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46)
  본문 : 행 10:30-33 
  제목 :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섰나이다.    

 

 

  “30.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100여 년 전 영국에서 목회하시던 목사님이셨는데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설교에 관한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혀가 닳아 없어지고 우리 폐가 기력이 다하여 죽도록 설교를 하더라도 한 영혼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의지를 바꾸시는 성령님의 신비한 능력이 그 설교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성령님께서 그 말씀과 함께하여 영혼을 변하시키는 능력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람에게 설교하는 것은 돌기둥에 설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이나 설교를 듣는 사람이 함께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기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없는 설교는 설교자나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설교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나 설교를 듣는 사람이 다 이런 설교를 위한 기도가 없기 때문에 설교가 그저 주일마다 의례히 하는 목사의 잔소리나 교양강좌정도로 전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드디어 베드로 사도와 고넬료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고넬료가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 명령대로 베드로를 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이방인을 만나라고 하셨는데 이방인인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어 초청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초청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초청에 의해서 고넬료의 집으로 와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만남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특별히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자세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복음을 듣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역사

 

  본문 30-31절에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가 아니면 죄인인 상태로 죄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지옥에서 사는가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차대한 인생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갖는가, 그렇지 못하는가에 딸려있기 때문에 믿음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그 믿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아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일이 사람의 노력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해주시는가에 대한 문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천주교회나 개신교 중에서도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교단들은 인간의 노력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구원도 인간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우리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구원을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성령님도 보내주시고 하나님께서 믿음도 가지게 해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의 경우에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만나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에게도 나타나셔서 고넬료를 만나라고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본문에도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고 기억하신바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이미 선택을 하셨고, 우리가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고넬료가 구제를 하고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고넬료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한 마음을 주셔서 착한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영적인 마음도 주셔서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또 구원을 받을 믿음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구제나 선한 일을 해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1) 네 기도를 들으시고

  앞서 인용한 30-31절 말씀에 의하면 고넬료는 계속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시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는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 가운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이 실행되도록 누군가가 기도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믿음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셨지만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0-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우리가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때 우리 스스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고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 외에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계만방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주면에서 우리들의 부모님이 우리들의 형제자매가 우리의 친구가 이웃이 우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부모님이나 자녀들이니 가족이 있으면 끝까지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 믿음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있게 하기 위해서도 늘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서 가족들의 신앙을 위해서 그 믿음이 변치 않게 해달라고 그 믿음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1절에서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억을 하실만한 구제였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라고 했습니다. 온 유대족속에게 칭찬을 받을만한 구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도 비교적 심성이 착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구제활동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핵심은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이웃 사랑의 핵심은 우리들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서 도와주는 일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지금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일이 성도가 사람들에게 행할 가장 중요한 율법이고 삶의 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이 구제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의 유지를 위해서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구제활동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구제를 위해서 교회가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렇게 귀한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핵심에는 기도와 구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

 

  본문 33절 말씀에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때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말씀을 듣기 위해서 베드로사도를 초청한 것입니다. 베드로를 초청한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서 말씀을 듣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세기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세의 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사람을 보내었는데

  고넬료는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람을 보내어 멀리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였습니다. 당시 베드로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돈이 있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기 때문에 그를 초청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사도 여러분이 청빙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십자가의 복음을 듣기 위해서 초청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목사를 청빙할 때 외형적인 조건을 보고 초청합니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있는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목사에게 있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외형적인 것만 보고 청빙을 합니다.

 

  여러분의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전하는 목사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복음을 소중하게 알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2)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라고 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전달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오늘날의 설교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간 철학이나 도덕, 행복론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없는 설교는 설교가 아닙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말만 듣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 머리로 이해가 되는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자의 자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유리한 말씀이든지 불리한 말씀이든지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이 독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다 말씀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 앞에 있다”는 말을 두 가지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는 일종의 맹세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명령이라고 믿고 받겠습니다. 이런 맹세의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베드로가 가르치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처럼 듣기 위해서 모여 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개인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신교단의 학교인 고신대학교의 교훈이 코람데오(Coram Deo)인데 그 뜻이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바로 전하며 그 말씀대로 살게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 앞에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여 그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를 살펴보고 교훈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일과 구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설교자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는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설교가 오늘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듣고 실천하려고 다짐하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