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74)

본문 : 행 13:20-23

제목 :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20.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서로가 지켜야 할 이런저런 약속들을 여러 가지 법으로 정해놓고 서로 그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며칠 전에 어떤 용감한 젊은 여인이 술이 만취가 되어서 차를 몰고 역주행을 해서 큰 사고가 난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차들이 오른쪽 도로로 주행을 해야 된다고 서로 약속해 놓고 거꾸로 역주행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 약속을 지킨 다른 사람들이 생각도 못한 방향으로 차가 오니까 사고가 나고 만 것입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서로의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가게 주인이 이것은 오천 원이라고 가격을 붙여놓으면 오천 원을 내고 그 물건을 가져오면 됩니다. 그런데 돈을 안내고 그냥 물건만 가지고 나오면 약속을 어긴 사람이 되고 도둑이 됩니다.

 

노력을 하고 일을 하고 투자를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 없이 그냥 돈을 벌려는 것은 불법입니다. 다른 사람 일을 시키면 그 일한만큼 정당하게 인건비를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불법입니다.

 

이런 것 외에도 서로 개인 간에 어떤 약속을 하고 계약서를 쓰면 그 계약대로 이행을 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계약서가 없이 말로 약속을 한 것 까지도 지킵니다. 그런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신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런 약속들의 시작은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우리 인간을 창조하셔서 이 천지만물을 다스리며 살게 하시면서 이런저런 규칙들을 정하고 약속을 잘 지키면 복을 주고 안 지키면 형벌을 받도록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성경은 온통 이런 언약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 간에 지켜야 할 일들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경은 두 권으로 나누어진 성경을 하나는 구약, 즉 오래된 언약이라 하고 또 하나를 신약 즉 새로운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오래된 옛 언약과 새롭게 맺은 새 언약이 중심축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23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하신 언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은혜 받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본문 23절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은 옛 언약이고 신약성경은 새 언약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 두 언약이 별개가 아니고 서로 연결된 언약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옛 언약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지켜서 이행하신 약속이 새 언약입니다.

 

옛 언약을 기록한 구약성경에는 크고 작은 많은 언약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들은 그것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언약입니다.

 

대표적인 율법을 십계명이라고 하는데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잘 섬기면 은혜를 베풀어 천대까지 복을 받게 하고 우상을 섬기면 삼사 대까지 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 하지 말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신 이런 계명들을 지키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을 가지고는 이런 약속들을 잘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들을 다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바르게 잘 살아보려고 노력은 히지만 모든 사람이 약속을 어기고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한 우리 인간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약속들 말고 아주 특별한 약속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관한 언약들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인간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관한 특별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특별한 약속들을 잘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했을 때 인간은 그로 인해서 다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입혀주심으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노아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나 악한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큰 홍수를 내려서 노아가족만 제외하고 모든 인간들을 다 죽게 하셨습니다. 죽어가는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약속을 하시기를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보여주신 것이 무지개입니다. 약속을 어긴다고 무조건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 길을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그 구원의 언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언약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이 세상 만민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약속이 그의 아들 이삭으로 또 손자 야곱으로 이어지고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로 이어지고 그리고 그 언약이 다윗에게 연결이 됩니다.

 

오늘 본문의 약속은 바로 그 언약을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로 시작을 해서 아브라함으로 그 후손으로 내려온 구원의 언약이 다윗과의 언약으로 연결이 되어졌습니다. 다윗의 언약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다윗왕가가 무너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그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언약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받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부흥기를 맞이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 되었고 군사적으로는 주변 나라들을 다 물리쳐서 감히 이스라엘을 넘보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언약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이 다윗 왕과 함께 하심을 사람들에게 알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두로 왕 히람이라는 사람이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서 다윗을 위해서 왕궁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런 좋은 왕궁에서 이런 평화를 누리던 다윗 왕에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좋은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천막 안에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이 나단 선지자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7:2)라고 하면서 성전을 건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생각 없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에 왕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 왕에게 성전 건축을 하지 말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윗 왕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8:3)라고 하셨습니다.

 

다윗 왕이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 내면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그 자체를 싫어하셨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하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삼하7:6-7)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해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지파 어느 누구에게도 왜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의 폐단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성전을 건축하지 않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성전건축의 장점보다는 그로 인해서 잘못될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외형적인 성전만 바라보고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죄인 구원에 관한 것을 잊어버릴 것이 걱정이셨을 것입니다. 다윗이라는 대표적인 인물이 성전건축을 했다고 하면 유대인들이 성전건축을 최고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은 소홀히 여길 것이기 때문에 다윗은 성전건축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예상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소중하게 여겼지만 정작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통하여 깨달아야 할 구원의 문제는 소홀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 건축은 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구원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구원에 대한 약속이 다윗 언약이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의 건물에만 집중하고 성전을 통해서 주시는 구원의 메시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성전은 화려하게 지었지만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익의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나 그 이후에 지은 성전들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성전의 제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제사를 드리면서 오히려 죄를 짓고 욕심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성전을 없애버리고 나라도 망하게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성당을 성전처럼 지었습니다. 성당을 지으면서 면죄부를 팔고 그것을 통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교회가 타락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문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교회당 건물에 대한 문제입니다. 빚을 내서 교회당을 건축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많은 헌금들이 허비되고 있습니다. 그런 헌금을 거두어 빚을 갚기 위해서 건물을 자랑하고 헌금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배당 건물을 잘 지어서 편리하게 예배를 드리고 서로의 교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속에 꼭 있어야 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로서의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이 사람의 후손에서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본문 2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못 짓게 하시고 대신 언약을 주셨는데 그 언약이 그 후손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신다는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하서 7장에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1-13)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다는 집은 건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을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씨로 이어지는 왕의 가문이 견고하게 유지 될 것이며 그 후손이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며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후손이 성전을 건축한다는 말씀도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한 성전건축을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성전 건축,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 성도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으로 세워짐을 말합니다.

 

다윗에게 주신 이 언약이 이루어져서 새 언약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죄 대신 십자가에 피 흘리게 하시고 그 피로 세운 언약이 새 언약입니다. 자신이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죄 대신 흘리신 피라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언약입니다.

 

바울은 그의 설교를 통하여 이 언약의 성격을 확실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이 바로 이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하신다는 약속이 그 약속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하여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외형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약속들은 우리를 죄에서 죄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흉악한 죄인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윗처럼 훌륭한 사람까지도 평생을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나는 흉악한 죄인이며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 같은 사람이 흉악한 죄인이라고 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흉악한 죄인들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그 언약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구약성경의 옛 언약이 신약의 피로세운 새 언약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핵심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교회당 건물도 교회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도 교회가 하는 선한 일들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통한 구원이 교회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나에게 있는가. 그것이 신앙의 가장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구약성경의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를 살펴보시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꼭 붙잡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