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26)
  본문 : 행 9:1-2 
  제목 : 그 도를 따르는 사람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버린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역사가들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역사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의 역사를 나누어서 기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과 오신 이후의 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역사를 구분하지 않고 구분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바뀐 세상에서 바뀐 룰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옛날 생각만 하고 옛 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을 들라고 하면 오늘 본문의 사건입니다. 사울이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은 우리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또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사형을 시키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예수님께 복음을 직접 받아서 성경에 기록을 하고 세계만방에 다니면서 이 복음을 전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한 이 일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위대한 일의 시작을 오늘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비롯해서 13권 혹은 14권의 서신서를 기록하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한 바울 사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사람이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그 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도를 따르는 것은 간단하게 습관 좀 바꾸고 좀 더 착하게 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게 인생 그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다르고 가는 방법이 다른 완전하게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탄의 편에 서 있다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정했습니다. 세상은 이 도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과 이 도를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도를 따라 가는 사람들을 비웃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서로 전쟁을 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가는 이 도 즉, 이 길이 무엇이기에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고 방해하는 사람이 양분이 되어서 싸워야 되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는 이 길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도를 방해하는 사람 사울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 공문을 청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의 원래 이름이 바로 사울이었고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울이 우리가 아는 그 바울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되기 이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승천하신 일을 통하여 이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세상 역사의 기록이 B.C.에서 A.D.로 바뀌었습니다. 구약 즉 옛 언약이, 신약 즉 새 언약으로 바뀌었습니다. 유대교가 기독교로 바뀌었습니다. 도 즉,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방법을 완전하게 바꾸어버리셨습니다. 유대교를 조금 수정하고 고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유대교와 다른 새로운 기독교를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같이 가지고 있고 유대인들이 섬겼던 하나님을 섬기고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셨던 그 언약에 의해서 기독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왔다가 갔다가 합니다.

 

  초대교회 때 기독교의 교회 안에 유대교 출신들이 들어와서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그것이 잘못임을 지적합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의 중간에 선 사람이 사울입니다. 유대교 때는 사울이었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는 바울입니다. 완전히 바뀌는 세대 중간에 태어나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다가 철저한 기독교인으로 바뀌었습니다.

 

1)사울은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후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서 심문을 받을 때 바울이 자신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라고 했습니다.(행22:3)

 

  그리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육신은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6)고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사울왕입니다. 사울 왕은 실패한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가를 폐하고 다윗왕가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왕임을 알면서도 사울왕의 이름을 따라 사울이라고 지은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은 유대인 중에서도 뛰어난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규례대로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에 속했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그 중에도 열심인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엄격한 율법 공부를 한 사람이고 유대교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열심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일등 유대교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유대교를 잘 몰라서 그냥 따라가다가 기독교가 좀 좋아보여서 옮기게 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에는 정통파이고 엄청난 공부를 한 사람이고 열심히 유대교에 충성을 다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사울은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사울이 산헤드린공회 의원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데반을 처형할 때 가표를 던진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살기가 등등했다는 것입니다. 다메섹 여러 회당으로 가져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청하였는데 그 공문의 내용은 누구든지 남자나 여자나 막론하고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결박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다메섹은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Damascus)를 말합니다. 다메섹은 옛날부터 이스라엘과 관계가 깊은 나라였고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는데 아마도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메섹으로 피난을 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시 다메섹은 이스라엘처럼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당시의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기독교의 뿌리는 유대교입니다. 모든 약속들이 구약성경에서 나왔고 예수님도 유대인의 자손에게서 태어나셨고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유대인들이 지키던 율법을 삶의 원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은 기독교를 이단으로 보고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것을 뿌리 채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제사를 거부하고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죄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기독교를 싫어하고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놓치기 싫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반대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유대교라는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지위를 지키고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은 했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는데 그런 기득권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4)유대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기독교를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는 자기들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만 최고의 신이고 다른 신들은 다 잡신이요 우상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자기들은 잡신만 섬기는 것이고 우상만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한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습니다.

 

5)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 길이라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합니다.


  자기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했고 또 선한 일을 하면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런 노력을 헛된 것이라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게으로고 나태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까 그냥 믿습니다. 라고 말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알고 그동안 열심히 그 길을 가고 있는데 누가 나타나서 야 그 길은 잘못된 길이야 그 길로 가면 안 돼 라고 하면 그 사람이 바른 이야기를 해 주는데도 그 사람이 얄미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 재산을 팔아 아주 귀한 다이아몬드를 비싸게 샀는데 누가 와서 그것 가짜야 당신 속았어. 라고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끝까지 자기의 것이 진짜라고 우길 것입니다. 그것이 가짜가 되는 순간 그는 망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단계에 빠진 사람들도 끝까지 자기들이 가는 길이 옳다고 주장을 합니다. 사람들이 너 다단계에 빠졌어, 빨리 나와. 라고 하면 순순히 그래 내가 잘못 왔어. 하고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끝까지 망할 때까지 자기들은 다단계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거기 있습니다.

 

6)그러나 이 길은 너무나 확실한 진리의 길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보증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는 사람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한 들 그들이 믿겠습니까? 그러나 몇 가지 단서를 단다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우주 만물이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진화론을 이야기 하지만 진화론은 창조론보다 더 많은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더 비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진화론이 창조론보다 더 비과학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면 창조론이 더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야기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야기 할 때 거기 인간의 고행이나 선행이나 바르게 사는 것과 관계가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부인하고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우리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전적으로 오류가 없는 완전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진리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부인하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틀린 것이나 오류가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렇게 확실하게 기록된 말씀이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오류라고 하면서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뭘 잘 모르고 이신칭의를 성경에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똑바로 살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인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모든 성경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충분히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머리로 이해해서 이런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믿음을 신비한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람만 즉 성령님께서 역사하는 사람만 이런 믿음을 가질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중요한 것이고 오직 이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
 
  그 도를 반대하고 박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진리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단들 중에 사람을 만나면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말하는 도는 우리가 말하는 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해치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사기를 치는 사이비 이단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길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향하여 가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을 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길 즉 도(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나님께로 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자고 하면 사람들은 얼른 예수님처럼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으니까 우리도 고난을 당해야 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으니까 우리도 순종을 해야 하고 예수님께서 좋은 일 많이 하셨으니까 우리도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셨고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셨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기도하셨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도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고 그대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고 누구든지 그 사실을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신다는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도라고 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를 닦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고 연구해서 그 길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일평생 연구하고 노력을 하고 고난의 길을 가도 결국 찾지도 못하고 닦지도 못하는 길이 이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그 길로 가면 됩니다. 그 길에서 있으면 됩니다. 그 길에서 뭘 하고말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 길에서 그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 경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길이 바른 길인 줄 알고 그 길에 서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그 길을 따르는 것을 “belonged to the Way”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헬라어에서도 그 길에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는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옛날에 가던 그 길에서 교회만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옛날 살던 그 삶에서 조금 착하게 살고 조금 바르게 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목적지가 삶의 방법이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 세상에서 좀 잘 살아보려고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살려고 하는 삶이었지만 이제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가는 삶입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지식대로 살려고 했다면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과거의 길에 서 있으면 그 길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 길은 가면 갈수록 멸망의 길입니다. 잘살면 잘 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 진리의 길 영생의 길로 나와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나서 착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비웃습니다. 우리기 과연 그런 시시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가는 길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예전의 삶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길이 아닌 잘못된 길로 가면서 그 길에서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고 좋은 일한다고 자랑합니다. 아무소용 없는 헛된 짓입니다. 우리는 비록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하지만 때로는 부끄러운 삶을 살기도 하지만 바른 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길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영생의 길을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의 길입니다. 세상은 이 길을 거부하고 방해하고 핍박합니다. 이 길을 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들도 안 가고 남도 못 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가고 있음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쁨으로 이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