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02)
  본문 : 행 7:30-34  
  제목 :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30.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아서 전했던 사람이고 그 십계명을 중심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책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중요하게 여기는 율법도, 성전도, 제사제도도 다 모세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게 잡혀 와서 당시 최고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법정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모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목숨이라도 구걸하기 위해서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자 않았다든지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든지 그런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복음을 전했으며 앞으로도 전할 것인데 그것은 너무나 정당한 것임을 말합니다.

 

  다만 그들이 아직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핵심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이야기가 그냥 그 이야기 자체로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이야기만 가지고 그들을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도 사실은 믿음이 없었던 너무나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요셉이나 모세도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약속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고 그들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고 결국 그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핵심 알맹이를 두고 겉만 알고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함을 스데반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그의 생애를 가지고 세부분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모세가 광야로 나간 지 40년 후 즉 모세가 80세가 되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세월을 보낸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오셔서 사명을 상기시키고 애굽으로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본문 30-31절 말씀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라고 했습니다.

 

“사십 년이 차매”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첫 사십 년은 바로의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모세를 바로의 공주가 건져다가 양아들로 삼아서 왕궁에서 키웠기 때문입니다. 사십년이 되었을 때 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봐주기 위해서 일하다가 애굽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광야로 도망을 와서 살았습니다.
 광야로 도망을 와서 거기서 마침 목축을 하는 르우엘(이드로)이라는 사람의 가족을 만났고 그 르우엘의 딸과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장으로서 목축을 하면서 산 것이 모세의 두 번째 사십 년의 모든 기록입니다.

 

  사십 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출애굽기도 모세 자신이 기록을 한 책이기 때문에 그 사십 년 동안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한 일 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노력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무예를 닦았다든지 군사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켰다든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를 했다든지 연구를 했다든지 그런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일을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은 그런 일에 대해서 기록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나 같은 사람을 이런 광야에서 썩게 하는지 왜 황금과 같은 시기를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게 하는지 때로는 궁금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모세가 처음 사십 세가 되던 때 한참 혈기 왕성 할 때 이 일을 했더라면 그 공이 모세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모세가 배운 지식과 무세가 받은 훈련과 모세의 젊은 혈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도 자기 생각으로 자기 혈기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하지 하나님의 명령을 순순히 따라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이 팔십이 되어서 이제 혈기나 용기나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해야 할 그런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하나님은 그에게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이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원까지도 사람들 마음대로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 자기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자기들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말이고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해버립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데도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을 믿지 않습니다.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되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고 사람이 어떻게 물 위로 걸어 다니느냐고 비웃습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님을 못 믿지만 우리들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 물로 포도주 하나도 못 만드신다면 죽은 사람 한 사람도 살리지 못하신다면 물위로 걸어 다니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분이라면 그분이 어떻게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가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시건방져졌는지 자신들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율법도 잘 지키고 선한 일도 잘 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속으로는 사람을 미워하고 온갖 욕심을 다 부리고 틈만 있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죄를 짓고 살면서도 겉으로 보이는 몇몇 가지 잘 하는 척하면서 그렇게 구원을 받아보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80이 되도록 기다리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런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믿고 따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는 구원은 완전하고 확실한 구원입니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출애굽기 3장에 좀 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3:1-2)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이라고 했고 스데반은 시내 산이라고 했는데 이 두 명칭은 서로 다른 장소가 아닙니다. 호렙 산맥의 시내 산이든지 혹은 시내 산맥의 호렙 산이지 다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시나무 떨기와 떨기나무도 같은 뜻입니다. 번역이 좀 다르게 되었을 뿐이지 같은 나무를 말합니다. 가시나무 떨기는 당시에 별로 쓸모없는 나무라고 합니다. 나무가 작아서 집을 짓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으면 그냥 땔감으로나 사용되는 보잘 것 없는 나무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이 붙었는데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불이 붙기는 했지만 타서 없어지지는 않고 불만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임재 했음을 사람의 눈에 보이게 한 것입니다. 보통 불처럼 나무가 타 없어져 버렸다든지 불길이 다른 나무로 번졌다든지 했으면 불이 났다고 생각하면서 불을 끄려고 했을 것입니다.

 

  불이 타는데 나무가 타지 않는 희한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이 낸 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낸 불이며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앞에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가시나무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그들을 불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잘남이나 나의 행함으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젊었을 때 혈기 왕성했을 때 뭔가 선한 일을 많이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나이가 다하고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별 볼일이 없는 늙은이라고 우리를 천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목하여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쓸모가 있고 이용가치가 있다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시나무와 같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고 특별하게 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나이가 들어간다고 너무 한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가 가진 믿음을 위대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본문 32-33절에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서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조상들을 통하여 들었던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섬기며 따랐던 그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잡신이 아니라 참신이신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에나 세상에는 온갖 잡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사가 타락하여 된 사탄과 그 졸개들인 귀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탄이나 귀신들이 온갖 잡신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귀신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신도 있습니다. 신도 아닌데 사람들이 신이라고 우기는 신들도 있습니다. 태양이나 달이나 이상한별이나 신이 아닌데 사람들이 신이 되어달라고 조르고 신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호랑이나 코끼리나 심지어 뱀이나 쥐새끼 까지 신이라고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모세는 그의 조상들이 섬기는 신이 참 신인 줄 알았습니다. 후에 그가 창세기를 기록하면서 그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하게 기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모세 앞에 나타난 하나님이 조상들이 믿고 따랐고 그 하나님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특별히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약속을 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그들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며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하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이 언약이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에 관한 언약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조상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노릇하고 있는 애굽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이시며 우리들을 사탄의 종, 죄의 종에서 구원하셔서 영원한 가나안 땅인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이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잡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탄을 섬기고 귀신을 섬기고 신도 아닌 것들을 신이라고 우기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고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죄에서 구원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를 바르게 알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복임을 알고 따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본문 34절에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처음 사십년은 권력의 중심지이며 화려한 왕궁에서의 삶이었습니다. 뭐 부족한 것도 없고 어려울 일도 없는 평안한 사람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꿈을 키우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사십년은 먼 이국 땅 시내산 광야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양을 치며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왕궁의 호화로운 삶보다야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나름대로 가정을 가지고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십년의 삶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노예로 살고 있는 동족들을 찾아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그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삶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삶으로의 출발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학대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의 탄식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구하려고 내려왔다.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겠다.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신 말씀이고 확실한 명령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고생하고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이 받는 학대도 보시고 구원하러 내려오셔서 그들을 구하러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죄의 노예 죽음의 노예로 고생하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그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삶을 접고 애굽으로 가려고 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 애굽으로 내려갔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으로 오실 때 그 고난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이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고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멸망으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 명령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가서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