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10)
  본문 : 행 7:54  
  제목 :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어버이날을 지내면서 부모님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아이들이 “왜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초등학생 아이는 친구들이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리려고 하는데 부모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와 듣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들이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하면서 부모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물론 부모님들 중에는 너무나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아이의 행복 보다는 자신의 자랑을 위해서 아이들을 너무나 강압적으로 키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무조건 부모님의 말씀은 다 듣고 순종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비록 지식이 좀 짧아서 생각이 좀 좁아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 마음에 자식을 사랑하는 기본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말 보다는 그래도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이런 아이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너무 많고 하라는 것도 너무 많아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는 힘이 너무 들고 아무런 재미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마음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과 사악함과 이러한 타락한 습성 때문에 좋은 말을 듣기 싫어하고 나쁜 말만 듣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약이 되는 말은 거부하고 병이 되는 사악한 말만 듣고 좋아하고 따르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스데반의 설교가 끝나자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설교가 끝난 것이 아닌데 더 이상 듣기 싫어해서 설교를 가로막아 못하게 하고 화를 내는 모습입니다. 스데반이 정말로 중요한 말씀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귀한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화를 내고 그 좋은 말을 해 준 사람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성경말씀을 기록해서 주셨고 그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서 설명하게 하기 위해서 설교자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 계속해서 말씀을 하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고도 그 율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죄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말은 스데반의 설교를 말합니다. 스데반이 한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서 이를 갈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성경을 엉터리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르게 해석한 설교를 듣자 오히려 마음이 찔리고 이를 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이를 갈았다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으며 얼마나 악해져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이런 악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오늘 본문 말씀에 “그 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에서 “이 말”은 전체적으로 스데반의 설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난 후의 그들 즉 유대교 지도자들의 반응을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좀 더 직접적으로는 바로 앞의 말씀을 듣고 난 후의 반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앞 절의 말씀은 지난주에 말씀 드린 생각했던 52절 53절의 말씀을 듣고 난 후의 반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의인을 박해한 사람들이고 의인을 잡아준 살인자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이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은 율법이 무엇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 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님이 오시리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한 사람들이며 결국 예수님을 잡아주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인데 그 율법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자존심 상하는 말입니다. 자기들이 잘못하는 것을 가지고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좀 덜 나쁘겠지만 자기들이 최고로 잘한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오히려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당하는 것은 정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사람들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율법을 줄줄 외우면서 사는 사람들이며 율법을 써서 온천지에 붙이고 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고 당신들은 율법의 율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공격을 하니까 기분이 정말 나빴을 것입니다.

 

  “마음에 찔려”는 헬라어에서는 디아프리오(διαπρίω)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의 뜻은 “톱으로 켜다”입니다. 조각조각 톱으로 켜진 것처럼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픈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마음이 찔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화가 나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난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라고 했습니다. 2장에서와 같이 오늘 본문 7장에서도 “마음에 찔려”라고 같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 마음에 찔린 상태는 서로 다른 상태였습니다.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라고 했을 때는 정말로 가슴이 아픈 상태를 말합니다. 그동안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서 양심에 가책이 들고 가슴이 아파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반응을 일으킨 베드로의 설교와 스데반의 설교는 사실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36)라고 했습니다. 스데반도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7:52)라고 했습니다. 다 같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마음 아파하고 어떤 사람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의 성도들도 설교를 듣고 난 후의 반응이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두무지 반응이 없습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거나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듣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늘 여러분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설교를 들은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없습니다. 반응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그냥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화를 내기도 할 것입니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같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 같은 설교를 듣기도 할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설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회개하고 감사하고 눈물이 납니다. 작은 칭찬을 받아도 힘이 나고 감동이 옵니다.

 

  설교자가 성경해석을 잘못하고 진리를 외치지 않을 때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쁜 것은 정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바른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을 분별하고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듣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고칠 것은 고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의 반응입니다. 설교자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고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복수할 것을 찾습니다.

 

  앞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마음이 찔려서 하는 말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설교를 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그들은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찔린 것은 잘못을 알고 가슴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서 가슴이 아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스데반이 미웠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들이 알고 있던 것을 엉터리라고 하니까 엄청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신칭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니까 쉽게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알고 배웠던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의 율법들을 지켜야 하고 똑바로 살아야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왜 목사가 되고 왜 성도가 되었느냐는 질문 앞에서 다른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의 진리를 외면합니다. 우리들과 가는 길이 다르고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은 우리들과 엄청나게 다른 목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우리와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고 배우고 있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율법이 우리가 가진 것과 다른 율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구약성경이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과 같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 앞에서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그 말씀 앞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 앞에서 감격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 같은 말씀 앞에서 화를 내고 이를 갈고 있는 것일까요?

 

1)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이를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 되면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려고 노력을 하든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마음이 섭섭해지는지 무엇을 잘 못 안 것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인데 그런 노력도 없이 그냥 기분 나쁘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갈다니요?

 

  저는 설교를 하거나 상담을 하거나 대화를 통해서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 그런 말씀을 듣고도 전혀 상관없이 코웃음 치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을 보면서 참 마음이 섭섭합니다. 물론 제 말아 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주 쉬운 것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말을 잘 안 듣고 제 마음대로 할 때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시원찮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를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이를 간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경에서 진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것을 빼면 성경은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이 되고 맙니다.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이야기 하는데 그 진리를 외면하고 오히려 이를 간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면 외면합니다. 가짜를 말하고 값없는 것 쓸데없는 것을 이야기하면 귀가 솔깃해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있으나 마나한 것만 붙잡고 정작 알아야 할 진리를 모르고 다니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3)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이를 간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편에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이런저런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일들은 다 우리들을 위해서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 찬송을 하는 것 기도를 하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 속에다가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을 넣어두시고 마치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너무나 귀한 말씀입니다. 이런 귀한 것을 받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서로 차지하려고 해야 될 것을 외면하고 그것을 은혜로 주신다고 거저주신다고 외면하는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입니다.

 

4)하나님의 말씀에 이를 가는 사람은 정말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을 하시면서 한 달란트를 받고서 그 달란트의 값어치를 모르고 그냥 땅 속에 묻어 두었던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3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나 값진 믿음을 주셨는데 그 믿음을 받아서 감사하고 감격하기는커녕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땅속에 파묻어버리는 사람은 정말로 바보입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알고 소중하게 여기고 그 믿음을 갈고 닦으면서 그 믿음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처럼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하고 무시하고 산다면 얼마나 바보 같은 인생이겠습니까? 나중에는 정말로 후회하면서 슬피 울고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갈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13:49-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4:50-51)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화를 내고 이를 가는 사람들이 주님이 오실 때 슬피 울며 가슴을 치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이 슬피 울며 가슴을 치며 이를 갈고 있을 때 우리는 기뻐 뛰며 찬송하며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내고 이를 갈았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그 복음을 부인하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귀한 복음을 바로 알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말씀 앞에서 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