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73)
  본문 : 행 13:20-23 
  제목 :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20.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찰리 채플린’이라는 희극배우가 남긴 유명한 말이 몇 마디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나무를 하다가 칡넝쿨을 걷는다는 것이 그만 잠자는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호랑이가 달려들자 나무꾼이 나무위로 올라갔는데 호랑이가 나무를 흔들어서 떨어진다는 것이 호랑이 등으로 떨어졌답니다. 호랑이가 자기 등에 탄 나무꾼을 떨어뜨리려고 마구 달립니다. 나무꾼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하여 호랑이 등가죽을 잡고 매달려 있습니다. 논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던 농부가 이 모습을 멀리서 보고 불평을 합니다.  나는 평생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고생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서 호랑이 등이나 타고 다니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하더랍니다.
  
  멀리서 보니까 호랑이나 타고 놀러 다니는 행복한 사람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남들이 멀리서 볼 때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다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사는 불쌍한 사람이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윗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볼 것인데 다윗의 경우도 이 경우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멀리서 보면 다윗은 참으로 굉장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중에 가장 훌륭한 왕이라고 평가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등치가 엄청나게 큰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물맷돌 한방으로 쓰러뜨린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아주 멋있고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양치는 소년에 불과한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귀한 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왕 중의 왕이 다윗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인생여정을 잘 살펴보면 비극 중에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이 또한 다윗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였고 겨우 왕이 된 후에도 자식에게 배반을 당하여 도망을 다녀야 했고 이런저런 고난이 그칠 날이 없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다가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로 거의 일평생을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면서 지냈고 이런저런 비극들이 그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고 그 벌을 달게 받으면서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파란만장한 다윗의 생애를 오늘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핵심만 살펴보고 우리가 받을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본문 21절에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라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여 별로 내키지 않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이지만 아무나 아무렇게나 세운 왕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지정하셨고 각 지파 중에서 제비를 뽑아서 당선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용모도 단정하고 키도 다른 사람들 보다 어깨가 더 있을 정도로 큰 사람이었고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미움을 사서 그의 왕족이 폐족이 되었고 다윗을 통하여 새로운 왕가를 시작하셨지만 사울이 다윗에게 비해서 크게 더 나쁜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울의 첫 죄는 제사장이 아니면서 왕의 권위로 제사를 집전한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사를 집전해야 할 제사장 사무엘이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늦게 오자 성질이 급하여 자기가 집전해서 제사를 드린 일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미움을 사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사무엘이 늦게 와서 대신 제사 한번 집전을 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한 번은 전쟁에 나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하셨는데 사울이 그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오고 우양 중 가장 좋은 것은 죽이지 않고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사울의 변명에 의하면 소나 양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에 좋은 짐승이라서 끌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사무엘에게 임하시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윗을 질투해서 죽이려고 한 일이나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들을 85명이나 죽이고 그 가족들도 죽이는 큰 죄를 지었지만 그 때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자 악령이 그에게 들어와서 큰 죄들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 지은 죄는 제사와 관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반드시 제사장을 통하여 드려야 되었지만 그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는 것과 전쟁에서 이기고 하나님께 제사할 명목으로 가져왔다는 짐승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사와 관련된 명령은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제사는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자기 생명 대신 짐승을 잡아 죽이는 것인데 그 제사를 지내면서 불법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그 죄의 형벌이 이렇게 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제사를 드리면서 오히려 죄를 지으면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울이 베냐민 지파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유다지파에서 왕손이 나온다는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울은 임시적인 왕에 불과했습니다. 사울은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인간으로서 완전한 왕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다윗 왕이 진짜 왕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왕을 통하여 교훈을 받을 것은 사울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베냐민 족속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될 유다족속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서도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사제도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며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얼마나 우리에게 절실한가를 알아야 되는데 그 중요한 제사를 드리면서 그런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예배의 핵심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날 구원해주셨음에 대하여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으면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본문 22절에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마침 지난 주간에 제가 강의 나가는 신학교에서 사무엘하서를 가지고 다섯 시간 동안 특강을 했습니다. 사무엘하서는 다윗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을 드린 대로 다윗 왕의 이야기는 멀리서 보면 참으로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참한 삶을 산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1)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폐하시고 새로운 왕가를 세우는 장면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유다지파 가운데서 왕을 세우시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에게 이새라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 아들 중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삼으셔서 그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게 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룻기’라는 네 장으로 된 작은 책이 있습니다. 룻이라는 사람이 모압이라고 하는 나라에 살던 외국인이었지만 그 나라에 살러온 유대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 남편이 죽자 시모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으로 와서 이스라엘 사람이 되고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그 남편을 대신해서 다시 결혼을 한 사람이 보아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보아스라는 사람이 유다지파 사람이고 예수님의 조상이 될 사람이었기 때문에 룻이라는 여인도 예수님의 조상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은 여인이었습니다.   

 

  룻기서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 이 여인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유다지파인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선택해 놓으신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지파를 통해서 그 유다지파 중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그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계획해놓고 계셨습니다. 그 계획 속에 있는 다윗을 만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시는 눈은 우리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사무엘의 눈에는 등치가 크고 건장하고 힘이 센 사울과 같은 사람이 왕이 되기에 적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새의 집에 갔을 때도 거기 다윗의 형들이 일곱 명이 있었는데 다 키가 크고 건장하게 잘 생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그 크고 잘 생긴 형들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형들보다 비교적 등치도 작고 남자답게 못생겨서(얼굴이 아름답더라고 했는데 여자 같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형들은 군인으로 전쟁에 나가 싸울 때 집에서 양이나 치던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시고 다윗을 마음에 맞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그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사람의 성격까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중에 사울이나 다윗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셨는지를 조금 알 수 있습니다. 왜 사울을 싫어하시고 다윗을 좋아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나 다윗이나 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울보다 다윗이 더 못된 죄를 짓습니다. 사울은 제사장이 아니면서 제사를 집전한 것과 전쟁터에 나가서 제사 드리기 좋은 짐승 몇 마리 남겨온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남의 아내와 간통을 하고 그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서 충성스런 군사를 죽이는 아주 흉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짓고 난 후의 모습은 많이 달랐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변명을 했습니다. 사무엘이 늦게 왔기 때문이라고 남의 허물을 찾았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짐승을 가지고 왔다고 거짓 변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마음까지 다 아시기 때문에 그런 변명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을 다 아시고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아주 흉악한 죄를 지었지만 죄를 지적받은 즉시 아무런 변명 없이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평생토록 회개하면서 보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다윗은 대적하여 싸우려고 하지 않고 맨발로 울면서 도망을 갔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을 배반한 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형별로 알고 달게 받은 것입니다.

 

  사울의 집안사람인 시므이라는 사람이 쫓겨 가는 다윗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당장 그 사람을 잡아 죽일 능력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저주하는 것임을 알고 달게 받았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일을 당하면서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으로 한한 벌을 달게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핑계를 대고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들은 다 나의 잘못으로 알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그 괴로움을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2)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죄에 대한 다윗의 그런 자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런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이중적인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그의 왕위를 자손들에게 잘 계승시켜서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떠나거나 이런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떠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잘못하는 일이 있어서 벌을 받기도 많이 받고 했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임무는 그의 삶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나서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평생 통감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평생 외치고 살았습니다.

 

  시편에 보시면 대부분의 시가 다윗이 쓴 시이고 많은 부분들이 죄에 대한 회개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밧세바를 범한 죄를 지적 받은 후에 지은 시가 시편 51편에 기록되어 있는데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지를 고백합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죄 중에서 자신을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이 다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피 흘린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삶을 통하여 그가 지은 죄를 통하여 구원의 하나님이 필요함을 고백하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하여 구원자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였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의 외모나 우리의 선행이나 우리가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로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속에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사랑하는 선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실수를 할 때 잘못을 했을 때 핑계나 변명을 하지 말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나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라고 생각하고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런 부족한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늘 생각하시고 이 구원의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찰리 채플린의 말과 거꾸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멀리서 볼 때는 참 힘들게 사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우리를 알고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위대한 믿음의 진가를 알고 나면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최고 행복한 길을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