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62)
  본문 : 행 12:18-23 
  제목 : 헤롯이 죽으니라  

 

 

  “18.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지혜롭고 선한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지혜롭게 생각하고 그 일을 선하게 사용합니다. 미련하고 악한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미련하게 생각하고 그 일을 악하게 사용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선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일을 만난다고 해도 그 일을 지혜롭게 해석을 하고 선한 일을 하는 기초로 삼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물론 그 좋은 일을 통하여 선한 일을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런 어려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정말로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악한 일을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핑계거리로 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미련하고 악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깨닫지 못하고 그냥 악하게 행동합니다.
우리가 지난 몇 주 동안 살펴보았던 헤롯왕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악한 일만 합니다. 그 결과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헤롯의 악행

 

1) 파수꾼을 죽임


  본문 18, 19절에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헤롯왕이 베드로사도를 죽이려고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어두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기적적으로 구출해내셨습니다. 지난밤에 그 일이 있었으니까 날이 새서 아침이 될 때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감방 안에 있어야 할 베드로 사도가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쇠사슬에 양손을 간수와 함께 묶어서 간수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감방 안에 가두어두었기 때문에 탈옥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아주 큰 소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롯은 파수꾼을 심문하고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화풀이를 파수꾼에게 하고 베드로 대신 파수꾼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충성스럽게 근무하던 파수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헤롯의 죄는 지혜롭지 못하고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붙잡혀 온 베드로가 아무도 모르게 없어졌으면 진상을 바르게 잘 살펴서 조사를 해보고 사건을 바르게 파악을 해야 하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잘못을 파수꾼에게 뒤집어씌우고 죽여 버렸습니다. 헤롯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의 미련함 때문에 놓쳐버렸습니다. 사건만 잘 살폈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하는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기회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아무 잘못도 없는 파수꾼을 죽여 버린 죄입니다. 사람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큰 죄입니다. 특별한 잘못이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죽게 한 것은 더 큰 죄입니다. 적군도 아니고 자신에게 충성하던 사람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한 죄는 큰 죄입니다.   

 

  헤롯과 같은 세상의 악한 군왕들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계시면서 우리를 대할 때 정말로 사랑으로 대해주십니다. 우리 같은 인간들이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이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시고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군왕들과 권력자들은 도둑과 같아서 우리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려고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우리 성도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의 진리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만났을 때 특별히 그 일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때 우리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왜 이런 일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몸이 자꾸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하고 약을 먹고 고쳐야 합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왜 그런 병이 생기게 되는가를 알고 예방을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다시는 이런 어려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남을 억울하게 하면 안 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이 잘 되도록 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함


  본문 20절 말씀에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라고 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중해의 연안의 도시로 구약시대 때부터 이스라엘과 많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살던 이웃도시입니다. 이 두 도시는 상업과 무역이 많이 발달한 도시였지만 농산물은 이스라엘에서 수입하여 먹는 도시였습니다. 농산물을 줄 때 공짜로 거저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돈을 받았던지 다른 물품을 받았던지 정당한 대가를 주고 가져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에게 무슨 마음이 생겼는지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대단히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아마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을 가지고 가면서 자기에게 와서 굽실거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가져간다고 해도 양식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특별 선물도 바치고 그래야 하는데 그냥 곡식만 가져가고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양식을 팔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찾아와서 화목을 청하고 사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나라에 있는 물건 팔고 안 팔고는 왕의 고유권한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두로와 시돈에게 식량을 팔지 않겠다고 해서 그것이 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됩니다. 먹지 못하면 사람은 죽기 때문에 양식을 가지고 위협을 하는 것은 아주 치사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줄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과 화평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의 먹고 사는 일에 관하여 어려움을 겪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개도 음식을 먹을 때는 때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있어서는 서로 배려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목사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생명의 양식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그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항상 최선의 말씀을 준비하여 여러분에게 공급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이 영혼의 생명을 위한 양식이 생명의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생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일을 소홀하게 생각하면 여러분의 영혼은 시들고 죽기 때문입니다.

 

3)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함


  본문 21-23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했습니다.

 

  헤롯이 날을 잡고 왕복을 차려 입고 단상에 앉아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 모인 사람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로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헤롯이 연설을 멋있게 해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거기 모인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있는 자리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교제를 해주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막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자녀라고 인정하시고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부가 되시고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우리와 한 몸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우리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지 않으신 너무나 거룩한 분이시며 감히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거나 하나님께서 받을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말이 아무리 좋아 보이고 유익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신구약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아주 짧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하는 말을 감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교를 하거나 하나님 말씀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여 교만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따라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이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헤롯의 행동에서 헤롯의 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파수꾼을 죽인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억울하게 죽이는 것은 큰 죄이지만 그보다 더 큰 죄는 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미련한 행동이 더 큰 죄입니다. 우리는 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기쁜 일이든지 괴로운 일이든지 그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뜻을 발견하는 것이 소중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화를 낸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큰 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은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모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복음이 세계만방에 알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해야 합니다. 

 

  헤롯의 죽음

 

  2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면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던 헤롯의 죽음은 비참했습니다. 천년만년 권세를 누리면서 잘살 줄 알았는데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주의 사자가 툭 치니까 죽게 되었는데 벌레에게 먹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죽음이 의학적으로 어떤 죽음을 말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벌로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과 벌레가 먹어서 몸이 썩어가는 비참한 질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흉악한 죄를 지은 헤롯에게 하나님께서 징벌로 내리는 죽음입니다. 자연적인 죽음이나 보통 질병이나 사고의 죽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벌을 내리셔서 죽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는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죽은 후에 심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모두들 죽게 됩니다. 늙고 병들고 기력이 쇠하여져서 죽게 됩니다. 그러나 가끔은 하나님께서 이런 특별한 형벌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죽음너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고 심판이 없는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헤롯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비참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위대함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최후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이미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서 최후의 심판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시험을 많이 치렀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시험들을 치렀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 강도사 고시 목사고시 이론시험 실기시험 면접시험 시험도, 시험도 참 많이 치렀습니다. 합격도 하고 불합격해서 다시 도전하고 또 치르면서 살았습니다.
   
  시험을 치르면서 주기도문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문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시험은 시련이라는 뜻과 유혹이라는 뜻도 있지만 시험 즉, 테스트(Test)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탄이 교묘하게 유혹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래서 유혹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연단시키기 위하여 당하는 시련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을 당하면 힘이 듭니다. 시련 즉 연단을 받지 않고도 튼튼한 신앙을 가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테스트도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고 테스트 하여서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테스트들은 잘 준비하여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서 테스트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믿음을 꼭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헤롯은 이 세상의 악한 권력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죄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늘 살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형벌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형벌을 받지 않도록 믿음의 소중함을 알고 잘 간직하고 믿음생활 잘 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미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