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60)
  본문 : 행 12:6-10 
  제목 : 베드로의 탈옥

   

 

  “6.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9.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사도행전은 기독교가 시작이 되어서 기독교의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본질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큰 그림을 하나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와 세상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원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은 세계만방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그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것을 방해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말살하려고 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박해하여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런 관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반대합니다. 복음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방법은 초대교회와 좀 바뀌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반대는 자기들의 권력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박해를 하고 잡아 가두고 죽여서 방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좀 다릅니다. 물론 일부 모슬렘 국가에서는 아직도 그들이 가진 힘으로 박해를 가하고 죽여서 복음을 믿지도 못하게 하고 전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은 복음을 믿고 전하게 하되 복음을 변질시켜버렸습니다. 비슷한 다른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복음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결국 자신들처럼 멸망에 이르게 해버립니다.

 

  이런 큰 틀에서 오늘 본문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가 가진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이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악한 세상이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입니다. 그 이스라엘 나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기 위해서 특별히 세우신 나라입니다. 이스라엘나라를 통하여 나타내시고 싶은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세상은 그런 이스라엘 나라를 그냥두지 않았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유혹을 해서 그들도 이방인들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나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헤롯 왕가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철저하게 방해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유대교로 위장 개종을 하고 유대인의 왕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등장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 태어날 당시에 왕이었던 헤롯대왕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헤롯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스는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있으면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그가 예수님도 죽이고자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를 “저 여우”(눅 13:32)라고 할 정도로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헤롯 안디바스의 아들로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이 헤롯 아그립바가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잡아넣었습니다. 그리고 후일 사도바울이 붙잡혀서 심문을 받을 때 등장하는 인물도 헤롯 아그립바 2세인데 이 사람은 헤롯 아그립바의 아들입니다. 그는 바울의 증언을 듣고 다소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거나 바울의 편이 되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당시와 초대교회 시대의 유대인의 왕을 대표하는 인물인 헤롯가의 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여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역에 역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의 권력을 가졌던 유대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시편 2편 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대적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대로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5:18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을 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특별히 예수님을 통한 구원사역을 철저하게 방해를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기에 굴하셔서 이 특별한 일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수행해나가셨습니다. 때로는 그 방해공작을 이용해서 진행을 하시고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역사하시는 방법이 다양해서 우리가 다 일일이 이해를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멋진 설교 한편 남기고 죽임을 당하여 순교의 길로 갔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설교한편 남기지 못하고 갑자기 붙잡혀가서 죽임을 당함으로 순교를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들이 순교를 당할 때 가만 두고 보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우리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순교는 헛된 순교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순교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사도의 경우에는 아주 특별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사도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가 있었음을 봅니다. 야고보의 경우에는 잡혀가던 날 바로 죽임을 당했지만 베드로의 경우는 그날이 무교절이라 바로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셨고 죽임을 당하기 전날 밤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구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사도의 탈옥이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누가는 베드로 사도가 아주 강력한 힘에 의해서 붙잡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투옥은 왕명에 의한 특별한 투옥이었습니다. 헤롯왕이 계획적으로 그리스인 중에서 몇 명을 죽이고자 했고 그 중에 대표되는 인물인 야고보사도와 베드로사도를 선택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것으로 보아서 베드로도 죽이려고 붙잡아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교절이라 바로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군인 넷씩 네 패에 맡겨 지켰다고 했습니다. 네 사람을 한조로 4교대를 해서 지키는 사람에 의해서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잠을 잘 때에도 그냥 재우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 군인 두 사람을 양손을 쇠사슬로 함께 묶어서 잠을 자게 했습니다. 베드로사도가 일어나면 병사들도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도망갈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지키는 초소가 두 개나 있었고 마지막 문은 철문으로 된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고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탈옥할 수 없는 감옥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주 쉽게 베드로사도를 탈옥시켜주셨습니다.

 

  탈옥을 시켜주시는 과정에 있어서도 기적적인 방법을 동원하셨지만 엉뚱한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축지법이나 순간이동 같은 것을 사용하셔서 갑자기 감옥에서 나와서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일어나게 하시고 쇠사슬이 풀리게 하시고 띠를 띠고 신발을 신고 겉옷을 입고 나오게 하시고 파수꾼들이 지키는 두 곳을 지나게 하시고 쇠문을 여시고 빠져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셔서 베드로를 탈출하게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탈출을 하되 베드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스스로 하게하고 베드로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은 천사의 도움으로 하게 하심으로 이것이 사실임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하셨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이렇게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뜻을 이루어 나가기도 하시고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고 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세상의 권력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고 마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기적에 대한 우리의 자세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크게 두 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스데반 집사나 야고보사도의 경우를 보면서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그것도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던 일꾼들을 이렇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도 가만히 계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모르시거나 힘이 없으셔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듯이 때로는 우리들의 고난이나 순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고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편안한 가운데서 구원을 얻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어려움을 통하여 고난을 통하여 더욱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고난도 때로는 허용하십니다.

 

  또 하나의 경우는 본문의 베드로의 경우처럼 기적적인 방법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적인 도우심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임무를 가진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 경우에는 기적이 동반되지 않고 보통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실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나타난 기적을 재현하려고 합니다. 기적적으로 불치의 병을 고치고, 기적적으로 죽음에서 살아나고, 기적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특별한 은사들을 이용하여서 어려운 문제들을 기적적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적들은 우리들이 흉내를 내고 따라하라고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심으로 그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그 일을 따라 하려고 함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경지에 오르려고 하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아주 위험하고 교만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결해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그 일이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께 맡기고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기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시든지 아니면 그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든지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보다 보통의 방법으로 우리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주로 원하십니다. 보통은 어려운 일을 당하기 전에 미리 막아주십니다. 죽을 뻔 했는데 살려 주시기보다 죽을 뻔 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늘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육신의 건강도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기도할 때 죽을병에 걸렸을 때 기적적으로 낫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평소에 건강한 삶을 살도록 지혜를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몸에 해로운 것은 먹지 않고 운동도 적당하게 잘 하고 마음도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너무 과욕도 부리지 않고 몸과 마음이 평안하게 함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함부로 하면서 건강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본문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떤 박해가 오더라도 굴복하지 않는 불굴의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공격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가진 믿음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육신은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임을 당할 때 우리의 영혼은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을 변질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협박하다가 이제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예수님을 믿되 적당하게 믿으라고 유혹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말고 다른 복음 비슷한 복음을 따라 적당히 믿으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강 믿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확실한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대강 적당한 믿음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폭력으로 방해하고 유혹을 하여 다른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이 일을 진행해나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이 일을 끝까지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기적을 동반하시거나 보편적인 방법으로 하시거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관여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