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13)
  본문 : 행 7:59-60 
  제목 :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목사님들이 만나면 지난주에 설교 했던 내용들을 서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주로 제가 한 설교 이야기를 잘 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친한 목사님들이 우리 교회가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목사님들이 저보고 “아직도 스데반 이야기야, 아직 스데반 순교 안 했어?” 라고 농담을 합니다. 오늘 드디어 스데반이 죽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두 마디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긴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의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합니다.

 

  너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교가 성경 전체를 구석구석 다 할 수도 없고 그때그때 부분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마는 것이기 때문에 빨리 사도행전 다 마치고 다른 성경 해야지 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하지만 사도행전 본문만 보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서 설교를 하고 성경역사 뿐만 아니라 교회사 전체를 염두에 두고 성경의 중요한 핵심을 설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의 한두 구절이지만 성경 전체를 설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편협 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스데반이 긴 설교를 끝내고 스데반의 설교에 반감을 품고 돌을 던지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순교를 당하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두 마디의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두 마디 말을 남기고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한 대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영혼은 우리의 생명의 중심입니다.

 

  사람들은 이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이 육신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고 그냥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도 세상 사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인생을 더 보람 있게 살고 참되게 살고 미래를 대비하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천지만물들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우리가 보고 살고 있는 이 만물들을 만드셨습니다. 천지 만물을 다 만드시고 우리 인간은 좀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하나님께 있는 형상들을 사람들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만드시고 그 육신에 영혼을 넣어주심으로 인간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짐승들에게 없는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원숭이 따위가 아무리 모습이 진화되고 머리가 좋아진다고 해도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 개나 고양이를 인간과 동급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어 주셨는데 영혼 없는 개나 고양이를 인간처럼 동격으로 생각한다든지 원숭이를 조상으로 생각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처음 창조된 인간은 육신과 영혼이 완전하게 창조가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태어난 인간은 영혼은 죽은 상태로 태어나고 육신은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영혼이 없어져버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분리의 상태를 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관계를 떠난 상태를 영혼이 죽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죽음은 육신이 영혼과 분리된 상태를 육신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영원한 죽음이란 우리의 영과 육이 영원한 하나님과 분리되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떠나서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영혼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며 영혼이 해야 할 일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42:1-2) 살아 있는 영혼은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영혼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 세상에서 늙어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인데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더 분명하게 영혼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은 육신이 태어날 때 죽은 영혼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즉 하나님을 몰라보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없이 하나님나라가 아닌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죽은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죽은 영혼을 거듭나게 해 주셔서 살아있는 영혼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의 육신은 영혼과 분리되어서 비록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땅 속으로 들어가서 썩게 되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나라로 가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다시 만나서 신비한 몸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영혼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 있는가?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가? 거듭난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고 있는가? 이런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았을 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영혼이 죽었을 때 사탄의 종이 되어서 사탄을 위해 마련한 영원한 지옥으로 가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을 때 비단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인간답게 바른 삶을 살면서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영혼의 생명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스데반의 마지막 말이“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이었습니다.   
  
  본문 59절에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한 것은 정말로 대단한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나 자신 있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었지만 이런 마지막 말은 남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만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니까 이제 육신이 죽음을 당하면서 영혼은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을 아시고 당연히 그렇게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의 이런 최후의 모습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보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장면은 사도들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순교를 당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예수님처럼 대속의 죽음은 아니지만 진리를 알고 영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알고 살게 됩니다. 스데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그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성경 곳곳에 예표 되고 예언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이 없이는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하늘을 우러러 볼 때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돌이 날아오고 육신은 극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이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나라를 보고 죽음을 기쁘게 맞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이렇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은 이런 자심감에서 온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확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바를 자신 있게 외쳤기 때문에 이런 고백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뜻을 바르게 알고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도 나름대로 보람된 일도 많이 있고 살기에 따라서 행복한 삶도 살 수가 있습니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해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좋은 일 많이 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가는 나그네 길이고 천국을 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곳입니다. 여기가 최종 종착지라고 생각하고 여기서의 삶에 올인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을 잘 관리하고 있다가 최후의 순간에 하나님께 우리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만한 영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거듭난 영혼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은 상태로 있는 것과 다시 거듭난 상태로 있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죽은 상태로 있다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고 죄의 노예로 살다가 영원히 하나님과 떨어져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사람입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영혼이 다시 살아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회복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은혜와 혜택들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우리가 좀 착해져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려주심으로 우리의 신분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우리는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사탄이 주는 잡신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2)잠자는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은 다 성령님이 그 마음에 계시는 사람들이고 영혼이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거듭난 영혼이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은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아무 감각이 없이 세상을 삽니다.

 

  우리가 가진 이 육신은 타락한 죄성이 남아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자꾸 옛날처럼 죄를 지으면서 살려고 하고 자구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서 살려고 합니다. 틈만 있으면 하나님을 떠나 도망을 가서 세상 사람들처럼 타락하여 즐기며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듭난 우리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17)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이 와 계시고 성령님을 따라 행할 수 있도록 영혼이 살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성령님을 따라 행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려고 자꾸 마음먹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힘이 없어지고 육체의 욕심이 슬슬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속에 영혼이 죽은 상태이고 악령이 그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고 그래서 육신의 욕심을 따라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살아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죄가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아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가 어찌 세상 사람들처럼 살려고 하는가 그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자꾸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는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도록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쌩쌩하도록 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은 점점 늙어지고 낡아갈지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더 열심히 성경을 읽으십시오. 더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더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더 열심히 설교를 들으십시오. 더 열심히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하나님을 알려고 더 노력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려고 더 노력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묵상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더 많은 충성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더 애를 쓰십시오.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사십시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여러분은 영혼은 죽은 영혼처럼 점점 시들어 갈 것이며 결국 영혼이 죽은 자처럼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죽은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런 병든 영혼 잠자는 영혼을 가지고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시면서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려주셨는데 다시 살아난 영혼을 가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혼이 죽은 사람처럼 산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이고 우리도 언젠가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받아 주시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은 자기가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다가 죽음으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영혼이 사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진리를 바르게 알았습니다.
  그 살아 있는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순교를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