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02)

  본문 : 행 16:6-10

  제목 :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사도 바울은 이방나라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가 선교하면서, 교회를 세우면서 가장 큰 관심을 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고 돌아서면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거짓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이상한 교회가 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바울의 또 하나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해서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복음을 믿는 믿음이 변질되지 않게 하는 일이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탄의 전술전략은 교회를 핍박해서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비슷하게 변질시켜서 다른 모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처럼 면죄부를 팔거나 매관매직하는 타락한 이익집단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일제 강점기처럼 일본천황을 현인신 즉 예수님과 같은 인물이라고 해서 같이 섬기게 해서 교회를 타락시킵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일본 신에게 예배하고 그 다음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합니다.

 

  현대교회도 이익집단이 되고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게 하고 윤리도덕이나 선행을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듭니다. 밖에서 보면 십자가 종탑이 있고 예배도 드리고 해서 비슷한 것 같지만 복음이 변질되어 있거나 아예 없는 엉터리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틈틈이 쓴 서신서들을 보면 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복음에 있는 믿음이 구원의 핵심임을 늘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바울 서신서들을 많이 연구하고 설교한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늘 복음을 외치고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많이 연구하고 설교했기 때문에 복음이 성경의 핵심이고 교회가 선포하고 가르쳐야 할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는 중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계획은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거짓선생에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복음이 변질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바울의 계획을 바꾸게 하시고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건너가게 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도시들은 대부분이 이스라엘 북쪽 지역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지역의 도시들입니다. 소아시아 지방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무시아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서 비두니아라고 하는 곳으로 가려고 애를 썼는데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를 하셔서 드로아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도를 보지 않고 계시기 때문에 들어도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여기 무시아는 이스라엘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터키의 북서쪽에 있는 도시인데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면 동쪽으로 가서 아시아지방을 가고 드로아로 가게 되면 서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드로아는 터키 서쪽의 항구도시로 유럽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여기서 배를 타고 유럽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대목은 성령님께서 바울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마음대로 여기저기 다니는 것 같았는데 성령님께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갈 때에는 가만히 두었다가 원하시지 않는 곳으로 가면 그 길을 막고 계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유럽으로 건너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니까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뭐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지만 드로아로 가려고 하니까 날씨도 좋고 가는 동행도 생기고 이런저런 좋은 일들이 생겨서 잘 갈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을 유럽으로 건너갈 드로와 항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간청을 하기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마게도냐 지방 즉 유럽으로 건너가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본문 6-8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니라”라고 했고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령님과 예수님의 영은 같은 말입니다. 초대교회 때 아직 교리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님을 예수님의 영 혹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이 세계만방에 퍼지는 것을 원하시지만 때로는 그 순서를 정하기도 하시고 어떤 지역을 제한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뜻에 의해서 전파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 순서와 지역이 정해집니다.

 

  또 본문 6절 ‘말씀’과 10절의 ‘복음’도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복음이 어디서 어떤 순서로 어떻게 전해지는가가 아니라 말씀이 무엇이며 복음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복음에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의의 기준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의하면 믿음에서 믿음으로 즉 오직 믿음이 의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제가 이렇게 수시로 복음의 정의와 믿음의 정의를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고 진리의 핵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때로는 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본문을 통하여 복음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복음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 누구든지에 제한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만인구원설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누구든지 예수님 믿으면 되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대형교회를 지향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애를 쓰는 것은 "누구든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를 잘 못 이해해서 만인구원설도 나오고 예정이나 선택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무시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누구든지’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고 했는데 왜 제한이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성경을 조직적으로 연구한 신학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대답하기를 성경은 그 '누구든지'를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은 ‘누구든지’로 제한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복음에 대한 것들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는 안 되고 유럽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을 믿을 그 ‘누구든지’는 아시아지방에는 없고 유럽에 분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서 복음은 서쪽으로 서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복음이 아시아 서쪽 끝에서 시작을 하여 그 서쪽인 유럽으로, 그 서쪽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그 서쪽인 아시아로, 그 서쪽인 중동과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진한 복음이 오늘날 아시아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왔고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중동지방으로 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는데 그 복음이 서진을 해서 이제는 아시아에도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시아에 살고 있을 때 복음이 아시아에 왔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고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복입니다. 지금 나에게 이 귀한 복음이 잡동사니가 섞이지 않고 순수한 복음이 전해지고 내가 그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9-10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바울 일행에게 아시아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말고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고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바울을 옮기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자연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계획하신 반대쪽으로 가면 어려운 일이 생기게 하시고 같은 방향으로 가면 쉽게 가게 해주셨습니다. 나중에는 환상까지 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되었고 그 뜻을 따라서 행동하려고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청하기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 환상을 본 후에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도 때로는 일이 잘 안되기도 하고 때로는 일이 잘 될 때도 있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꿈을 꾸기도 하고 환상을 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인지 우연히 일어난 일인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좋은 일을 하는데도 일이 잘 안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을 하는데 오히려 일이 잘 풀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이나 환상이 그냥 헛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그런 일들을 성경말씀에 비추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방향인지를 살펴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여서 신중하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에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으시고 유럽의 마게도냐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마게도냐 사람들이 마음이 착했든지, 예수님을 믿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든지, 이런저런 선한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만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마음이 악하거나 나쁜 짓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절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간적인 면들이 복음의 전파를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본문을 주석하면서 “복음의 가르침을 순순히 받아들여서 순종하는 마음은 사람들에게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인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고....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거스르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복음을 전하면 순순히 받아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믿음을 거스르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가 복음을 받을만하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는 것이며 인간의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착하거나 좋은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들 역시 아시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서 멸망당할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이 환경적으로 화려한 교회당이나 수천수만이 모인 곳에 선포되고 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잘 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똑바로 살고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어지거나 그런 사람들이 복음도 잘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화려하지 않는 교회당 많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 복음이 더 잘 전파됩니다. 똑바로 살지 못하고 좋은 일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더 잘 찾아오고 그런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저 사람들”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저 사람이 세월이 흐르고 지역이 바뀌어서 오늘 우리가 ‘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가운데 수많은 지역으로 복음이 퍼져나가는 가운데 그 자리에 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복음이 얼마나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고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귀한 복음이 우리가 듣게 되고 그 복음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냥 어쩌다가 찾아온 것이고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귀한 복음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귀한 복음을 말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말하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황금보석보다 더 귀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처럼 버리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의 역사를 살펴볼 때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는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른 믿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세월이 조금만 흐르면 교회에 침투한 거짓선생들 때문에 복음이 변질되어 엉뚱한 교회가 되고 맙니다. 변질된 복음을 가진 가짜교회들 때문에 복음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교회도 없어지고 맙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그런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고 화려한 교회가 많아서 부흥하고 있는 것 같지만 복음은 변질되고 사라져서 엉뚱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복음이 전해질지 모르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 소중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이 복음을 귀한 것으로 알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가치를 더 잘 알고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더욱 굳게 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우리가 이 복음을 사수하고 바르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사명인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바른 교회운동 진리운동에 앞장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시아에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유럽에 있는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복음이 서진하여 오늘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한 '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이 땅에 귀한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