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40)
  본문 : 행 10:1-8 
  제목 : 가이사랴에 고넬로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1.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10장에는 고넬료라고 하는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간단하게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지 않고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었음을 자세히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믿게 된 사연을 이렇게 자세히 기록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연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사건을 이렇게 자세하게 10장 한 장 전체와 11장에도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이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복음이 처음으로 사도들을 통해 이방인에게 전해져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사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사도며 예루살렘교회의 핵심인물인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진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먼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사연이기 때문에 이 기사를 이렇게 자세하게 많은 면을 할애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의 전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고넬료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달리야 부대라고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본문 1절 말씀에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라고 했습니다. 

 

  가이사랴는 예루살렘 서북쪽 약 100km 지역에 있는 도시입니다. 8장에서 살펴 본대로 빌립이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내며 가이사랴에 이르렀다고 한 그 도시를 말합니다. 그 도시에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점령군인 로마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대의 이름을 ‘이달리야부대’라고 했는데 이 부대는 이탈리아인들로 구성된 부대입니다. 로마군대는 피지배국의 사람들이나 동맹국의 사람들을 뽑아서 부대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달리야부대는 이탈리아 사람들만 뽑아서 만든 정예부대를 말합니다. 총독을 보호하거나 특별한 임무를 위해서 로마인으로 구성된 특별한 정예부대를 말합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라고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일개 보병부대는 천명의 군사로 구성되었고 그 우두머리를 천부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100명씩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천부장 휘하에서 백 명을 지휘하는 지휘관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고넬료가 이달리야부대의 백부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 자기들이 지배하고 있는 속국에 파송된 본국의 군대들은 피지배 인들을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고 막대했습니다. 칼빈은 당시 그들의 정신 상태를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로 그들의 도덕의식은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죄에 대해 무감각한 것도 떼강도들과 흡사하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인이라는 자부심과 피지배국을 관리 감독하는 군부대라는 우월감으로 아주 교만한 자세로 유대인들을 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군복만 입으면 도덕성을 잃고 함부로 대하는데 이정도의 위치에 있는 군인이라면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떼강도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선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래도 좀 선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과 쉽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쉽게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선을 행하는 성도들만 사는 나라에서 산다면 그래도 뭔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온통 죄악뿐인 세상에서 사니까 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서 쉽게 죄를 지으면서 삽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을 보면서 사니까 우리들도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악한 환경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죄책감 없이 악을 행하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면서 산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환경 탓을 많이 하고 삽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그런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그가 경건하여

 

  본문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이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는 아직 이방인이었고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마치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은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신앙심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그 신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바르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교적 예수님을 쉽게 믿을 수 있고 또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미 마음에 신을 섬기는 마음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교나 불교나 샤머니즘이나 그들이 섬기는 신은 다르고 섬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신을 인정하고 신을 섬기는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경건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서 경건(敬虔)이란 공경할 경(敬)자와 공경할 건(虔)자를 써서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신을 대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아주 공손하게 신을 숭배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헬라어에서는 ‘경건’을 유세베스(εὐσεβής)라는 단어를 씁니다. ‘좋은, 바른’ 과 ‘예배하다, 경배하다’ 라는 뜻을 가진 말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며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이란 진심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세를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최고의 자리에 모시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을 경건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 가지는 첫 번째 행동이 하나님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알아도 잘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큰 소리를 치며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 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말로 두려운 마음으로 최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식들 앞에서 가족 앞에서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가족들도 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게 됩니다.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먼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두 돌 판이 그런 것이고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항상 함께 다니는 것입니다. 여기 백성들은 함께 군 생활을 하는 동족들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22절에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라고 하는 것을 보아서 그가 주둔해 있는 가이사랴의 유대인들을 구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유대인들을 구제한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얻고자 함도 아니고 오직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구제를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구제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상관에게 잘 했다든지 자신의 동료 친구들에게 잘 했다면 그것은 반대급부를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 해주면 그 사람들도 나에게 잘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잘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잘 해주는 것은 오히려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적군들에게 잘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반역자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구제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유대교로 개종한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르고 자기 기도를 들어준다는 보장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했고 기도하면 아버지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큰 특권을 받은 사람도 귀찮다고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고넬료는 그런 약속도 받지 못했지만 항상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교훈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미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구제를 많이 하였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착하게 살고 바른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구원에 이를만한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선행보다는 늘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선행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타락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선행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절반공덕이라고 해서 사람이 먼저 선행을 할 때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행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도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얌체처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까 구원을 받고 나서 선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옛날처럼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워서 선을 행하면사 살도록 하는 것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만 보아도 고넬료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미 선한 일을 많이 했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많은 폐단들이 있었습니다.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선행을 강조하다가 보니까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유일의 진리 엄청난 진리를 포기하고 그 알량한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비록 선행이 우리 삶속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며 아무리 많은 선을 행한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우리 인간이 선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의 구원이 아무리 악한 일을 행한 흉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악한 사람까지도 사랑하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십니다. 악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지만 선한 사람은 착한 사람은 더 좋아하시고 더 잘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가끔은 깡패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가끔은 타락하여 허랑방탕하게 살던 사람도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형벌을 받은 사람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착한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심성이 비교적 세상 사람들보다 착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백성들을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그들이 세상에 나올 때 착한 마음을 주셔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은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 악한 마음이 잘 포장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선한 사람인 척 하고 좋은 일도 하지만 그 마음에는 교만이나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악한 마음 때문에 교회에 오지 못합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아주 선한 마음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한 마음이 있기에 성령님이 오셨을 때 받아들이게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에 나오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착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착한 마을을 주시고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 착한 마음이 그 착한 일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게 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선한 일 그 자체만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선행과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선행과 기도만 가지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그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를 만나게 해 주시고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사실임을 믿게 해주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오순절에 제자들이 경험한 방언을 경함하게 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구원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고넬료가 유대인들보다 더 진실 되게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기도를 드렸지만 그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선행과 기도가 믿음으로 가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며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참된 경건이며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참된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참된 경건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시고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넬료는 로마군대의 정예부대인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구제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고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경건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고 불쌍한 이웃들을 위해서 사랑을 베푸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그 경건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