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단으로 취급을 하고 그동안 유대인으로서 가졌던 모든 권리들을 박탈하고 붙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비참하게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갈등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교회 내에도 있었습니다. 유대교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과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유대교 때 행하였던 할례나 율법을 행하고 지켜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유대교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들은 바로 그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때 주신 율법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방인들이 중심이 된 안디옥교회에서 대표를 선발하여 유대인이 중심이 된 예루살렘교회로 보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총회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을 한 결과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행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론은 우리가 지난시간에 살펴 본대로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꼭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다만 단서조항으로 율법에 있어서 아주 요긴 한 것 즉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이나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일은 꼭 해야 할 요긴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와주고 사랑하는 일은 꼭 해야 할 요긴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음행을 버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 주신 가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소중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을 망치게 되는 탐욕들을 버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요긴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결론을 담은 서신을 바나바와 바울과 그리고 함께 특사로 파견된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교회로 가지고 와서 안디옥교회의 전 성도들을 모아놓고 판결문을 낭독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은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온 유다와 실라도 그들이 선지자였기 때문에 편지 외에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유다와 신라는 형제들에게 전송을 받고 떠났고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안디옥에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습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고 가슴에 남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 같은 갈등이 남아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비난을 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 줄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선을 행하는 것이나 충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길을 믿고 따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셔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외롭고 힘든 길입니다. 이런 힘든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편지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유다와 실라의 말도 그들을 권면하는 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위로와 권면이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했습니다. 이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중심으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위로한 말을 듣고 기뻐하더라.

 

  본문 30-31절에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총회에서 결론을 내린 판결문을 서신에 기록해서 안디옥 교회에 가지고 와서 낭독을 했는데 아쉽게도 그 판결문의 내용이 원문 그대로 성경에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 전문이 정확하게 기록이 되었다면 그들이 왜 위로를 받았고 왜 기뻐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기록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의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총회의 주제는 주로 이방인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짐승처럼 여겼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행함으로 인가 믿음이로 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다시 힘든 멍에를 메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갑론을박 토론을 하고 결론을 내리고 드디어 그 판결문을 낭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방인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복음을 듣고 자신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더 이상 그 어떤 것에도 종노릇을 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가르친 것을 반박하고 복음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이방인들이 복음을 전한 바울이 옳은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유대인이 옳은지를 판단받기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교회에 보내놓고 애타게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이 되어서 그동안 복음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잘못된 것이 되고 그렇게 좋아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된다면 얼마나 허전했겠습니까?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옳은 것으로 판결이 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무거운 짐을 메게 하지 말라, 이방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노라,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도 우리의 형제들이다. 이런 내용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총회를 통해서 내린 결론들입니다. 이런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이런 위로와 기쁨을 주십니다. 율법의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 얻게 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가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함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들만 가지고도 우리는 가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습니다. 형사들이 왔다가 갔다가 해도 괜히 불안하고 교통경찰차가 지나가도 마음이 불안한 게 우리 인생입니다. 혹시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 사람 옛날에 나쁜 짓 했어요. 라고 고발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이런저런 모든 것 다 덮어주신다고 하니까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만 가지고 판단하신다고 하니까 일마나 안심이 됩니까? 나같이 부족하고 못나고 별로 한 일이 없는 사람도 동일한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본문 32-33절에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라고 했습니다.

 

  유다와 실라라는 사람은 예루살렘교회 총회의 판결문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여기 실라라는 사람은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바울과 함께 선교지로 떠난 사람입니다. 이들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라고 했지만 구약시대의 선지자와는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신약시대의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유다와 실라를 선지자라고 소개를 한 것은 그들이 여러 가지로 가르칠 때 그들의 말이 개인의 사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안디옥교회로 올 때 개인의 자격이 아닌 예루살렘교회가 공식으로 파견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을 파견할 때 보통 사람들이 아니고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고 이미 예루살렘교회에서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여러 가지의 말도 앞에서 말한 판결문의 내용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판결문을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고 더 확신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는 말들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말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권면이 되고 믿음을 굳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연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이 전통이 있는 신앙도 아닙니다. 다들 이제 예수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교리가 확립이 되었거나 이런 저런 신앙서적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믿음이라는 것이 풍전등화와 같이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연약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참 신기한 것은 그 시대의 신앙이 제일 순수하고 제일 강한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신앙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직장도 사업도 가족도 목숨까지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앙은 신앙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을 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보다 이 세상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직장이 가정이 자녀들이 세상 즐거움이 신앙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모든 것 다 하고 남는 시간에나 하는 것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들 중에 참된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걱정이 됩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 믿음을 바르게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따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진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교회 부흥을 위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세상의 즐거움들이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도 버리지 못하고 신앙도 버리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믿음을 굳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진 이 위대한 믿음을 소중히 여기고 이 믿음을 강하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족에게도 이 믿음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이 믿음을 지키도록 이 믿음을 굳게 하도록 교육하고 믿음으로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학교나 직장이나 출세나 그 어떤 것이라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종이 되어서 세상에서 왕 노릇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세상을 거지처럼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을 위해서, 오직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강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34-35절에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라고 했습니다.

 

  34절의 내용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끔 없는 구절이 있습니다. 성경의 장이나 절은 후대에 사람들이 성경을 쉽게 찾기 위해서 만들어 넣은 것이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습니다.(인쇄술이 발견되어서 인쇄를 하기 시작한 1500년경에 성경의 장절을 구분하였습니다) 34절이 없는 이유는 사본에 따라서 조금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유다가 실라가 같이 돌아간 것이 아니라 실라는 안디옥에 남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라가 곧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갔다가 왔을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없어도 될 내용이기도 합니다.

 

  35절은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떠난 뒤에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안디옥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주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바울과 바나바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주의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보면서 왜 기도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기도하라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잘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기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니까 주의 말씀은 다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성경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전체가 무엇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며 무엇을 중점적으로 배워야 하는가를 말하지 않으니까 꼭 필요 없는 것들을 배우고 외우면서 정작 꼭 배워야 할 말씀들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가르친 주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가서 그것이 옳다는 판결을 받고 와서 다른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예수님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정말로 그런지를 가르치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들으시면 맨날 하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로 들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너무나 위대한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이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하는 일이고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귀한 말씀입니다. 이 믿음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하고 더욱 굳건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잘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며 이 복음만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참된 기쁨을 주는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