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추석)설교 양향모 목사(특별1501)
  본문 : 갈 1:10
  제목 :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오늘은 추석(秋夕)입니다.
  언제 무엇 때문에 생긴 절기인지는 잘 모르지만 추수가 시작되는 달 밝은 가을날에 처음 익은 곡식들을 가지고 조상에게 제시도 지내고 이런저런 놀이들을 통해서 풍년을 기원하는 큰 명절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절기들이 있습니다.
  초실절이라고 해서 처음 익은 곡식을 추수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절기도 있고 초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 해서 추수를 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도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 절기들을 기념해서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추석과 추수감사주일은 별로 연관은 없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추수를 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감사 절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주일날이 딱 추석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떠났고 여기저기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고 교회가 좀 한산한 느낌이 듭니다. 명절에 이런저런 일들도 많고 모처럼 친척들과 놀기도 바쁘실 텐데 주일이라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시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칭찬이 있으실 줄 믿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좀 딱딱한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잠시 멈추고 쉬운 주제를 가지고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여러분에게 유익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우리 사람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우리들 좋으라고 교회에 다니는데 늘 하나님만 좋게 한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받을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얼른 생각하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사람들을 좋게 하거나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좋게 하거나 기쁘게 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꼭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좋게 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치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곳이 아닌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이 분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고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이 믿음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분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도바울도 원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구약성경을 엄청나게 공부를 해서 구약에 있는 말씀대로 사는 일에 최고의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지 그 십자가를 지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장차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구약성경을 그렇게 많이 연구를 하고도 그 구약성경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냥 구약성경에 있는 율법을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구약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따로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지키면서 살아야 할 율법들이며 행하여야 할 절기들이며 제사나 사람들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잘 지키고 행하면 복을 받고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구약성경의 말씀들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 된 십계명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지키면서 살아야 할 여러 가지 규칙들은 너무나 많아서 참 지키기가 힘이 드는 것들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웃을 해치려고 거짓말 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비롯해서 많은 규칙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십계명을 더 엄하게 해석을 해서 살인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나 사람에게 욕을 하는 것도 다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했고, 간음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엉큼한 마음을 품고 여자를 쳐다만 봐도 간음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기마다 안식일마다 또는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 제사법도 엄청나게 까다롭습니다. 우리나라도 명절이 되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그 제사법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홍동백서니 뭐니 해서 음식상을 차리는 것도 법칙이 있고 때와 장소도 다 정해져 있어서 제사를 제사답게 드리려면 매우 복잡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일을 지키지만 구약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주일날에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면 되지만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얼마 이상을 걸어가도 안 되고 식사를 위해서 음식준비를 해서도 안 되고 안식일에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을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고, 이런 규정들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이런 것을 잘 지켜서 복을 받은 사람이 많겠습니까? 잘 못 지켜서 벌을 받은 사람이 많겠습니까? 목사님들은 대부분 이런 것들을 잘 지켜서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지키지 못해서 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잘 못 지켜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영원한 생명도 반납을 해야 했습니다. 노아시대 때도 사람들이 노아식구 8명만 살고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노예가 되고 포로로 잡혀가고 나라가 전쟁에 망하고 엄청난 사람들이 거의 다가 죽임을 당하고 나라도 빼앗겨 버리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어렵게 이런 저런 법들을 정하고 잘못하면 가차 없이 벌을 내렸을까요? 상을 주시고 싶으시면 문제를 좀 쉽게 내주시면 될 것인데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을 내놓고 풀어서 상을 받으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간단히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것이지만 결국은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하고 그 타락한 인생들을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 많은 규칙들을 다 행하여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하고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그런 역사를 만드시고 그런 역사를 기록하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을 연구하던 유대인들조차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이전에는 그런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구원의 법칙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복음을 전하고 다니자 유대인들이 화가 잔뜩 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복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엄청난 노력을 하고 다니는데 갑자가 바울이 그것이 아니라고 하고 그냥 간단히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그동안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유대인들이 화가 난 것입니다.

 

  잘살아보겠다고 피땀을 흘리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수고도 없이 로또복권 1등에 당첨돼 가지고 뭘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 수고하느냐 나처럼 이렇게 간단하게 복을 받아서 잘 살아라 라고 하면 여러분은 얼마나 기분이 나쁘시겠습니까? 일이 손에 집히지도 않고 때려치우고 맨날 복권이나 사러가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1등이 당첨이나 되면 다행이지만 그게 하늘에 별 따기지 쉽게 되는 일입니까?

 

  바울이 외치는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그런 것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정말로 힘들게 율법을 지켜서 인정을 받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그런 것은 소용이 없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까 힘도 빠지고 화도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들 생각에는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바울을 잡아서 죽이려고 했고 바울이 전도해서 세워놓은 교회에 들어가서 예수님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처럼 율법도 지키고 절기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그 말을 들으니까 그럴듯하니까 복음을 버리고 다시 율법을 지키는 유대교로 돌아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소문을 퍼뜨립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거짓말이나 하고 다니는 나쁜 사람이다. 어떻게 율법도 안 지키고 하나님께서 정한 절기도 안 지키고 예수님만 믿는다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겠느냐 그것은 바울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좋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여러분도 생각을 해 보십시오 구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요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사는 것이 구원인데 그것이 쉽게 됩니까?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니요 그건 거짓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것을 어찌 아무것도 안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되는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이 말입니다. 바울이 사람들을 속여서 자기편 만들어서 이용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고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이 말입니다.

   “내가 지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오늘 본문 현대어성경 번역)
  
  바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데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 그의 임무인데 그런 그가 어찌 사람들 비위 맞추려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그런 거짓말로 속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오늘날의 성도들도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을 하고 그러면 복을 받아서 잘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 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들을 하고 삽니다. 혹시 잘못해서 벌이나 받지 않을까 싶어서 벌벌 떨면서 삽니다.

 

  저처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도 잘 지키고 똑바로 살아야 하고 교회에 충성도 하고 그래야 되는 것이지 어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사람들의 환심이나 사고 인심이나 써서 성도들을 약하게 만들고 아무렇게나 살게 만드느냐고 비웃습니다.

 

  저도 바울과 같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환심이나 사서 교회에 끌고 와서 충성이나 하고 헌금이나 하게 만들려고 거짓말로 이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복음을 듣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못살고 충성도 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중요하냐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구원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 빼앗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이고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좋게 하랴

 

  역시 사도바울이, 바울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좋게 하랴”라고 했습니다.

  여기 “좋게 하랴”로 번역된 헬라어의 페이도(πείθω)라는 단어는 좀 복잡한 단어입니다. 원 뜻은 “설득시키다”는 뜻인데 “확신을 가지다, 권하다, 인정하다, 좋게 하다, 순종하다.”이런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다른 번역 성경들은 개역성경의 본문과 다르게 번역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현대어성경)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까?”(새번역성경)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이 질문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당연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을 좋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굳이 이런 질문은 할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좋게 하려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좋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관한 견해가 우리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셨고 그들은 그 왕의 명령을 받고 충성을 하는 신하들이었습니다. 왕이라고 하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통령 같은 그런 왕이 아닙니다. 왕의 명령이 곧 법이 되고 그 명령에 불순종은 바로 죽음이 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을 말합니다.

 

  또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의 주인이시고 그들은 그 주인의 종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고 자기 자신의 몸까지도 주인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의무사항이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붙잡아다가 재판을 하고 형벌에 처하는 재판장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까봐 벌벌 떨어야 했고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재판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절대 권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의 우리에게 구약시대의 백성들이 가지지 않은 아주 특별한 분이 되어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시지만 우리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 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을 하시는 재판장이시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방법이 구약의 백성들과 이 세상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육신의 아버지께 효도하는 것을 출세를 하고 잘 살고 좋은 일 많이 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그렇게 살 때 좋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좀 못살아도 세상에서 인간노릇을 좀 못한다고 해도 부모님을 알아보고 명절 때 부모님께 찾아와서 함께 있어주는 그런 자식이 효도하는 자식입니다. 출세를 해서 박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부모님을 몰라보고 부모님을 섭섭하게 하면 그것은 자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버지로서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바르게 살고 좋은 일 많이 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집인 영원한 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제일 큰 관심입니다.

 

  그 본향 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려울까봐 그 길에서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다 없애버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본향 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지은 죄를 다 없애버려야 합니다. 깨끗한 사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고 고행을 해야 합니다. 

 

  평생 착하고 바르게 산다고 해도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만을 위해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돌아가는 새로운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잘 살기를 원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에 잘 살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잊어버릴까봐 그것이 걱정입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서 더 좋은 영원한 나라를 잊을까봐 걱정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시기는 하지만 힘든 일도 허락을 하시고 고통스러운 일도 견딜 만하게 허락을 하십니다. 먹고 사는 것도 힘이 들고 또 날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런 괴로움들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은 그 괴로움을 통해서 영원한 나라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은 여러분의 환심을 사고 여러분 마음이나 기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는 엄청난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누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아버지 되는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보고 계십니다. 복음의 길 믿음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