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36)
  본문 : 행 9:31 
  제목 :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제가 요즈음 양용근 목사님에 관한 논문을 쓴다고 양용근 목사님이 사시던 시대를 연구하다가 보니까 마치 그 시대를 사는 사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양용근 목사님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태어나셔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살던 시대에 사시다가 해방되기 두해전인 1943년에 순교를 하셨습니다. 을사늑약, 을사조약은 1910년 한일합병이전에 이미 외교권 등의 주권을 일본에 넘겨준 조약체결을 말합니다. 강제로 맺었다고 해서 조약이 아닌 늑약으로 부릅니다.
 
  그 시대의 우리나라는 참 살기가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였고 그나마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도 빼앗겨서 일본사람들의 지배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정말 인간이하의 삶을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일제에 아부하는 친일파들은 그런대로 잘살았지만 대다수 백성들은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말 감사할 것은 하나님께서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사는 미국 선교사들을 우리나라에 보내주셔서 절망가운데서 그래도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 주셨습니다. 선교사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이 끝나면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을 소망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일제는 자기나라 왕이 천인신 즉 인간이며 신이라며 천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다스리는 일본이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일본천황을 신으로 대하고 숭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이 그것은 거짓말이다 천하를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그런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신이라고 하는 일본은 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그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일본 왕이나 악을 행한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심판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일제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만 섬기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자고 외쳤습니다. 

 

  세상 살기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고통을 견디면서 소망을 가지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암울한 시절에 하나님마저 몰랐다면 참 힘이 들었을 것인데 그래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적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초대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시대였고 복음을 전하다가 또 예배를 드리다가 발각이 되면 붙잡혀 가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참 위험한 시대였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평안할 수도 없고 든든히 설수도 없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갔다 했습니다. 무엇이 그런 시대의 교회를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중심입니다. 그 시대의 평안이 무엇이며 왜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수가 더 많아졌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오늘 본문 말씀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리하여”라는 말이 잘못 번역된 것처럼 보입니다. 앞에 일어난 사건들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리하여”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라고 하려면 앞에 교회가 평안해질 만한 일이나 든든해져야 할 만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리하여” 잘 되었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럴만한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도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울도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사울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유대인들을 피해서 예루살렘으로 왔고  또 예루살렘에서도 사울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고향으로 도망을 가버린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하여”라는 단어보다 “그러나”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도 죽임을 당하고 사울도 죽이려는 사람들 때문에 쫓겨 갔지만 그러나 교회는 평안하고 든든히 서갔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헬라어로 살펴보고 영어 번역도 보고 다른 한글 번역도 보았지만 ‘그러나’ 보다는 ‘그리하여’로 번역을 할 수밖에 없는 단어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번역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쓴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편안했다고 하는지 든든히 서갔다고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평안하여’에서 ‘평안’이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이 참 좋아하는 단어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인사는 ‘살롬’ 즉, “평안하십니까”이고 그 사람들이 비는 축복이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평강을 좋아하고 평강을 인사로 하고 복으로 빌고 다녔지만 평강의 길이 무엇인지 몰랐고 평강의 길로 가지 않고 반대의 길로 갔습니다.

 

  구약의 선지서 시대를 보면 거짓선지자들은 거짓 평강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삽니다. 지도자들도 바르게 살지 않고 자기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습니다. 그런 패악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거짓선지자들은 평안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6:14)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6:1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아주 나쁜 일을 하면서 살면서도 그것이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몽둥이를 들고 그들을 치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데 이제 그 심판의 날이 바로 눈앞에 다가 왔는데 거짓선지자들은 괜찮아요,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신데 설마 우리를 치시겠어요? 라고 하면서 거짓평강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그래서 그 거짓선지자들에게 속아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진짜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비참하게 망하는 것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입니다.

 

  이런 세상에 평강을 주러 오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참된 평화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흉악한 죄악들을 다 제거하고 의로운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평강의 주님 평화의 왕으로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평강을 말합니다. 비록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반대 세력에 의해서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그런 세력들을 피해서 피난을 가야하는 위태로운 처지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참된 평강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멸망으로 달려가는 위태한 세상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고 그 구원의 길 영생의 길로 향해서 가고 있는 정말로 평화로운 곳입니다. 이런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든든하게 세워진다는 말은 마치 건물이 뼈대를 갖추고 벽돌이나 이런저런 자재들이 제 자리에 세워져서 튼튼한 건물로 세워지는 것처럼 교회가 그런 모습을 갖추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기초석이 되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 건축 자료가 되어서 결합이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성도들이 각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 기초가 되고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가는 참 평안을 가진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참된 교회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든든히 서 가고 또 계속해서 온 세상을 퍼져나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죄악 가운데서 살면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그래서 회개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면서 잘못을 지적하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며 자기들이 승리자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선지자들이 외치는 거짓 평안에 속아서 멸망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살고 있는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었고 최후의 심판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평안을 원하고 사십니까? 돈이 좀 많았으면 평안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적으로 출세를 하고 권력을 가지고 살았으면 평안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연예인이 되고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면 평안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타락한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고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좀 나은 삶은 살겠지만 거기에 참된 평안은 없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오히려 더 싸워야 하고 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하나님과는 점저 더 원수가 되어가고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서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여야 할 비참한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그 길이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비록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음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오늘 본문에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가지고 든든하게 서가고 있었으며 더 진행하여 교회 안의 성도들의 숫자들도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지역의 교회들도 많아졌을 것이고 각 지역 교회의 성도들도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가 있어서라고 했습니다. 참된 교회는 그리고 그 참된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 줄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성령님께서 주도해야 합니다. 인간들이 자기의 머리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이단들의 교회는 엄청 크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령님의 역사가 아닌 인간이 자기의 머리로 사람을 속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즉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부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성경말씀의 약속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의 필요도 모르고 구원의 예수님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경외심이 없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예배에 임하지 않고 그냥 구경꾼 노릇이나 하는 것이 오늘날의 예배입니다. 찬송을 드리면서도 건성 건성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경청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나쁜 짓을 하면서 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잘못인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감격하며 받고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교회에 이런 성도들에게 성령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도 부흥시키시지만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여기 위로란 단순히 힘내라 괜찮다 이런 위로가 아닙니다. 성령님의 위로는 보혜사라는 그 별명대로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고 바른 길로 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가 지은 죄들이 밝혀질 때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죄를 주장해 주시고 친히 변호사가 되어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추수를 해서 감사를 드리던 각종 감사 절기들의 정신을 이어서 우리도 추수감사주일을 매년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추수감사주일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들을 특별히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감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평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주는 거짓 평강에 속아서 살았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참된 평강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그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평강이 우리 마음에 늘 있어야 하고 그 평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잘 모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도록 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본도 모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진리를 압니다. 우리는 왜 예배를 드리는지를 압니다. 왜 하나님을 찬송하는지를 압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위로를 받고 사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외롭고 힘든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끝까지 지켜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점점 더 든든하여지고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나가고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시작된 후 성도들이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진리를 선포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수많은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는 평안하게 든든하게 세워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늘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참된 믿음이 있어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교회입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진리를 바로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된 교회입니다. 이런 귀한 교회에 속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으로 성령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