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09)
  본문 : 행 7:52-53  
  제목 :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도다.    

  

  “52.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한번 설교 듣고 삼천 명 그리고 오천 명이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한 베드로의 설교와 한 사람도 회개시키지 못하고 설교를 들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설교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지난주에는 이 차이가 설교를 듣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비교적 가난하고 어려운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메시야가 오셨다는 소식에 귀를 열고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교만하여 목이 곧고 자기들이 가진 생각이 늘 최고라고 생각하여 도무지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도 막고 마음의 문도 닫고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자 화가 나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 설교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또 설교의 내용에 또 다른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좀 인용하기는 했지만 바로 그 예언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소개했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예수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처음부터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간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게 하려고 했습니다. 구약 역사 이야기만 하다가 예수님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이 설교의 끝부분인데 설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올 참인데 유대인들이 설교를 도 못하게 막아버린 것입니다.

 

  오늘날의 설교자들도 이런 실수들을 많이 합니다. 주로 구약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할 때 그 성경의 목적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하지 않은 채 설교를 끝내버리고 마니까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최종 목적지를 말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의도적으로 최종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고 율법만 강조함으로 사람들을 충성스런 도구로 만들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복을 받아서 잘 살아야 된다고만 말하고 설교 끝 하면 사람들이 아 성경이 그런 말씀이구나 하고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스데반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미처 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설교를 마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본문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직접 말하려는 흔적이 보입니다.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자가 되었나니” 여기서 말하는 ‘의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 대한 오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즉 율법이나 성전이나 성전에서의 제사나 모든 것이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유대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예언하게 하셨는데 그 때마다 그 선지자들을 박해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예언하신 의인이 이 세상에 오시자 그 의인 즉 예수님을 죽게 한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오해했을 때 그 결과는 이렇게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그저 비슷하게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따라서 확실하게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자가 되나니

 

  본문 5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유대인들이 자신들 스스로는 의로운 사람이요 율법을 지키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사람들은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대선지서 5권 소선지서 12권 도합 17권의 선지서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여러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 내용은 다 유사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는 했지만 겉으로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만 했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그 잘못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으며 그 죄 값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말을 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예언들대로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대국들에 의해서 비참하게 나라가 망합니다. 전쟁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남은 자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선지자의 예언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벌을 받아 나라가 망했지만 그들의 후손을 통하여 오시는 메시야의 언약은 변함없다는 것입니다.

 

1)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51절 말씀에서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라고 하셨고 또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갔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계명들을 잘 지키라고 했지만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오히려 죄를 지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지만 항상 애굽을 바라보며 애굽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틈만 있으면 핑계거리만 있으면 애굽으로 세상으로 향하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했지만 틈만 있으면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신으로 만들려고 했고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그리워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들은 박해를 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회개를 외쳤지만 그들은 회개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거짓 평화를 외치고 이 세상에서 잘 살라고 축복하는 거짓선지자들을 따르고 진리를 외치는 참 선지자들은 핍박을 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 오실 당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오늘날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오늘날의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사상의 축복을 바라며 돈을 출세를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세상의 출세를 말하는 설교자들은 존경하고 따르면서 구원의 복음을 외치는 설교자들은 외면합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가는 길이면 별로 의심 없이 따라갑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가면 그 길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는 항상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착하고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른다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싫어하고 인간의 욕심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좋다고 따라가는 길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이 많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가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진리의 길로 복음의 길로 십자가의 길로 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단들의 교회가 더 크고 십자가의 복음을 외면하는 교회가 더 크고 진리의 길을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을 믿는 교회라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는 바른 설교자들을 외면하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역사 이래로 항상 그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우리 속에 있는 세상을 향한 욕심 때문에 우리도 엉뚱한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산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의인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선지자들을 죽였고 그 의인을 잡아준 자가 되었고 살인한 자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면 이런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롭게 산다고 하는 것이 의인을 죽이는 것이고 의인을 잡아주는 것이고 살인을 저지른 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고 떠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늘 하나님나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엉뚱한 길로 가게 되었을까요? 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선생들의 말을 듣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이 좀 기분이 좋게 여겨지지 않더라도 자신들을 삶을 살펴보면서 잘못을 바라보고 회개하고 돌이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말은 기분이 나쁘다고 거절을 하고 자기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따랐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이 하는 말이 거짓말인 줄 몰라서 따른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거짓선지자들이 하는 말이 그들의 마음에 들었고 역시 같은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뜻이 통했기 때문에 알면서도 따랐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그 설교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설교인지 잘못된 설교인지 판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듣기에 좋은 말이면 아멘하고 따릅니다. 잘한다, 좋다, 잘될 것이다, 복 받고 잘 살아라, 이 세상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까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 얼마나 듣기에 좋습니까?

 

  그러나 정말로 조심을 할 것은 그런 잘못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살인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약간 잘하고 잘못하고 그런 차이가 아닙니다. 의인이 되느냐 살인한 죄인이 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바르게 알고 따른다면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요 영원한 생명으로 가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이 복음을 외면하고 스스로 바르게 살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사람들 보기에는 그것이 좋아보일지 몰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살인자로 영원히 멸망할 자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버리는 정말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진리를 바르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본문 5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천사가 전한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일을 하시기도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세상의 일과 구별하여 말할 때 천사가 한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율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율법은 세상의 어떤 규칙보다도 앞서서 지켜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율법을 받고도 그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율법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아주 특별한 율법을 자신들이 받아서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율법을 받았으면 그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지키지 못한 사람이 받을 벌을 받는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율법은 좋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인생들이 율법을 지키고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하나님나라이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완전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타락한 습성에서 오는 욕심 때문에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율법을 다 잘 지키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많은 율법들 중에서 한두 가지만 잘 지키고 다 잘 지킨 것처럼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이 볼 때만 지키는 척하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어기면서도 그것을 율법을 다 잘 지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율법의 겉으로 들어나는 것만을 지키고 다 지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는 그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존심까지 지켜주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욕을 하고 업신여김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위반한 것입니다.

 

  오늘날 비교적 자신이 바르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윤리적인 죄를 지적하고 교회가 썩었다고 비난을 합니다. 자신들은 똑바로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몇몇 가지 잘 했다고 해서 사람들 보기에 바른 삶을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정도로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는 자체가 위선이고 교만한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통하여 지적한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다 죄인일 뿐입니다. 율법은 그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보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일 깨닫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는 절대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도 그렇게 율법을 많이 연구하고 잘 알고 그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율법 앞에서 자신을 보고 한탄을 했습니다. 한 마음은 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데 또 다른 한 마음이 자꾸 죄를 짓게 하는 것을 보고서 선하게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아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요!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현대어성경)

 

  율법의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3:24)

 

  스데반이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하나님께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을 한 것은 율법의 이러한 용도를 잘 몰랐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한 것도 잘못이지만 지킨다고 하면서 형식적으로 겉으로만 지키는척하여 위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것도 그들의 죄입니다. 정말로 양심적으로 율법 앞에서 자신을 보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인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을 통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했고 그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철을 밟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흉악한 죄인인 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