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85)
  본문 : 행 14:1-7 
  제목 : 주께서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1.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과정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보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은 이방인에게 복음전파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파송을 받아서 1차 선교여행을 하고 있는 장면을 여러분이 보고 계십니다. 구브로라고 하는 섬에서 시작을 하여 소아시아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선교를 하고 이고니온으로 해서 루가오니아의 루스드라와 더베 지방에서 선교를 하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고니온에서 전도를 하다가 그곳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하자 루가오니아로 가는 장면까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사도가 오래 동안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고니온에서는 꽤 오랫동안 머문 것으로 보입니다. 이고니온은 지금의 터키지방 서남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교통의 요지로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 때도 이 도시를 들렀고 거기서 디모데를 만났고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터키는 당시의 소아사아지방으로 그 유명한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세워진 나라였으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교회들이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으며 무슬림이 자리를 잡고 있는 나라입니다.
  
  사도바울이 세계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다양한 민족들과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형편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그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같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했지만 한 결 같이 십자가의 복음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봅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본문 1절 말씀에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 말씀에는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앞장에서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들어가서 아주 장황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유대인들에게 속아서 박해를 하고 쫒아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발의 티끌을 털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와서 역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와서 말씀을 전했으나 결국은 그곳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하지 루기오니아로 도망을 가서 거기서 또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루기오니아 지방에서는 전도를 한 후 그곳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서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박해는 점점 더 강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박해를 했고 그 다음은 돌로 치려고 했고 그리고 드디어 돌로 쳐서 반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렇게 점점 심해지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하는 복음은 늘 동일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늘 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주제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라고 했습니다. 회당에 들어가서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를 생략했습니다. 본문만 가지고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단어가 있는데 이 번역되지 않는 단어의 뜻을 보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말하다’라는 단어 뒤에 후토스(οὕτως)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뜻은 ‘이런 방법으로’, ‘이와 같이’, ‘이렇게’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도바울이 말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란 바로 앞장에서 안디옥의 회당에서 말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말을 했다는 뜻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의 설교는 여러분이 이미 아시는 대로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7절에 “복음을 전하니라”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고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영생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의 설교들은 그 주제도 다양하고 때때로 시대에 맞추어서 변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살피고 사람들에게 맞추어서 다른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설교의 주제는 변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의 목적이 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설교의 주제이자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그저 종교의 하나로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설교가 아니고 강연이나 인간교육에 불과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자주 드리는 것은 잘난 척 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교회가 바로서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신 목적인지를 바로 알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바른 길로 가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우리가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의 길을 감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땅 끝까지 다니면서 선교를 하면서 한 결 같이 이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본문 3절 말씀에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의 해답은 “주께서....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말한 것은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말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말했고 주님께서는 증언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 편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흉악한 죄인인 우리들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신 사랑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우리가 생각해도 정말로 엄청난 은혜인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 은혜를 그대로 받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는 은혜를 거절하고 자기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고자 합니다. 의를 이루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의 복음을 전할 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가끔은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동안 세상에 너무나 많은 마음을 빼앗겨서 쉽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십니다. 여기 이고니온에도 선택을 받았지만 쉽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쉽게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거기 머물었던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머물면서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도 그런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고 덤비게 만들었습니다. 언제 그들이 돌을 들고 쳐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인줄 알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기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그 일에 함께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함께 힘을 합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손에 능력을 주셔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해 주심으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증명해주신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능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일을 말합니다. 때로는 불치의 병을 고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그런 표적과 기사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복음을 그들이 들었을 때 순순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표적들을 보여주시고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옛날에 중국에 복음이 들어가기 시작할 때 중국에 초청을 받아가서 설교를 했답니다. 설교가 끝나고 난 후에 어떤 귀부인이 찾아와서 목사님께서 설교할 때에 저의 불치병이 나았노라고 하면서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자기를 초청한 목사님이 하시는 말이 여기서는 그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나무 흥분하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서계만방에 복음이 전파될 때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초창기 복음이 들어올 때 이런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표적과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복음이 많이 전파되고 교회 역사가 오래 되면 이런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들이 지금도 일어나면 쉽게 전도를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요즘도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가보면 말만 그럴듯하게 하지 실지로는 별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표적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더 복되다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지 않고도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기적 자체입니다. 이런 사탄이 주름잡는 세상에 살면서 그들의 엄청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본문 2절에서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그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반항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을 따르는 사람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을 따르는 사람들은 생각하면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 불쌍한 사람들이 자기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악감을 품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악감을 품게 하고 대항을 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못될 뿐만 아니라 사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을 제일 배 아파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복을 많이 받아서 이 세상에 잘 사는 것은 배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오히려 영원한 천국을 외면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은 사탄에게 있어서 최고의 불행입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복음을 믿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 그 관리들이 힘을 합하여 복음을 전하는 두 사도를 모욕하고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뒤로하고 도망을 갑니다. 바울은 2차전도 여행 때 다시 이곳에 들러서 그 남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다시 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오늘날도 그 사탄의 세력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방해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세상의 것들로 유혹을 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게 만듭니다. 진리의 복음을 외치는 교회에 사람들이 가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유혹에 넘어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도 저주를 받을 것을 알지 못하고 엉뚱한 것들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설교에 넘어가서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살면서도 교회에 다닌다고 그것도 큰 교회 위대한 목사에게 설교를 듣는다고 자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없다. 이 세상에서 더 잘 살자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성도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고 영원한 천국에서 기뻐 뛸 그날을 소망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그대로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어도 오직 복음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세력들이 여러 가지로 방해를 해도 끝까지 이 복음을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