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82)
  본문 : 행 5:33-35   
  제목 :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낭만논객’이라는 텔레비전 방송 아침 프로를 보신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동건 아나운서와 김동길 박사 그리고 가수 조영남 씨가 나와서 하는 토크 프로인데 지난주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감명을 받았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바뀐다는 주제였습니다.  김동길 박사가 청년 때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톨스토이의 “결혼”이라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생각 때문에 그 아내를 죽인 어떤 사람의 이야기인데 결론은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책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훌륭한 사람이 늙어서 노인이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 톨스토이의 그 많은 작품 가운데 그런 책을 읽고 또 거기에 감명을 받고 인생을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을 잘못해서 불행한 사람도 있지만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해진다고 해도 결혼은 하나님의 법칙이니까 해야 합니다.

 

  저도 톨스토이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소싯적에 그의 작품 한두 편 읽었습니다. 저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단편소설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악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도달해서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아나가는 것은 아직도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책에 감명을 받아서 그런지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책을 읽는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무엇을 보면서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런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처음 신앙을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처음 누구에게 배웠는지가 참 중요합니다. 처음 배운 것 옛날에 경험했던 것들을 쉽게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가는 것 즉 변질이 되는 것은 너무나 쉽게 따라합니다. 그러나 나쁜 것에서 그것이 나쁜 것임을 깨닫고 좋은 것으로 오는 것 즉 변화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제가 목회활동을 통해서 많은 목사님들도 만나고 많은 신학생들도 만나고  많은 성도님들도 만납니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올바른 신앙을 가지기도 힘들고 올바른 신앙을 따라서 사는 것은 더 힘이 든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하나님 은혜에 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근본주의자였고 율법주의자였고 머리로만 예수님을 믿고 그냥 의무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대표적인 외식주의자였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따라서 사는 진정한 신앙인이 된 것에 대해서 늘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지금까지 여기 계신 분들도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음을 알고 진리를 바로 알고 바르게 신앙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이 대열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갔는데 그 중에 과거의 저와 같은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 잘못된 신앙을 버리고 진리를 바로 알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려고 엄청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앙을 외면합니다. 자신이 가졌던 과거의 잘못된 신앙을 버리지 못하고 또는 형식 적인 신앙에서 참된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가 버리는 것을 봅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고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은 이 참된 축복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악한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베드로와 사도들이 받은 산헤드린공회 법정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바른 증언을 하고 우리가 그 일에 증인이라고 하자 거기 모인 사람들이 화를 나면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덤비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그 악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달래는 율법교사 가말리엘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설교제목은 오늘 본문의 시작인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라는 말씀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오늘 본문 33절에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라고 했습니다.
 
  산헤드린공회에서 사도들이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재판에서 사도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진술하였고 그들이 한 진술에 증인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 말은 자신들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증언이 사실이 아닐 때 그들의 목숨이라도 내어놓겠다는 각오로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증언을 듣고 있던 거기 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 증언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화를 내어서 사도들을 없애버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1)그들이 듣고
  여기 그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재판의 배심원이었는지 구경했던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들 역시 사도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사도들이 알고 있는 그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결심을 한 사람들이고 일반백성들보다 그 일에 더 열심을 내어서 살고 있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들은 것은 그동안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따라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율법이, 그들의 절기가, 그들의 제사가, 모두가 다 메시야를 예표 하는 것이고 메시야를 기다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도 그를 증명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말을 하는데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반대를 하고 그런 증언을 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덤비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참 말들이 많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많고 똑똑한 머리로 엄청난 것들을 연구하여 발표를 하면 깜짝깜짝 놀라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유익한 말들도 있고 들어서는 안 될 악의적인 말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별별 신학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여 쓴 신학서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누구의 주장을 따르는가에 의해서 신앙의 색깔도 가지가지입니다. 어떤 신앙이 바른 신앙인지 어떤 신앙이 잘못된 신앙인지 알 수 없도록 각기 주장이 그럴듯하여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럴 때 우리가 꼭 듣고 따라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듣는 설교에 십자가의 복음이 있는가?  우리가 믿는 믿음에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우리가 사는 삶이 십자가의 복음을 중심으로 한 사람이 있는가?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이것저것 잘 하지 않고 계속해서 십자가의 복음에 관한 설교만 하는 것은 이 복음이 너무나 중요한데 여기에다가 잡다한 것을 섞어놓으면 중요한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지 않고 잡다한 부스러기 축복에 마음을 빼앗길까봐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기도 많이 해야 한다, 성경 많이 읽어야 한다,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좋은 일 많이 해야 한다, 충성을 해야 한다, 복을 받고 성공을 해야 한다. 듣기 좋고 실천에 옮겨야 할 좋은 이야기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이 밀려나면 안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어야 합니다. 복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밖에 없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오직 이 십자가의 복음만 중요하게 여기고 붙잡으시면 됩니다.

  차라리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작은 좋은 것 때문에 복음이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하면 큰 낭패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이라고 외치던 개혁자들의 말을 듣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2)크게 노하여
  그들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말의 “크게 노했다”는 말은 아주 신사적인 표현입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살기가 가득한 분노”라고 주석을 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사도들이 한 말은 그들의 마음을 찌르는 말이었습니다. 당신들이 죽인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은 그들에게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말을 할 때 화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신념이 강할수록 남이 하는 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도들이 하는 말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다르고 정 반대가 되고 그로 인해서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면 무조건 기분이 나쁩니다. 그래도 무슨 말을 듣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하거나 하는 사람은 양호한 사람입니다. 너무 중요한 말을 하는데도 아무런 감동도 없이 그냥 멀뚱멀뚱 앉아만 있는 사람은 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감정이 메말라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맨날 듣는 말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 생각이 굳어져서 도무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거기에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사람의 뜻인지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흘려듣고 마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된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다행히 우리들은 기뻐하는 마음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게 되고 뜨거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3)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사람이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는 것 가지는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가 난다고 해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죽이기까지 해야 합니까? 아주 나쁜 최고로 악질적인 일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입니다.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고 해도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안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없애버리고자 하는 것은 사도들보다도 사도들이 가진 복음을 없애버리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엄포를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그 복음 때문에 화가 났고 그 복음을 없애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없애는 것은 온 인류의 영원한 생명을 없애버리는 너무나 흉악한 범죄입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너무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그들이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없애버리는데 앞장 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없애버리는데 앞장서지는 않지만 다른 것들을 더 중요하게 가르침으로 서서히 복음을 없애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얼마나 악한 일인지를 자신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모르고 서로 죽이고 죽어가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본문 34-3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유대인 지도자들이 사도들이 한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사도들을 죽여 버리려고 하자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일어서서 그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라고 했습니다.

  언뜻 보면 가말리엘이라는 지도자가 나서서 화난 사람들을 말리며 조심을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사도들의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사도들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닙니다. 화를 내서 일을 망치지 말고 조심해서 일을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은 신약성경에 오늘 본문하고 뒤에 22장에만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22장에 의하면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이 이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당시에 유명한 율법 교사였고 바울도 그의 문하생으로 공부했던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가말리엘이 유명한 율법 교사였고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다른 기록은 성경에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사람도 비밀리에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자신의 그런 지위와 율법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메시야의 예언에 대한 기록을 다시 한 번 점검을 하고 살펴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성경을 연구하고 살펴보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예언하신 그 메시야가 맞다. 우리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자 라고 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고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성경을 연구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으면서도 막상 성경의 가장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외면한 것입니다. 본인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에게서 율법을 배운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서 엄청난 일을 감당하고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구속사에 크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세상을 놀라만한 논문을 쓰고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따르는 신학을 발표했다고 해도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건 엉터리 박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연구를 하면 할수록 거기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위대함이 보여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가는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당에 십자가를 걸고 목회를 한다고 하면서도 거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사람의 머리로 사람의 연구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할 수 없고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야 하고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야 하고 성령님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즉 창세전에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야 이린 진리를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조심하라” 이런 말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잘 살펴보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완전히 미쳐야 됩니다. 복음을 확실히 알고 그 복음대로 믿는 것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길임을 알고 목숨 걸고 따라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 이 길이 아니면 죽는다,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만 나의 길이 되신다. 이런 확실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들의 목숨을 건 증언 앞에서 진리를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좋은 말을 들었는데도 오히려 화를 내고 그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을 죽이려고 덤비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핵심을 몰라본 어리석은 율법선생의 모습도 살펴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복음을 무시하고 복음에 화를 내고 복음을 가로막고 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때에 복음을 듣고 거기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날마다 살피고 사는 우리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