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79)
  본문 : 행 13:32-37 
  제목 :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  

 

  “32.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구약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뽑으라고 하면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뽑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분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고 비교적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대부분 인간은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나, 가인이나 노아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나 왕들이나, 성경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사는 죄인들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심지어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세 사람인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도 알고 보면 치명적인 죄를 지은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조상으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을 받고 유대인의 조상이 되어서 그 후손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게 하는 위대한 임무를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치명적인 죄를 저질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고 첩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 이스마엘을 통하여 아랍민족이 생기게 되고 그들에게 모슬렘이라는 아주 호전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종교가 생겨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출해낸 엄청난 일을 감당한 지도자입니다. 400여년의 세월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켜서 자유인이 되게 한 것만 가지고도 모세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백성들의 구출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한 우리들의 구원을 보여주신 귀한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적인 실수를 저질러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보고도 자신은 들어가지 못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가를 시작한 아주 특별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다윗 왕가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오시게 하는 일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 역시 남의 애내를 빼앗고 그 남편을 죽이는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착각하고 인구를 조사한 일을 통해서 그 벌로 칠만 명이나 죽임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의 이런 부정적인 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훌륭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일에 쓰임 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들어 사용을 하셨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한 것을 아주 귀하게 보고 훌륭한 사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설교에도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계속 되는 것은 이들이 예수그리스도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가 되심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중에 비교적 좀 착한 사람도 있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삶도 다 살펴보면 크고 작은 실수들이나 치명적인 실수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의인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신분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자랑하지만 우리의 자랑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처럼 헛된 삶이 아니고 보람된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이 세상을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로 잘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지만 진짜 성공적인 삶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라고 오늘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그 많은 약속들이 정말로 소중한 약속이 된 것은 그 약속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본문 32-33절에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설교를 하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구약성경의 약속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강조함으로 예수님께서 구원자가 되심이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일으키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일으키다’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아니스테미(ἀνίστημι)라는 단어입니다. 34절에서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라고 했을 때 그 ‘일으키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는 것 즉 다시 살게 하신 것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단어는 다른 뜻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사도행전 3장 22절에서 ‘아니스테미’라는 단어는 ‘세우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운다고 했는데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세운다고 할 때 아니스테미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마태복음 9장 9절에는 이 ‘아니스테미’라는 단어를 ‘일어나’로 번역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3절의 ‘일으키사’는 물론 부활의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세우셨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들이 그 예언 속에 들어 있는 약속들이 메시야에 관한 약속이고 예수님께서 그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약속들이 성취되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고 했습니다. 시편 2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를 인용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은 이방의 나라들이 분노하고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며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자를 대적한다고 지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이것을 다윗 왕가를 대적하는 세상 나라들과 군왕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메시야를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세력들을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군왕들과 권세자들이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6-7). 하나님께서 시온에 왕을 세우셨으며 그 왕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한 회당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한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야가 되시며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강조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본문 34-35절 말씀에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죽어서 그 시체가 썩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 역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이미 예언하신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 다윗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은사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거룩하고 믿을만한 확실한 은사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받게 되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신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가 성경의 어느 곳을 인용한 것인지 본문은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석가들은 아마도 이 다윗의 은혜를 이사야서 55장에 기록된 다윗에게 주어진 은혜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서 55장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1-2)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도 오늘날의 사람들과 같이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고 배고파하면서도 그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할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헛수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고 나서 3절에 하신 말씀이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앞의 말씀 즉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말씀만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핵심은 3절의 말씀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그 해결책으로 주는 확실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세상에서 헛된 말에 기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육신이 문제가 아니고 그 육신의 영원한 생명을 좌우하는 영혼의 생명이 중요한데 그 영원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나아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와서 귀를 기울이고 꼭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하여 맺은 영원한 언약인데 그 영원한 언약이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가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입니다. 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거룩하고 믿을만한 확실한 은사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35절-37절에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또 다른 시편이란 시편 16편을 말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개역한글)라고 했습니다. 시편 16편도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내 영혼을 버리지 않으실 것임과 몸이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을 고백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다윗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시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죽어서 그 몸이 썩을 것이지만 주의 거룩한 자 즉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가 오시면 그 몸이 부활하여 다시 썩는 일이 없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윗의 시가 다윗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메시야에 대한 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예언의 시가 다윗 자신을 말하는 것이면 다윗은 이미 죽어서 그 시체가 썩었기 때문에 그 예언이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예언이 다윗 자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장차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었으며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모든 성경의 예언과 언약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바라며 하나님을 따르고 있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모세의 이야기가, 다윗의 이야기가, 그리고 모든 선지자들을 통한 예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다윗에게 주신 거룩한 은사요 믿을만한 확실한 은사요 우리가 사모하며 따라야 할 은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통하여 주신 언약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메시야로 세우시고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통해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시고 그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