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18)
  본문 : 행 8:14-17 
  제목 : 두 사도가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4.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구약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우리 인간도 창조하셔서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려하고 자기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은 영원한 생명도 빼앗기고 행복한 삶도 빼앗기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세상에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우리 인간을 그대로 멸망하게 내버려두시지 않고 구원을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게 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그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어떤 행동을 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와 같은 여러 서신서들은 그 예수님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그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메시야가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구원이 무엇이며 구원받은 자가 어떤 복을 받고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사도행전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떻게 퍼져나갔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예언을 하시기를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나라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전 세계를 퍼져나갈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 일에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을 했고 온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마리아에는 빌립이라는 사람이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뽑은 일곱 일꾼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이방나라의 침공으로 인해서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들만 살지 못하고 이방나라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혼혈족이 된 도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들처럼 생각했던 성입니다. 그들을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방인들보다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도시에 사도도 아닌 집사가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들이 사마리아 현장에 내려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본문 14절 말씀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빌립이 전한 말을 듣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까지 들렸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베드로와 요한을 현장에 급파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짐승으로 취급을 하고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이방사람들과 혼혈족이라고 해서 이방인보다 더 천하게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해도 예루살렘에 살지 않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지방에서 자라셨는데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은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유대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속에도 유대인이라는 우월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말로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을 것이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정말로 잘 믿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설득하여 믿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히 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그들에게 보내주셔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성령님을 보내주시면서 성령 강림식을 아주 거창하게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나라 말로 설교를 하는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말로 듣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서 걷고 뛰기도 하고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표적들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경도 하나님도 잘 모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대표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항상 앞장서기를 좋아했고 또 자칭 타칭으로 예수님의 수제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가 가서 확인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따라나선 것은 좀 특별합니다. 물론 요한도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런 순서로 이야기를 하니까 서열상으로 갈만한 위치의 사람이긴 합니다. 요한에게는 사마리아의 좋지 않은 추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하셨는데 마침 사마리아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먼저 보내어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도록 부탁을 했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때 요한이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돌아서 가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악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는데 환영은커녕 마을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막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척한 그 사람들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요한이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받을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말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이 드는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 종교의 교리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믿기만 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도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처럼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모르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사람처럼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가운데도 예수님의 복음을 믿지 않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어중간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할 때 저 사람은 너무나 악해서 도무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들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더라.

 

  본문 15-16절 말씀에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내려가 보니 성령이 내리신 일은 없는 것 같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은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받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다고 했는데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당연히 성령님이 그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믿는데 성령님은 안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면서 그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들 중 우리의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짜 믿음이 되어야 하고 그 믿음의 고백이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이미 받았으나 잘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셨는데 예루살렘에서처럼 떠들썩하게 오시지 않고 조용히 오셨기 때문에 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은 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지만 뭐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성령님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성령님을 받지 못했지만 우선 예수님을 스스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그들이 말한 그대로 성령님은 오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예비적인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믿지는 못하지만 그냥 교회에는 오고 믿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상태로 계속 있다가는 결국 어느 날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한 채로 교회를 떠나고 말게 됩니다.

 

  성령님과 관계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고 받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척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마리아성에서 만난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그 경우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는척하고 세례까지 받고 나중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성령님도 돈을 주고 받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가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진짜 믿음을 볼 수 없고 잘못된 신앙을 가진 가라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불완전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도 받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만 다닌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진실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그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관계가 없이 그냥 예수님만 믿고 세례만 받았다면 그것은 진실 되지 못한 신앙일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본문 17절에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를 보시고 그들에게 안수하니까 그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그런 상태가 성령은 이미 받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고 성령님의 특별한 은사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셨고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특별한 능력들이 그들에게도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과 상관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같으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히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속에 성령님이 와 계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아무나 교회에 와서 그냥 쉽게 예수님 믿겠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재산이나 기득권도 다 박탈을 당하고 자신이나 가족이나 다 붙잡혀 가서 사자 밥이 되거나 불에 태워서 죽임을 당할 각오가 있어야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목숨을 담보로 하고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발각이 되면 바로 붙잡혀 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그 고백이 진짜니 가짜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조금만 피곤해도 예배에 빠지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교회에 안 나오고 조금만 불이익을 당해도 교회도 버리고 떠납니다. 그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참 힘들고 피곤한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내 속에 오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신앙생활이 즐겁고 평안합니다. 성령 충만하심이 없이 내 생각대로 내고집대로 살려고 하니까 자꾸 세상의 쾌락이 쳐다보여지고 교회가 오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1)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알게 되고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의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지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신분으로 바뀌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받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얼마나 귀한 복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왕에 성령님을 받아서 신앙생활 하시려면 성령님에게 푹 빠지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고 나면 진자 신앙을 가지고 나면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2)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가 너무나 흉악해서 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착각하고 사는 것은 우리가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구원이 필요한 인생인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면서도 천년만년 사는 사람처럼 삽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흉악한 죄로 죽어가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스데반처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주여 이 죄를 나에게 머물러 있게 마옵소서”, “이 죄가 나에게 최종적으로 확정되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삶이 점점 거룩한 삶이 될 것입니다.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는 무책임하고 나태하고 게으르고 별 볼일 없이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받는 그런 삶에서 정말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잘했다고 칭찬받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우리의 삶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이 없고 늘 고통스럽고 뭘 해도 잘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눈에 보이는 기적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 같은 역사가 아니라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의 삶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믿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십시오. 여러분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 즉 재능들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들을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쓰려고 할 때 그 재능에 큰 능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돈이나 시간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사랑하는 마음이나 열심이나 음악적인 소질이나 문학적인 소질이나 미술이나 그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 재능을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거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듣고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고 세례만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을 받았고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참된 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심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기쁨이 넘치고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