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2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77)
  본문 : 행 13:26-27 
  제목 :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삶속에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사람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핵심 진리를 알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도 모르고 최소한 행동해야 할 도리도 모르고 짧은 자기의 소견대로 삽니다. 꼭 알아야 할 진리를 모르고 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더 불행한 사람은 진리를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텐데 거꾸로 알고 반대방향으로 가니까 가면 갈수록 절망으로 멸망으로 달려갑니다. 진짜로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를 거꾸로 알고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그것이 옳다고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신념이 강하고 바른 길을 간다고 생각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가 가는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 사람은 신념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옹졸하고 고집불통인 사람이며 최고로 불쌍한 사람일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고집불통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알아야 할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와 반대되는 길을 가면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간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알지 못하고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본문 26절에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의 말씀, 구원의 복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말씀이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가장 귀한 말씀입니다.

 

  26절에는 구원의 말씀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보내준 구원의 말씀을 받지 못한데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가장 소중한 말씀은 “구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우리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주신 말씀이 가장 귀한 말씀입니다. 이런 구원의 말씀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기는 하지만 그 구원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신비한 비밀, 미스테레온의 비밀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라고 했습니다. 그 신비한 비밀의 복음인 구원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을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거기 모인 사람들을 형제들아 라고 부른 것은 단순이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 형제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들을 말합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아직 구원의 말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지금 바울이 이야기 하는 구원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형제자매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형제자매들은 부모님의 피로 한 형제가 된 사람들이지만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의 피로 형제자매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형제자매들은 이 세상에서만 형제자매의 정을 나누면서 사는 사람들이지만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토록 형제자매로 지낼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업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영원토록 함께 지낼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도들은 이 세상의 형제자매보다 더 친밀하게 지내야 할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서로서로 친밀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형제자매들이고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살 사람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후손과”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을 받을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할 때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9장에서 배웠듯이 아브라함에서 난 씨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니고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많은 자녀들이 났고 또 이삭에게서 야곱에게서 많은 자손들이 퍼졌지만 그들을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들만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아브라함의 자손은 여기 모인 우리 성도들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약속의 자손이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죽여서 제사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시면서 믿음의 훈련을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그 때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엄청 사랑하시고 가까이 해 주시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쉽게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알고 바르게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구원의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 “아브라함의 후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이런 특별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런 특별한 사람들이 알아야 할 구원의 복음을 모른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본문 27절 말씀에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앞 절에서는 구원의 말씀을 들을 성도들에 대해서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손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호칭을 한 바울은 여기에서는 선지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 관리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산 이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흉년을 만나서 애굽으로 이주한 후에 거기서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다시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리고 남북의 모든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 험한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고 다른 모든 지파들이 거의 전 세계로 흩어졌을 때 유다지파의 후손들 중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남겨두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선민의식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로마에 나라를 빼앗기고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었고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관리들이란 그들 중에서도 더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전과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자신들만의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관리들이란 유대교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정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많이 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실지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제일 잘 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런 하나님의 일에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제일 옳고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모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몰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들을 성경에 기록하셨는데 그 약속들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들을 잘 몰랐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수천 년 동안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을 몰라보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셨을 때 이 소식을 들은 헤롯왕은 예수님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피하셨지만 그 주변에 예수님과 같은 시기에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을 반대하고 함정을 파고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고 말았습니다.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외우고 그 뜻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선지서에는 유대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지적하고 그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그들의 죄에서 구원해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늘 읽고 외우고 배우면서도 그 말씀의 핵심을 몰랐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렇게 핵심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정말로 몰랐을까요, 알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 모르는 척 했을까요?

 

  확실하게 잘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른 이유가 자신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명예와 기득권과 세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그 깊으신 사랑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어린양이 되셨고 그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가 다 사함을 받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자행한 장본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악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고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큰 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 진리인 구원의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구원의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신앙의 중심에 없이 엉뚱한 길로 가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교회에서 복음에 관한 설교를 많이 들으셔서 모든 교회들이 그렇겠지 생각하시겠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교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왔기 때문에 천주교도 예수님을 믿는 비슷한 곳이겠지 생각하실 것입니다. 물론 천주교에서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유일한 구주로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동네에 천주교성당이 하나생겼습니다. 그 간판을 보면 예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000 성당”이라고 교회입구 간판에 써놓았습니다. 간판에 십자가도 없고 예수그리스도도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신사임당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율곡 이이라고 아주 훌륭한 학자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아들을 둔 신사임당도 아들 못지않게 훌륭한 어머니로 생각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그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훌륭한 아들을 둔 마리아를 성모라고 하면서 예수님보다 더 높이 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리긴 했지만 마리아가 훌륭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이지 그의 육신의 어머니를 믿고 따르라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를 봐도 없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인간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푸는 것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 가운데도 예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무리 엄청난 것이라도 예수님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진리이며 복음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 구원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일마다 낭독하고 외우고 배우면서도 그 말씀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를 몰라보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말씀을 확실히 받아서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의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며 그 복음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런 귀한 진리를 알게 되었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고 바른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가슴깊이 새기며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