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71)
  본문 : 행 13:17-19 
  제목 :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17.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사도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한 회당에 들어가서 행한 설교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비시디아 안디옥이라고 하니까 그런 도시가 있었는가 보다 하고 그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별 관심이 없이 설교한 내용만 살펴봅니다.

 

  지금의 비시디아 안디옥은 터키의 아주 한적한 시골 촌으로 그 때 바울의 설교를 기념하는 기념교회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이 도시는 정말로 대단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대해서 자세히 연구하려면 머리도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안디옥이라는 이름은 헬라적인 이름이라고 해서 아마도 헬라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세운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헬라문화가 최고의 문화로 각광받았기 때문에 최고의 학문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도시였는데 아주 특별하게 로마 황제가 직접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도시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황제가 직접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총독부가 자리 잡고 있는 중요 핵심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유대인들이 와서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배우며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터키의 작은 도시에 시골 사람들을 앉혀놓고 설교를 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최고의 학문을 자랑하는 사람들과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의 종교를 가지고 있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을 앉혀놓고 최고의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 바울의 위치는 바나바가 원목사라면 바울은 부목사정도로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앞에서의 설교를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 한 것은 바울이 그런 사람들과 맞상대를 할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당시의 최고의 학문을 배운 엘리트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유대교에 최고의 열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헬라적이고 로마적이고 히브리적인 사람들에게 동시에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바울의 설교를 아주 중요한 설교로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대강 적당히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 앞에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하는 설교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19절의 말씀을 가지고 세 번째 말씀을 드립니다. 짧은 세절이지만 오랜 세월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또 알아야 하고 교훈을 받아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19절 말씀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살펴보고 있는데 어떤 때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한없이 너그러우신 분으로 나타나시고 어떤 때는 아주 엄격하고 단호하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18절에서는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라고 하셨고 19절에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사”라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오랫동안 참아주시고 어떤 때는 가차 없이 멸망을 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 오래 참아 주시고 어떤 때에 멸하시는지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 참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멸망시키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내가 멸망을 당해야 할 사람인가, 오래 참아주시는 중이신가, 계속 사랑을 받으면서 살 사람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성경말씀을 살펴보고 설교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더 잘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수시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보습을 살펴보고 점검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사
  
   19절에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나안 땅은 물이 없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서 애굽은 물이 풍부해서 비가 별로 오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좋은 땅이었기 때문에 야곱 때 그의 식구 70여명이 가나안 땅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이사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400년을 사는 동안 장정만 60만 명이 되는 큰 민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전락해서 힘든 삶을 살았고 그들의 고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탈 출 시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오는 길에 광야가 있었습니다. 그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지나가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기쁨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만 늘어놓다가 7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 동안 훈련을 받아야 했고 그나마 애굽을 나올 때 장정이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훈련을 통과한 젊은 세대들이 모세의 후계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여호수아 장군을 앞세우고 가나안을 정복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서를 보시면 그 땅을 정복하여 각 지파를 따라 나누어주는 장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에는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명기 7장에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여호수아 24장에는 정복이 끝난 후 정복한 족속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기록에 의하면 일곱 족속은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잘 살고 있는 이 일곱 족속을 완전히 다 죽여 버리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하여 볼 말씀은 일곱 족속을 멸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미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멸절시켰다는 말입니다. 그냥 쫓아 낸 것이 아니고 모두 죽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7: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6:21절에 보면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사정없이 남자나 여자나 아이들이나 할 것 없이 다 죽여 없애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짐승들까지도 다 죽여 없애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매정하게 하셨을까요? 교회에는 안 다니면서 성경을 지나가다가 조금 읽은 사람은 이런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은 참 냉정하고 무자비한 분이라고 비웃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냉정하고 무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아주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범한 사람은 여차 없이 그냥 죽여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다 진멸을 당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몰라보고 삽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탄의 졸개를 따르며 잡신들을 섬기면서 삽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그 인간의 후손이 아니고 제 스스로 생긴 인생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 자신도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몸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짓만 골라한다면 그 사람은 죽어도 마땅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온갖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그 우상을 절대로 버리지 못할 사람들임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을 살려두면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자꾸 섬기라고 유혹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3-4절에 가나안을 점령할 때 주의 사항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가나안을 점령하다가 예쁜 며느리 감이 있다고 데리고 와서 며느리를 삼거나 좋은 사위 감이 있다고 데리고 와서 사위를 삼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겉보기는 멋있게 하고 있지만 그들 안에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녀들을 유혹을 해서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해 너희들도 진멸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여호수아 6:21절에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 성에 있는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로 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을 칼날로 멸하는 것이 하나님께 그것들을 바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제도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제사제도를 보면 짐승을 아주 비참하게 잡아 죽이고 피를 흘리고 어떤 때는 아주 불살라서 없애버립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하는 악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 와서 다 불살라 버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래서 그런 제사를 하나님께 좋아하시고 흠양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람 대신 짐승을 잡아 죽여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짐승을 비참하게 죽여서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할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상숭배를 단호히 거절하여 오직 하나님만 섬김으로 멸망당함을 면하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이 끝난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24:14-1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우상 구덩이인 애굽에서 탈출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원주민들을 모두 죽여서 없애버리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 것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에게 있는 모든 우상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물론이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도 버리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많이 잘못되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각오를 해야 하는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세상의 욕심을 채워달라고 하는 기도들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조금 잘못이 있어도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게 진멸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우상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고 한 여호수아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19절 하반 절에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셨는데 그 기간이 약 사백오십 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백오십 년은 이 구절을 어디에 놓는가에 따라 해석이 다릅니다.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성경 번역처럼 기업으로 나누어주시기까지가 사백오십 년이라고 한다면 쉽게 계산이 나옵니다.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에서 종노릇 한 세월이 사백년이고 광야 생활 사십년 그리고 가나안 정복 기간을 십년으로 보면 가나안을 떠나서 다시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게 된 세월이 사백오십 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냥 이렇게 생각을 하겠습니다. 가나안을 떠나온 이스라엘을 다시 가나안에 정착시킨 그 세월이 사백 오십 년이며 참 중요한 세월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참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면서 흉년만 피했다가 얼른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데 450년이 걸렸고 그것도 그들 스스로 돌아 온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고난을 체험 한 후에 하나님께 그 고통을 부르짖어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도우심을 주심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잠깐 형편이 좋아질 때까지 신앙생활 좀 쉬다가 다시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떠나면 돌아오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편의상 잠깐 떠났다가 얼른 다시 돌아오면 되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번에는 귀신이 수십 배로 들어와서 붙잡고 못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중요한 것은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기업으로 주셨다는 말은 유산 상속과 관계가 있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듯이 각자의 몫을 나누어 주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각각 땅을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것은 땅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내 땅은 좁다, 좋지 않은 땅이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 정말로 시끄러웠을 것인데 다행히 잘 분배를 했습니다. 사백오십 년 동안 나라도 없이 내 땅도 없이 나그네처럼 살던 그들이 내 나라를 가졌고 내가 살 내 땅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땅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삶입니다. 평생 한 평의 땅도 소유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땅을 가져보는 것이 참 행복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땅땅거리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기업은 영원한 기업입니다. 이 세상에서 땅을 유산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께 유업으로 상속받는 것입니다. 나는 돈도 없고 아무런 공로도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너무 가지신 것이 없으셔서 나에게 발붙일만한 땅 한 평 상속해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에게 그보다 더 소중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믿음을 상속해 주셨습니다. 영원한 기업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몰라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인정사정없이 멸망시켜버리시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는 오래 참아주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상속해주시는 너무나 좋은 분이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