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00)
  본문 : 행 7:17-22  
  제목 : 약속의 때가 가까우매.       

 

  “17.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9.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20.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21.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22.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사람들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들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진짜 구원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양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발견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성경의 여러 가지 교훈과 여러 가지 구원들은 우리들에게 세상에서 많은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소한 세상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역사 속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일반은총들은 이미 우리가 사는 삶의 법칙에다가 다 넣어 두셨습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사는지, 부자로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관계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이미 다 알게 해 주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바르게 열심히 살면 복을 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일반상식정도를 발견하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와서 그런 세상적인 축복들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장에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나서 2장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히2:3)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도 권위가 있어서 그것을 어기거나 순종하지 않았을 때 공정한 처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즉 모세를 통하여 기록된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어서 어기는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그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부터는 스데반이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모세의 이야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어렸을 때의 이야기와, 40세부터 80세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80세 이후의 이야기로 나누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와 성년으로 자라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스데반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어신지 우리가 받을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17절에서 19절까지에는 모세가 태어나던 때의 형편과 20절에서 22절에는 모세가 태어나서 어떻게 자라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본문 17절 말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여러분이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도 들으신바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문 말씀과 연관해서 기억나는 언약은 400년 동안 가나안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행7:6-7)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한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식구들을 이끌고 애굽에 들어와서 산지가 벌서 400년이 다 됐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한 때가 가까이 올수록 어떤 현상이 벌어졌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간이 가까이 올 때 그들의 숫자를 늘여주셨기 때문입니다.

 

2)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왕위에 오르매
  18절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때가 가까이 오고 그와 비례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많아져갈 때 애굽의 왕이 바뀌는데 그 왕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지났을 때인데 어떤 사람이라도 요셉을 직접 만나봤거나 잘 아는 사람은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 요셉을 모르는 왕이라고 한 것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일했을 때 그 치적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요셉의 덕분이라는 것을 애굽의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과 근방에 7년 동안 풍년이 들었다가 이어서 7년 동안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된 요셉은 당시 바로를 설득하여 7년 풍년 동안 곡식을 잘 모아서 7년 흉년이 들었을 때 그 위기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애굽의 왕이 되는 사람이 몰랐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좋아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요셉도 요셉의 뒤에 계시는 하나님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3)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본문 19절에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라고 했습니다. 요셉을 무시한 사람이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는데 아주 교활한 방법을 써서 괴롭혔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당시 왕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는지가 자세히 기록 되어 있습니다. 야곱과 그 후손 75명이 애굽으로 왔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이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출애굽기 1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출1:10)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군의 편이 되어서 적군과 함께 우리들을 치고 이 땅에서 나갈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힘이 강해지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반대로 그들이 떠나버리는 것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동안 노예처럼 잘 부려먹었는데 그런 막강한 인력이 떠나가는 것은 손해였기 때문입니다. 후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간다고 할 때 반대를 한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일 종처럼 잘 부려먹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봅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을 엄청나게 시켜서 힘들게도 해 보았는데 그래도 인구는 증가합니다. 일을 많이 시킬수록 인구는 더 늘어가고 힘은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가 태어날 때 여자아이는 살려주고 남자아이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산파들에게 교육을 시켜서 죽이라고 했는데 산파들이 차마 죽이지 못하고 핑계를 대기를 이스라엘 여인들은 아이를 쑥쑥 날 낳아서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이를 낳아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스스로 남자 아이를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서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4)그 때에 모세가 태어났는데
  모세는 우리가 아는 대로 장차 엄청난 일을 할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 하는 애굽 땅에서 이끌고 나갔고 그들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갈 때 지도자였으며 모세오경을 기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십계명을 받았고 그에 따르는 율법들과 여러 가지 역사들을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때가 하필 이런 때였습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강물에 던져서 죽게 해야 하는 그런 시기에 모세가 태어낫습니다.

 

5)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20절-22절에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도시적이다’라는 뜻에서 온 말입니다. 촌스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 형편은 말로 할 수 없이 열악한 형편이었습니다. 종처럼 노에처럼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사는 것은 정말로 초라했을 것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아이가 태어낫는데 촌스럽지가 않고 도시 아이처럼 즉 잘 사는 집안의 귀공자처럼 멋있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아이돌처럼 생긴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부모는 차마 이렇게 잘 생긴 아이를 죽일 수도 없고 강물에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석 달 동안 집에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커 가고 울음소리가 커가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숨길 수가 없어서 강물에다가 버렸는데 그냥 버리지 않고 배처럼 물에 뜨는 작은 상자를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넣고 강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그 때 마침 바로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그 아이를 보니까 불쌍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건져서 양아들로 삼고 그 이름을 모세라고 했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이고 그의 양어머니가 된 바로왕의 공주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모세를 보는 눈이 서로 다르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모세의 부모가 아이를 보니까 아름다운 아이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다고 표현을 합니다. 바로의 공주가 아이를 봤을 때 아름답다고 하지 않고 불쌍한 아이로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웠다고 표현한 것은 모세를 아름답게 본 부모의 눈이나 모세를 불쌍히 여긴 바로 왕 공주의 눈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한 일로 쓰시기 위해서 사람들이 보는 눈을 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런 특별한 시점에 태어나게 하시고 그들의 부모의 눈을 여시고 바로 왕 공주의 마음을 여시고 모세를 바로의 궁중에서 학문을 익히게 하시고 힘을 키우게 하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하시는 도구로 사용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강조점

 

  우리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스데반이 유대고 지도자들에게 주고 싶어 했던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의 설교를 통하여 한 결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그들의 조상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을 자랑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조상을 통하여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그 구원의 언약을 보지 못하고 그 구원의 언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지 못함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모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도 굳이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주지 않으셔도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그의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끌어내다 건져내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고는 그 이름을 모세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에도 구원자라는 뜻이 있듯이 모세의 이름에도 건져낸다는 뜻이 들어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도 우리를 종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구원하셔서 영원한 가나안 땅인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모세의 이야기를 잘 알면서도 막상 모세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그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조상들을 자랑하면서 자부심을 가졌지만 그 조상들 뒤에서 조상들을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뜻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똑똑해서 그런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할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지 않으셨다면 그저 나일 강 물에 흘러내려가서 죽고 말았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에 간섭하지 않았다면 살아있지도 못했을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셔서 바로의 궁전에서 당시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스데반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신 언약이 있고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이루어나가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 언약을 이행하시기 위해서 그들의 조상을 하나님께서 돌보고 계시며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이 되었으며 이제는 그 예수님을 믿어야 할 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상이니 율법이니 성전이니 제사니 이런 껍데기를 붙잡고 있지 말고 그것들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교훈

 

  스데반이 설교를 통하여 유대고 지도자들에게 교훈을 주심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교훈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고 우리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의 핵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눈으로 똑같은 성경을 읽는데 어떤 사람은 성경에서 사람 웃기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람들 웃기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눈을 가지고 똑같은 성경을 보는데도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 있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법을 성경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세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과 그 구원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구원의 때가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가까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숫자도 많게 하시고 힘도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야 애굽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세력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아주 교활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시작을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고자 하고 구원받을 백성들이 많아지게 하면 사탄도 역시 더 힘을 내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앞길을 방해합니다.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얼른 포기를 해버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사탄의 공격으로 여기고 이길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날이 가까웠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열악한 형편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아름답게 보시니까 사람들도 그를 아름답게 보고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사람들에게 받는 도움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아름답게 보실 때 모든 관계도 회복이 되고 모든 어려움도 회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이 가까이 올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한 구원은 이 세상에서의 구원이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이고 우리 타락한 인간들이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날이 가까이 올수록 우리가 이 구원과 가까이 나아갈수록 사탄의 방해공작은 날로 심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이 엄청난 구원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