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64)
  본문 : 행 13:1-3 
  제목 :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을 나눕니다. 1장에서 12장까지와, 13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전반부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와 사마리아까지와 세계선교의 본부가 되는 안디옥교회까지 전해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후반부는 안디옥에서 시작된 이방 세계의 선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복음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들을 살펴보고 이런 역사를 통하여 지금 여기 있는 나에게도 이 귀한 복음이 전해졌음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좋은 복음을 주셨고 그 복음을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그 혜택을 받아 누리게 해주셨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할 일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따랐고 온갖 박해와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심지어는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쓴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헌신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사도행전을 더 깊이 살펴보면 우리가 가진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서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의 진리를 더 바르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게 해주시는 이 진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한 사도들과 복음전도자들의 삶을 통해서 이 복음을 받은 우리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따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더욱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고 확실히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답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하나님을 더 바르게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는 사도행전의 후반부인 13장을 시작합니다. 13장의 시작은 안디옥교회의 일꾼들을 소개하고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세우고 안수하여 파송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세계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본문 1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라고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선지자와 교사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는 여러 직분들과 그 직분을 가진 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는 그 직분도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있고 그 하는 일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초대교회의 일꾼을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행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고전12:28)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엡4:11)라고 했습니다.

 

  이런 직분이나 은사들 중에는 초대교회에만 특별히 있었던 것이 있고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직분과 은사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목사와 교사는 오늘날에도 있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직분이나 은사는 그와 비슷한 직분이나 은사는 있지만 초대교회와 정확하게 똑같은 것은 없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의 일꾼을 선지자와 교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교사와 같이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성격이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라고 하면 그 뜻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서도 선지자가 그와 같은 일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헬라어에서 선지자라는 뜻이 미리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에 예언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장래에 일어날 일을 먼저 알고 말하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하고 선지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선지자나 예언자란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을 하여 그 말씀을 중심으로 장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전달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칼빈은 본문의 선지자를 “예언하는 은사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탁월한 성경 해석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선지자가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고 성경을 탁월하게 해석하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의 직분이 초대교회의 선지자와 교사의 직분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성경말씀 그대로를 가르칠 때는 교사의 직분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이고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해석을 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칠 때 선지자의 직분과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교사의 일보다는 선지자적인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성경 본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바르게 전할 때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많이 아는 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경을 지식으로만 알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 내용 많이 알고 외어서 시험을 치룰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의 핵심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길로 갈 수 있고 바른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선지자와 교사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선지자이고 누가 교사인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교사와 선지자의 이름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은 사도행전에 여러 번 등장하기 때문에 조금 귀에 익은 이름일 것입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사람들이 바나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밭을 팔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유대인 중 레위사람으로 기독교 초창기에 개종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특별히 사도바울과 함께 일을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을 때 사도바울을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에게 소개한 사람이고 사도바울이 다소에서 쉬고 있을 때 안디옥교회로 불러온 사람도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사도바울과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부조금을 전달하였고 바울과 함께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바울과 함께 이방선교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라는 사람의 이름도 함께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분들의 이야기는 성경 다른 곳에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인지 무엇을 한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하면서 복음전도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유대인이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이방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여러 가지 형편에 처해 있던 사람들이 다 함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세계적인 복음입니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사람들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우리의 복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본문 2,3절 말씀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의 나라로 복음을 전하러 나갈 선교사를 세울 때 사울과 바나바를 세웠는데 이 두 사람이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안디옥교회의 선지자와 교사였는데 그 중에서 유대인으로 구성된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유대인들이 성경말씀을 더 잘 알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기독교가 신흥 종교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섬겼던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세우면서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같이 보내면서 각각 따로 세우라고 하신 것은 각자가 해야 할 임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울이 선지자로서 성경을 탁월하게 해석을 하여 그 속에 있는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이라면 바나바는 그 진리를 잘 알도록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담당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사울이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전도하는 사람이라면 바나바는 전도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권면하여 양육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달란트대로 각자가 받은 사명대로 일을 하되 서로 힘을 합하여 복음에 만방에 전해지는 일에 사용 받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각각 받은 달란트가 다르고 받은 사명이 다릅니다. 그런 우리의 달란트와 사명을 서로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나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크든지 작든지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세워서 보낼 때 금식했다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다고 했습니다.

 

  금식이 무슨 의미가 있기에 금식할 때에 성령님께서 일꾼을 세우라고 하셨고 일꾼을 세울 때도 금식하고 기도해서 세우게 하셨을까요? 흔히 우리가 생각할 때 금식이란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관철시킬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을 각오로 하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이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시라고 할 때 금식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믿음의 능력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내가 더 힘 있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금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금식은 그와 반대의 경우에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할 때 그 하나님 뜻 앞에서 나의 뜻을 죽이려고 할 때 금식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며 죄인임을 깨닫고자 할 때 나의 잘못을 하나님께 시인하고 회개할 때 금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를 섬겨 금식할 때”라고 했습니다. 언제 금식을 했느냐고 하면 주님을 섬기려고 할 때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금식이 아니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금식을 했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금식을 했습니다. 주님을 섬기고자 할 때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내 뜻은 죽여야 합니다. 내 뜻을 죽이고 주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나를 죽이는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금식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철저하게 성부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금식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능력을 발휘하거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시기 위해서 금식을 하셨습니다.

 

  여기 섬긴다는 말은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금식하며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나를 죽이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에 참된 예배는 나를 죽이는 금식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게 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이렇게 금식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거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나의 육신의 생명보다 예배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서라도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교사를 세울 때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세웠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금식하면서 세웠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금식하면서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도 안디옥교회와 같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이 최고인 줄 알고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한 줄 알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상의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여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많아지도록 전도와 선교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에는 여러 가지 달란트를 받은 선지자와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깨달아 전하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전도하여 예배 자를 세우는 일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참된 교회의 모습이 우리교회에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된 예배 자 참된 복음 전도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