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14)
  본문 : 행 7:59-60 
  제목 :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59.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참 좋은 것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런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한 일을 하고 보람된 일을 하고 모두에게 유익한 일을 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보다는 악한 일을 많이 하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일을 많이 합니다. 한두 가지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살펴보면 악한 면이 더 많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머리를 주셨습니다. 그 좋은 머리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머리가 좋은 사람은 그 좋은 머리로 오히려 남을 속이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셨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그 돈을 가지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좋은 돈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하기 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고 남을 위해서 좋은 일에 돈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특별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셨고 제사제도를 주셨고 특별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것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것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 그들에게 주신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최고의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에게 주신 특권들을 오히려 메시야를 통한 구원을 방해하는 악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동안 사도행전 강해설교와 특별히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그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지난 2014년 1월부터 시작을 했으니까 2년 6개월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기록된 7장 강해설교를 작년 12월부터 했으니까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이 오랜 시간동안 말씀드린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서계만방에 전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들이 받은 좋은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야기 했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스데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돌로 쳐서 죽이는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지은 이 악한 죄를, 그들이 알지 못해서 짓고 있는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시고 그들이 이 죄 값을 치르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고 그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이 죄가 너무나 흉악한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먼저 이 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른 생각할 때 이 죄는 스데반에게 돌을 던져서 죽게 한 그 죄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죄 없는 억울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 그런 정도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그 죄를 위해서 기도한 것은 그들의 죄가 단순히 한 사람을 죽인 그러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받지 않으며 안 되는 너무나 흉악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1)그들의 죄는 구원의 주님을 몰라보고 대적한 죄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나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죄입니까? 몰랐습니다. 그것이 죄인 줄 알았으면 그 짓을 했겠습니까? 정말로 몰랐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도 뭘 잘 몰라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알면서도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사실을 알고도 그런 악한 죄를 지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몰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핍박한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때 자신을 죽이려고 모인 사람들을 위하여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까짓 돈 몇 푼 때문에 그까짓 명예 때문에 그까짓 기득권 때문에 그까짓 자존심 때문에 메시야이시며 구원자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그렇게 험한 십자가에 못을 박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기도 속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무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조상 모세와 율법 성전제사 이런 것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을 설명해도 그 때는 아는 척하지만 조금 지나면 또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작은 신학교에서 성경과목 강의를 합니다. 강의 할 때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 책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또 강의를 통해서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강의가 끝나고 리포트 제출한 것을 보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의의 기준이라는 것을 이야기해도 결론은 또 율법을 행하는데 가 있습니다. 믿음으로가 아닌 행함으로 구언을 받는다는 것이 아주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웬만하게 말해서는 그 장벽을 허물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많이 연구했다는 신학자들까지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고 행함이 구원을 받는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제일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율법을 어긴 것도 죄입니다. 교회에 충성을 하지 못한 것도 죄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들은 죄 축에 끼이지도 못합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오랜 역사가운데 진행해 오신 가장 핵심적인 것을 잘 모르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제일 큰 죄입니다.

 

  그 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무시하고 비웃는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죄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고 살지 않는 죄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죄입니다.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죄입니다. 자기 스스로 선을 행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입니다 나에게 구주가 필요합니다. 라고 하지 않는 거만함이 죄입니다. 이런 우리의 무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이고 스데반의 기도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최고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2)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은혜로 베푸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얻는 혜택은 너무나 엄청나서 사람들에게 말을 해도 잘 믿지를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부자가 되게 해 준다면 그 정도는 믿겠는데.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완치되게 해 준다면 그 정도는 믿겠는데 실패하고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재기하게 해 준다면 그 정도는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해주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살게 해 주고 심판도 없이 평가도 없이 믿기만 하면 이런 것들을 그냥 다 준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엄청난 은혜들을 거부합니다. 그런 정도는 바라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우리 남편 돈이나 좀 잘 벌게 해 주고 우리 자식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나 들어가게 해 주고 이 세상에 살 동안 건강하게 살게만 해달라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믿음은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거지가 내 미는 손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손을 내밀기만 하면 왕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데 손을 내 밀지 않고 은혜를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교만해서 그런지 아쉬운 것이 없어서 그런지 그 은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몰라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믿음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죄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수천억을 내라고 했다고 하든지, 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키라고 했다고 하든지, 재산을 다 바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야 된다고 했다고 하면 그렇게 하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엄중하게 문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손만 내밀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구원을 그냥 거절을 한 죄는 절대로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거절하는 미련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려 주옵소서 이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이고 스데반의 기도입니다.
 
3)그들의 죄는 율법의 용도를 잘 못 사용하고 있는 죄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을 집행한 근거는 율법에 의한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라고 미혹을 하는 사람은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한 신명기의 말씀을 따라서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다른 신을 섬기라고 미혹을 한 사람입니까?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했다고 율법을 가져다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원래의 목적을 모르고 그와 반대되는 일에 율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이런 정도는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를 지었을 때 받아야 할 형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살인한 사람은 그 사람도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간음한 사람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물건을 탐내고 훔친 사람도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계명을 어겼을 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죄를 짓지 못하게 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형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율법은 사랑이 중요성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살인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여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간음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여서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하고 부부간에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하여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도적질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여 다른 사람의 소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하며 우리에게 있는 이 욕심이 모든 죄를 가져오게 하는 악한 것임을 알게 하여 내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소중하며 여기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계명을 지키면서 살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깨달아서 나를 이 죄악에서 구원해 주실 구주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율법의 기능을 잘못 알고 그저 남이 잘못했을 때 비난하고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미워하고 율법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의 세상 이익을 챙기는 일에 사용하려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문제 있는 교회에 전권위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보면 모든 사람들이 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사용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기 위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율법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서로 정죄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내치는 일에 사용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주신 사랑의 정신, 용서의 정신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율법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악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이고 스데반의 기도입니다.
 

  이 악한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말에서는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번역을 했지만 헬라어에서는 좀 더 깊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돌리다’는 헬라어에서 히스테미(ἳστημι)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돌리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머물러 두다”, “확정하다”라는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는 단어입니다. 단순이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는 의미보다는 이 죄가 그들에게 머물러 있게 하거나 이 죄가 확정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흉악한 죄가 계속 그들에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회개하고 그 죄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합니다. 이 죄가 그들에게 최후의 죄목으로 확정이 되어버리면 안 됩니다. 죄가 확정되기 전에 변호사가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생각하면 괘씸하고 생각하면 이 흉악한 죄에 대해서 더 큰 벌을 받게 해야 할 엄청난 죄를 짓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죄 값으로 형벌을 받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그들을 보며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보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 가운데 그들이 계속 머물러 있지 않게 해 달라고 이 죄가 그들의 죄목으로 확정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흉악한 죄가 우리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죄가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서 나 자신의 죄로 확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설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 받을 수 없는 흉악한 죄는 짓지 말아야 합니다. 짓지 않아도 될 죄를 알지 못해서 짓는 어리석은 일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죄가 무엇인지를 앞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성경의 핵심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복음인 구원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이 진리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바르게 알고 그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이 믿음을 그 무엇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랑을 행하면서 살라고 주신 율법을 가지고 교회 안에 성도들을 정죄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못한 죄가 가장 큰 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악한 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 두 마디 귀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두 마디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