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12)
  본문 : 행 7:57-60 
  제목 :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당시에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나 다 같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의 생각과 믿음의 차이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달라도 어느 정도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주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심각하게 달랐습니다. 그 심각한 차이를 스데반의 설교와 그 설교를 듣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우는데 그 주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다른 한편을 원수같이 여기고 죽여야 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걸어놓고 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성경을 가지고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처럼 너무나 다른 사상들이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작은 차이들이야 많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나 교회의 운영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교회의 정치에 있어서 장로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정치나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회중정치 감독 제도를 둔 감독 정치 등 다양한 정치형태가 있습니다. 세례를 물속에 들어가서 받는 침례와 물을 뿌리는 약식 세례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순서도 교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전체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는 일에는 철저하게 분석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 것인가 영원한 생명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인가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것인가 이런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스데반이 이제 설교를 끝내고 설교를 듣던 유대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다 같은 편인데 다 같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운 한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본문 57절에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라고 했습니다. 바로 앞 절에서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고 말하기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하자 유대인들이 큰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큰 소리를 질러서 말을 더 못하게 하고 귀를 막고서 달려들어서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죽 살펴보면서 유대인들의 성경 해석과 스데반의 성경 해석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바르게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에 대해서 제사에 대해서 그 원 뜻을 모르고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 율법을 제대로 다 지키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 하면 율법을 잘 지키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럴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원래의 의미대로 하면 살인을 꼭 해야 살인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미워하거나 욕만 해도 살인죄와 같은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100% 다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욕심 그 자체가 죄가 되기 때문에 율법을 깨끗하게 다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는 그 율법을 잘 지켜서 인간다운 삶을 살라고 하신 의도도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산다면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온갖 죄성과 욕심들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겉으로 사람들이 볼 때 지키는 척 하면서 위선적인 행동을 할 뿐이지 정말로 속속들이 잘 지키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율법 앞에서 자신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 자신이 타락한 인생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노력을 해도 율법을 어기며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죽어가고 심판을 받고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장시간에 걸쳐 목숨을 걸고 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지키는 체 하지 말고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한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고 직접 하나님의 영광과 그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고 그들에게 증언을 합니다. 내가 하늘을 우러러 보니까 하늘 문이 열리고 거기에 내가 믿으라고 한 그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성경을 잘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몰라보고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자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어서 그런 귀한 증언을 하는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그 때의 유대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 율법을 잘 지키고 선을 행하여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도 교회 내에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교회가 율법을 더 잘 가르쳐서 지키게 해서 이런 불미스런 일이 교회 안에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요즘 나쁜 일을 한 사람이 신문에 오르내리면 거기에 아주 자주 목사들이 등장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자녀를 학대하고 심지어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추한 일을 한 사람이 목사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나쁜 일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것도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목회자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교회가 정말로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분이 그런 목사들의 잘못을 이야기하니까 목사가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목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악한 습성을 가진 사람이 그런 세상적인 죄악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목사라는 직함을 가지니까 결국 나쁜 짓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에는 착한 사람만 옵니까? 나쁜 사람도 옵니까? 착한 사람도 오지만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이 오는 것이 교회입니다. 사실은 이 세상에 완전히 착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다 나쁜 사람들만 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온 이후에 여러분은 완전히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나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나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조금은 착해졌지만 완전히 착해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온 이후로 아프지도 않고 점점 더 젊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온 이후로 만사가 형통하게 잘 되고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 되었고 의인이 된 증거입니다.

 

  아직도 세월 따라 늙어가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하는 일이 자꾸 잘 안 되고 그러면 아직도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타락한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다 죄인으로 살고 그 죄로 인하여 어려움도 당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 속에서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길만이 나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오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죄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당하지만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완전히 이 죄악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믿고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바울서신을 공부하면서 이신칭의가 성경의 핵심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나 갈라디아서나 바울서신이 아닌 요한서신이나 베드로 서신에도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이신칭의의 진리입니다.

 

  제가 바울의 로마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들이 로마서는 바울이 착각해서 쓴 서신이라고 주장을 하고 다닙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잘 몰라서 착각하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성경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아니요 굉장한 사람들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고 다닙니다.

 

  예수님 당시 성경을 줄줄 외우고 엄청나게 성경공부를 많이 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닌 것처럼 오늘날도 신학박사들이 유명한 목사들이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닙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를 부인하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자기의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그렇게 인정하고 믿어야 하는 것인데 성경까지 부인하면서 자기주장을 내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부족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 좋겠지만 자기가 잘났다고 자기가 의롭다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필요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까지 부인하는 사람은 사탄의 사주를 받는 거짓선생이요 이단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위대한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악을 쓰면서 달려든다고 귀를 막고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든다고 해도 우리는 이 진리를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흉악한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이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들보고 손가락질을 할 때 너희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는 꼴이 그게 뭐냐고 비웃는다고 해도 거기 기죽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내 사는 꼴이 이래서 나는 예수님을 더 믿는다. 어쩔래! 이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본문 58절에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른 말을 하는 스데반을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서 죽이고 있습니다.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인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 그 악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3장에 보면 사람을 죽여야 할 경우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도록 부추기는 사람은 죽여서 그 화근을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너희를 꾀어서 떠나게 한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다른 신을 섬기게 한 사람은 돌로 쳐 죽여도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스데반에게 이 죄목을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스데반이 다른 신을 섬기자고 부추겼다고 한 것입니다. 스데반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 예수님을 다른 신으로 보고 다른 신으로 자신들을 이끌고 간다고 보고 신명기의 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데반에게 구원의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데반에게 다른 신을 섬기라고 유혹하는 사람의 죄를 뒤집어씌워서 돌로 쳐서 죽이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 못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때로는 이런 엄청난 죄악에 대해서 정죄하고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율법의 근본정신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에 먼저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이 사랑의 율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지만 스데반은 그런 악을 행하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같은 율법을 가지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쓰는 유대인들과 악을 행하는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이 모든 율법이 모든 제도가 다 구원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게 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빼고 다른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지금 구원의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을 해 나오셨는가를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도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하신 일도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은 것도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모든 구원의 이야기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교회를 세우고 우리를 불러 모으신 것도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여기 이렇게 불러 모았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복음을 등한시하거나 전하지 않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은 구원의 복음과 반대되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자 바르게 살자고 외치는 것은 구원의 복음을 거꾸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엉터리 복음을 가지고 구원의 복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런 엉터리들을 잘 분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은 구원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다가 돌에 맞아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이 구원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