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30.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57)
  본문 : 행 11:22-26 
  제목 :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방인교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교회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안디옥교회의 이야기를 통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교회의 파송을 받고 안디옥교회에 와 보니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신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와 반대되는 개념을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처벌하시는 분이시고 그것도 누구나 다 공정하게 처벌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란 그런 공의가 행하여지지 않는 영역을 말합니다. 분명히 죄를 지었고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확실한데 처벌을 받지 않고 용서를 받고 오히려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인간의 공로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법칙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에 의해서 인간이 세운 공로에 대한 보상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심은 것도 없는데 아무런 공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것을 받게 되는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은 복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공의가 아닌 사랑의 법칙이 들어 있고, 행한 대로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법칙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교회에 파송된 바나바가 그 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별로 잘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엄청난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나라에 세워진 첫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 불리기 시작한 곳도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어려운 교회를 돕는 일도 이 안디옥교회에서 처음 시작이 되었고,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한 것도 안디옥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이런 안디옥교회가 오늘날 교회의 모범이 되는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세계교회의 모범적인 교회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에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두 지도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바르게 교육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바나바와 사울, 이 두 사람을 살펴보면서 교회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바나바-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본문 24절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는 큰 무리가 몰이는 곳이고 큰 무리가 모여야 은혜로운 곳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큰 무리가 더하여졌다는 말씀의 단서조항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자기가 좋아하는 말만 보면 그 말씀의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의 단서조항은 성령과 믿음의 충만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로 파송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은 우리가 이미 배운 사도행전 4장에서 만나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원래 요셉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주어서 교회 내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을 바나바라고 부르고 위로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의 밭을 팔아서 바쳤으니까 당연히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가 착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단서를 뒤에 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알고 자기 재산을 팔아서 나누어줄 줄 아는 것 때문이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로마서 공부를 통해서 강조한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라고 할 때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과 믿음 충만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과 믿음 충만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고 그것이 진정한 성령 충만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가장 중요한 사역은 믿음이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셔서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는 일이 가장 큰 사명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성령님 하면 방언이나 예언이나 신유와 같은 은사만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는 지혜를 주시고 갈 길을 안내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하시는 목적이 뚜렷하게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것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죄악을 깨닫고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하는 이 일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의 목적입니다. 즉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 성령님 사역의 최고 최종의 목적입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일 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일과 다른 목적으로 은사를 사용하면 그 은사는 가짜 은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반드시 성령님의 역사를 통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 우리 마음대로 믿는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은 바른 믿음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라고 해서는 안 되고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진짜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이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만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 믿음을 진실 되게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 중에 마음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나는 성령님을 받은 일이 없는데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와 계신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그러면 나는 가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게 임하십니다.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영접을 하고 안하고 그런 것과도 상관없이 오시기도 하십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와 계신다는 증거는 여러분이 복음을 바르게 알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이 바르게 전파되고 있는 교회에 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주 바른 설교를 듣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교회가 되었고 최초로 구제를 하고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된 것은 바나바라는 지도자의 가르침을 통하여 성령 충만과 믿음 충만이라는 교회가 가져야 할 핵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울(바울)-복음의 사도

 

  본문 25절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했습니다. 바나바 자신도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한 착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복음을 더 잘 알고 있는 사울을 모시고 와서 함께 사역을 하면서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특별히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고 난 후 예수살렘의 제자들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사울이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여 피하였을 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사울을 바르게 소개를 했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설명해주면서 사울이 정말로 회개를 한 사람이고 바른 복음을 알고 예수님의 믿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앞장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제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사람입니다. 이렇게 바나바는 사울을 잘 알았기 때문에 사울이 가 있던 고향인 다소로 찾아가서 사울을 끌고 와서 함께 교인들을 가르치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울 즉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복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이었다고 한다면 사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을 강조하고 그 복음의 증인으로 산 사람입니다. 사울은 다른 복음은 절대 없다고 주장을 한 사람이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가 설사 하늘에서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강하게 외친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아주 강하게 외친 사람입니다. 이런 가르침들 즉 성령 충만과, 믿음 충만, 그리고 이신칭의의 진리를 배운 사람들이 진짜교회의 핵심이 되어서 세계 복음화에 앞장을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런 가르침을 받고 복음의 진리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는 예수쟁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는 말로 쓰는 말이 예수쟁이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나 오늘날의 교회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좋지 않은 눈으로 보기도 합니다. 교회가 바르게살기 운동본부나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살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때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교회가 바른 길로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반대로 교회가 죄 문제를 이야기 하고 구원을 이야기 하고 천국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골동품이라고 비하합니다. 맹신자라고 하고 예수쟁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뭘 잘 모르는 무식한 사람정도로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성경에 무식한 사람이고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 기본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뭔지도 모르고 변질된 복음을 따르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 땅 위에 기독교의 교회가 시작 된지 2천년이 지났습니다. 이 오랜 세월동안에 순수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를 변질시켰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으로 종교를 이용한 장사꾼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의 성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부추겨서 기독교를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하는 종교로 바꾸어 버렸고 기복신앙을 가지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바르게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부추겨서 기독교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종교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죄인들이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곳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자기 야욕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고 교인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서서 교회를 온통 세상적인 종교로 바꾸어버렸습니다. 모두들 자기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항변하지만 사실은 복음과 반대 되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변질된 교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변질된 다른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바른 복음을 가지고 바른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을 예수쟁이니 맹신자니 하면서 비웃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엄청난 교인들의 숫자를 가지고 바른 길을 가고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비웃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노릇을 하고 사기꾼들이 존경을 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지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주눅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바른 복음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교회는 최초의 이방인교회였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비웃는 이름이었지만 복음을 바로 알고 진리를 바로 아는 우리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성령 충만과 믿음 충만을 가진 바른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