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45)
  본문 : 행 10:24-29 
  제목 :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24.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저와 여러분이 오늘 여기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가를 알고 바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 여기 이 시간은 정말로 귀한 시간이고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은 잘 안하시지만 오늘 특별히 여러분에게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여기 오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라고 예배를 시작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로 나를 부르고 왜 나에게 예배를 드리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설교 제목이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려봤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사도가 고넬료에게 한 말입니다. 베드로사도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서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가서 고넬료에게 물었던 말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질문이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한번 생각하시면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본문 24-26절을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욥바에 있던 베드로사도가 북쪽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고넬료가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사도를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 베드로가 도착을 하니까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를 일으켜 세우면서 나도 사람인데 신에게 대하는 것처럼 절을 하느냐고 하면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여기 절을 한다는 단어는 때로는 예배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 단어로 신적인 존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황제는 신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황제나 하나님께 예의를 표할 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이런 절을 한 것은 베드로를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신으로 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신이 보낸 사자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예우를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절을 하는 고넬료를 얼른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똑 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정예부대의 백부장이었고 베드로는 피지배국의 이름 없는 한 사람일뿐이었습니다. 인사를 하려면 베드로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었고 백부장 고넬료는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사를 받아야 할 고넬료가 아주 공손하게 신을 대하듯 절을 한 것은 베드로 사도에게 그럴 대접을 받을만한 귀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것이 베드로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 특별한 것을 얻기 위해서 예의를 갖추고 맞이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가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었고 그 메시야를 만났고 그 메시야에게서 진리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그 가이샤라는 오늘 본문의 가이사랴와 다른 가이사랴 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고백을 했고 여기는 도시와 다른 가이사랴입니다. 
  
  다른 도시인 가이사랴이지만 가이가랴에서 고백한 그 신앙고백이 생각나는 도시에서 그 신앙고백의 주인공인 베드로를 만나게 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베드로가 그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으로서 그것도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 다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고넬료가 이렇게 간절히 그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에게 절을 하는 고넬료에게 “나도 사람이라”라고 하면서 일으켜 세운 것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베드로의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매우 소중한 것을 가지고 전해주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베드로를 아주 귀한 존재로 여기고 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하면서 특별한 영광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부 개신교 목사들도 예수님의 복음을 가지고 자신이 높은 자리에서 영광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사람일뿐입니다. 그 누구도 사람 위에 군림해서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본문 28절에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간청에 의해서 고넬료의 집에 오긴 했지만 사실은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유대인 법에 의하면 불법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이방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거나 교제하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교제할 때 조심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만날 때 조심을 했습니다. 특별히 초청을 받아서 함께 식사를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각별히 조심을 했습니다. 그들이 먹는 음식 중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이 많았습니다. 고기를 먹을 때는 하나님께서 부정하게 여기는 고기도 있었고 이방인의 제사에 쓰인 고기도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으로서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불법을 행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보여주신 환상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들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가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속화 되어서 세상 사람들처럼 불법을 행하면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거기가 우리가 복음을 전할 전도지요 선교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직 거기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심을 할 것은 우리가 세속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사탄의 종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옥의 형벌을 받으려고 대기 중인 사람들이고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분이 다르고 목적지가 다르고 사는 원리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모레 죽을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긴다고 거기서 뭘 부러워하고 따라하고 그럽니까. 그런 것은 사실 별 것도 아닙니다. 허무한 인생들이 어쩔 수 없어서 마시고 취하고 정신을 잃고 싶어 하는 불쌍한 짓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차원이 다른 하늘에 계시고 우리 스스로는 찾아가 만날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저 먼 이스라엘 나라 백성들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들은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죄인들의 자손이며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에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저주받은 인생이요 비참한 인생에 불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칙을 깨뜨리고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신분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할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29절에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에게 묻는 말입니다. 내가 불법을 무릎 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고넬료가 뭘 잘 모르고 엉뚱한 것을 알려고 하거나 요구하려 한 것은 아닌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앉은뱅이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 라고 하면서 고쳐준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고 묻는 것은 아마 그 앉은뱅이가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까하고 베드로를 바라본 것처럼 고넬료도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초청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 고넬료는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를 부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 사는데 있어서는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무엇을 부탁할 그런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아도 고넬료가 더 많고 권력이 있어도 고넬료가 더 큰 권력을 가졌고 힘이 있어도 고넬료가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베드로를 굳이 청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초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뭔가 다른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신 줄 알고 초청을 하였습니다.

 

  고넬료도 이방인이었지만 이미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10:2)라고 한 것처럼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구제도 많이 했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시고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갖출 것을 다 갖추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할만한 선한 일을 하는 그에게도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세상 만민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에 관한 소식입니다. 사람들을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 구세주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 메시야 되시는 분 즉 그리스도가 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베드로는 그 예수님의 제자요 그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할 임무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메시야에 관한 소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기 위해서 초청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초청하여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고넬료와 같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갖출 것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구제를 많이 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이외에 그 어떤 종교행위나 선행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부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부르며 여기 모였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출세보다 종교적인 고행이나 그 어떤 선행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