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11)

  본문 : 행 17:10-15

  제목 :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10.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고 사는가,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가 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것이고 이 세상을 떠나서도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을 상속받아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엄청난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사탄의 종이 되어서 사탄이 시키는 대로 죄나 지으면서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며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사탄과 함께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인생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가 있을까요? 이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 편에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거나 어떤 위대한 일을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은혜를 베푸셔서 선물로 주실 때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사람인 우리만 아는 비밀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풀 사람은 미리 다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전에 미리 다 예정을 하셔서 구원받을 백성을 미리 다 선택해 두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택만 하시고 그대로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이러저런 조치들을 다 취하여 주셨습니다.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태어날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때에 들을 수 있는 장소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복음을 들었을 때도 택함을 받은 사람은 그 복음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때도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아시아에서 때로는 유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이 세상에 보낼 때 그들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심성을 주신다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운 마음을 주시고 간절한 마음을 주셔서 그 너그러움과 간절한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본문 10절에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설명하자 몇 명의 유대인들과 수많은 헬라인들과 적잖은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바울과 실라를 시기하여 붙잡아서 당국에 고발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을 찾기 위하여 바울이 기거했던 야손이라고 하는 성도의 집에 들어가서 뒤졌지만 바울은 찾지 못하고 야손과 그 형제들을 읍장에게 끌고 가서 가이사가 아닌 예수라는 사람을 로마의 왕이라고 하는 반역자라고 고발을 합니다.

 

  그 틈을 타서 바울과 실라는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서 야밤에 데살로니가를 떠나서 베뢰아라는 도시로 오게 됩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80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당시의 수도였고 큰 도시였지만 거기에 비하면 베뢰아는 교통의 중심지도 아니고 상업도시도 아니고 아주 작은 도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곳에 보내신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쫓기다 보니까 작은 도시로 도망을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도망을 가서 아무 도시나 들어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아래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금 거기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바울을 거기 보내신 것입니다.

 

  바울이 베뢰아에 도착을 해서 또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는 성경을 많이 공부한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데살로니가에서처럼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회당에 와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베뢰아 회당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모아 두시고 거기서 미리 성경을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곳에 급하게 파송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인천하고도 여기 구월동에서 함께 모였습니다. 구월동이 고향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인천 토박이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멀리서 가까이서 이렇게 모여서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이북에서 오신 분도 계시고 소흑산도에서 오신 분도 계시고 부산에서 대구에서 하동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여기까지 모이게 하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기에서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시대에 참 믿음을 볼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여기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시려고 특별히 여기 모이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세우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모여들게 하십니다. 여기저기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에 그런 교회들을 세우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확신합니다. 여기에 복음이 선포되고 우리가 그 복음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확신을 갖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본문 11-12절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베뢰아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곳 회당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과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특별하게 베뢰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또 그 말씀이 정말로 그러한가를 성경을 살펴보면서 확인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사람을 창세전에 선택을 하시고 선택받은 백성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시기나 태어나는 장소도 조정을 하신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그 장소에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은 그들이 태어날 때 그들의 심성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심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은 비교적 마음이 착하십니다. 마음이 더 너그럽고 하나님을 찾는데 간절하고 신중하게 생각할 마음을 주십니다.

 

1) 더 너그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너그럽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베뢰아 사람들은 마음이 더 너그러워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한 사람들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시기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마음 즉 하나님을 섬기려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베뢰아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럽다고 했는데 여기서 너그럽다는 말은 단순이 마음이 넓고 이해의 폭이 넓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로 번역을 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 성경은 “신사적이어서”로 번역했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든지 가문이 좋지는 않아도 심성이 착해서 세상의 사람들처럼 악하고 버릇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예의 바르고 생각도 바른 신사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독하고 악한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할수록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거나 신사적인 사람이 예수님을 더 잘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태어날 때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2) 간절한 마음을 주십니다.

  간절한 마음은 무슨 일을 할 때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특별히 이 간절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열심, 열정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부지런한 사람 열정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잘 삽니다. 그러나 그런 열정이 없이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사는 사람은 본인도 힘들고 주변의 사람들도 힘들게 합니다. 열심을 내되 어떤 일에 열심인가도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을 가지고 악한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악한 일만 아니면 모든 일에 열심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열정을 신앙을 위해서 쓰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가장 귀한 일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자신을 위한 가장 귀한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를 대강 적당히 듣는 사람은 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들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진리를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날마다 성경을 상고할 마음을 주십니다.

  설교를 들을 때 열심히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뜻인가를 곰곰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사가 앞에서 설교를 하면 무조건 옳은 말인 중 믿고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아멘하고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무렇게나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야기도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처럼 합니다. 때로는 그런 자기의 경험담이 성경과 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쪽으로 가라고 하는데 나는 서쪽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오라고 하시지만 내 생각에는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인간의 공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을 자랑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강단의 현실입니다.

 

  교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성도님들이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무조건 아멘만 하지 말고 정말로 그러한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바로 선포하는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바르게 선포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특별히 선택해 주시고 우리 속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마음들을 주셨습니다. 너그러운 마음도 주시고 뜨거운 열정도 주시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할 마음도 주셨습니다. 이 좋은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 열심히 들으시고 성경도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리를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은 좋은 것이니까 무조건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왕이면 믿음이 굳건할수록 좋습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의 약점을 노리기 때문에 믿음을 강하게 해서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지식으로 알고만 믿어도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다가 뜨거운 마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믿으면 더 좋습니다. 더 나아가서 믿음을 삶에 실천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더 좋습니다. 그냥 지식으로만 믿는 외줄로 된 믿음을 가지면 여러분이 믿음을 놓치고 방황하기 쉽습니다. 마음의 확신 삶의 경험 이런 것을 더해서 아주 든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너무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믿으면 좋고 안 믿으면 그만이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믿음만큼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믿음을 굳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본문 13-15절에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이 데살로니가에까지 전해지자 바울을 잡으려고 했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무리들을 이끌고 80키로 떨어진 베뢰아에까지 와서 소동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거기도 더 이상 있지 못하고 바닷가까지 도망을 해서 사람들의 인도를 받아서 아덴으로 떠났습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 끝까지 가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고 그 과정에서 아덴도 거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베뢰아를 떠나 아덴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악한 일에 쓰임을 받는 유대인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받았고 그 성경을 줄줄 외우도록 공부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도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께 충성을 한다고 생각했고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임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받아서 그것을 가지고 오히려 악한 일에 쓰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창세전에 선택해 주셨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우리를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마음들도 주셨습니다. 너그러운 마음과 열정과 성경을 상고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좋은 것들을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일에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도 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