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52)
  본문 : 행 10:47-48 
  제목 : 성령 받음과 세례 받음.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교회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하시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진행해 오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시작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약교회의 설립을 위해서 사도들이 어떤 일들을 했는가를 기록했다고 해서 ‘사도행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사도들 뒤에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진행해 나가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약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약의 교회와 다른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아주 중요한 핵심은 이방인의 구원입니다. 구약의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선민으로 인정했고 이방인들은 사람도 아닌 짐승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이방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고넬료의 사건은 이방인이 공식적으로 첫 기독교인이 되는 중요한 장면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지면을 활용하여 상세하게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신분이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고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의 독립을 원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예수님을 따른 것도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구원해줄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고넬료는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인이었습니다. 로마인 중에도 지배지 이스라엘에 주둔하는 로마사람으로 구성된 정예군인 이달리야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베드로가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군이라고 한다면 고넬료는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헌병대의 중대장 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베드로사도는 복음을 전했고 고넬료는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서 세례를 받고 교회라는 특별한 단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적용이 되거나 유대인들과 가깝고 친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이런 고넬료의 경우를 처음으로 소개를 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이 하나님과 적대관계를 이루고 있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방인인 고넬료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방인으로서 어떻게 이런 소중한 교회의 일원이 되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이 사람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본문 47절에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자 성령님께서 그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성령님은 오순절에서 임하셨던 성령님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기적적인 현상들을 동원해서 임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베드로사도가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를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물로 세례를 주어서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을 금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조건은 성령님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오시는 것이 기독교인이 되는 입문입니다. 성령님이 그 마음에 없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그 복음의 진리를 믿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그 믿음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하나님의 은혜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뜨거운 찬송을 하게 해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자격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한 사람만 이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인가 그래서 성령님을 그 마음에 모신 사람인가하는 것을 살펴보고 그런 증거가 있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해줍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령님께서 임재하심을 쉽게 구별할 수가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서 사람의 눈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것을 각오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재산도 시민권도 가족도 다 포기를 해야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발각되면 잡혀가서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 하고 손을 드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 신앙고백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해서 아무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오늘 믿는다고 했다가 내일 안 믿는다고 해도 누가 시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믿는다고 쉽게 고백을 하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따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례는 성령님이 임하신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받은 사람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르고 질문하는 목사도 겉으로 봐서 잘 모르기 때문에 성령님을 받았는가를 여러 방면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가를 질문하고 살펴봅니다. 믿음의 고백은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와서 우리 스스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 같지만 그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믿고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6개월 혹은 1년 정도를 학습기간으로 정하고 살펴봅니다. 이 기간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교육하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그 기간 동안에 그의 삶을 지켜보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고백하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지만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분도 성령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그 마음에 모신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착하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몰랐을 때와 예수님을 알고 믿을 때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야 됩니다. 특별히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달라져야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없는 사람은 그냥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서 구경이나 하지만 그 마음에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는 사람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합니다.

 

  사실은 이런 과정을 잘 살펴보고 그 마음에 성령님께서 임재 하여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세례를 베풀고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해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그냥 대강 보고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 세례를 베풀고 교인이 되게 하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 안에 성령님을 받지 못한 많은 가짜성도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가짜들이 지도자가 되고 거짓선생이 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되어서 교회가 엉뚱한 거짓으로 흘러가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고 중생하지 못한 거짓 목사가 이끄는 교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종교들처럼 세상 복이나 구하고 선행이나 강조하면서 종교단체로 전락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님을 받고 바른 믿음을 고백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힘을 합하여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나아가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는 거룩한 곳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도 거의 다 세례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성령님을 받고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서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고 바른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참된 진리 안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본문 48절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고넬료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믿음을 고백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이유는 이제 그리스도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여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들을 함께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끝이다 나는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제까지는 아무렇게나 살았지만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볼 수 없는 일이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님을 받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눈에 볼 수 있는 외형적인 방법으로 고백하고 인치는 것입니다.

 

  세례를 베풀기 전에 세례를 받을 사람에게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이 시험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 하는 것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고백하는 믿음이 진실 되게 고백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믿음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른 믿음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사도신경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백을 확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사도신경에 나타난 신앙고백정도라도 같이 해야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믿는 사람들의 예배만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믿고 너는 저렇게 믿어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다 같이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하고 그 고백이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고백이어야 그것이 참된 예배이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됩니다.

 

  옛날에 재건교회는 더했지만 우리 고신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부득이하게 교회를 옮길 때도 다른 교단의 교회에 가지 않고 꼭 장로교회 그것도 고신 측 교회에만 찾아서 갔습니다. 어쩌다가 출타해서 한번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해도 좀 멀어도 고신 측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고백이 같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회라고 해도 장로교나 그 외의 교파들의 신앙고백이 다릅니다. 장로교라고 해도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고신 측 교회와 다른 사상을 가진 교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다고 해도 들어가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고 다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세례를 받기 전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함께 하기로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언약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피로세운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성찬예식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축복은 말로다 표현을 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그에게 큰 특권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그에게 의무도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주일성수는 주일에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은 함께 모여 정한 시간에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함께 하나님을 높여 찬양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힘을 합하여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충성의 의무가 주어집니다.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를 통하여 교회가 담당해야 할 일들을 함께 담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의무를 다함으로써 교회가 운영이 되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받고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서 같은 교회의 교인이 된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이 많을 때 교회는 부흥하고 많은 일을 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됩니다. 이 의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을 때 교회는 힘이 들어지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런 큰 특권이 주어짐과 동시에 우리에게 책임도 주어지고 의무도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만 받고 책임은 외면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다 이 귀한 교회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 언약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 이방인들도 교회의 일원으로 참여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이 있는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귀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함께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이 귀한 일에 쓰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