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88)
  본문 : 행 6:5-6  
  제목 : 일곱 명의 봉사자들.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옛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가정이 평안함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장들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서 군림을 하고 가족들을 종처럼 부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가장이 그런 식으로 했다가는 금방 왕따를 당하고 잘못하면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가장들은 군림하지 않고 가정을 위해서 봉사하며 삽니다.

 

  EBS 방송에 “아버지가 돌아왔다”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왕년에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군림라면서 살았던 아버지들이 앞치마를 입고 아버지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서 가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산다는 프로그램인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가장 한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사는가가 그 가정이 천국이 되는가, 지옥이 되는가를 좌우하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장이 권위를 가지고 가족들을 위협하면 가정은 지옥 같은 가정이 되고 가장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사랑하면 그 가정은 천국으로 변합니다.

 

  가장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가 이런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즘은 가장이 아버지가 아니라 아내가 또는 자녀들이 가장처럼 군림하면서 사는 가정도 있기 때문에 서로가 다 가족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임하는가에 따라서 그 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전에 살면서 대전의 한 고등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선생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아주 특별한 삶을 사신 분이라고 생각이 되어 간단하게 소개를 합니다. 이 분이 선생님이 되었을 때 이분의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선생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스승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기에 돈벌이로 선생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촌지를 받거나 이권에 개입하지 말라고 생활비 전부를 다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은 은퇴할 때까지 봉급을 한 번도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좋은 일에 다 쓰셨습니다. 어려운 제자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애경사가 있을 때 도와주고 그런 일로 봉급을 다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장이 되었을 때 학교 매점을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영을 해서 학생들이 좋은 음식을 싸게 먹게 했습니다. 그런 위치에 가면 이권에 개입을 하거나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이익을 보게 해서 인사를 받는 일이 보통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학생들을 위해서 봉사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봉사하는 자세로 섬기는 자세로 하는 사람과 자기의 권위를 내세워 군림을 하거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가 그 직분이 무슨 계급인 줄 알고 그 직분을 가지고 군림을 하거나 이익을 챙기거나 하면 그 교회는 교회가 지니고 있는 참 모습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직분이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직분일 줄 알고 그 사명을 다할 때 그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이고 성도들이 참된 평화를 누리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 최초의 직원을 뽑는 장면입니다. 사도들이 해 왔던 구제하는 일을 대신 할 일곱 명의 봉사자를 뽑아서 세우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직분자가 어떻게 선출되어야 하고 어떤 정신으로 일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은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 구제를 할 일꾼을 뽑자고 할 때 거기 모인 온 무리들이 그 말을 기뻐하고 일꾼을 선택했습니다. 그 일꾼은 일곱 사람이었는데 스데반이나 빌립 같은 사람은 성경에 등장을 하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먼저 교회의 직분은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상 집사의 선출이라고 하고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집사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말에서 집사(執事)는 맡을 집(執)자와 일 사(事)자를 써서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교회의 일을 맡은 사람을 집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집사라는 직분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보아도 집사라는 직분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21:8절에 전도자 빌립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원문에는 일곱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하고 집사라는 말이 없습니다.  나중에 집사라는 말이 언급될 때 봉사자(διάκονος)라는 말을 집사로 번역을 하고 영어의 집사라는 말도 이 디아코노스에서 온 디큰(deacon)이라는 말로 쓰기 때문에 흔히 봉사자라는 말을 집사로 사용을 하고 여기 봉사자들을 집사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처음 직분을 줄 때 그 직분을 봉사자로 했다는 것입니다. 집사라는 것이 직분이나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봉사를 하고 섬기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이 봉사자들을 뽑은 것은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무를 하고 이 봉사자들을 뽑아서 봉사 그중에 식탁의 봉사 즉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구제를 하는 봉사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뽑힌 봉사자들이 그런 구제만을 담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구제를 하는 일에 봉사를 했다는 기록은 오히려 없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봉사한 것은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바로 뒤에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구제의 봉사가 아닌 말씀의 봉사를 하다가 순교를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4절에 사도들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라고 했는데 여기 “사역”이라는 말은 봉사(διακονία)라는 단어를 써서 말씀 봉사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말씀 사역을 하는 것도 말씀의 봉사이고 구제를 하는 것도 식탁의 봉사이고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모든 하는 일들이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 보면 직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

  이 말씀은 목사나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모든 직분자들이 이런 원리를 가지고 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득을 위해서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뭘 하라고 주장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봉사를 함으로서 본이 되라고 하십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봉사자가 되어서 봉사자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한다면 교회는 세상의 정치를 따라 서로 싸우고 빼앗는 그런 악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섬기는 자세가 아니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자기의 것을 챙기기 위해서 교회의 직분을 맡으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과 같은 싸움을 하는 곳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목사로서 복음을 전할 때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호령을 하고 여러분이 말씀 앞에 복종하도록 설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해서 안 돼 똑 바로 해야 돼 그러면 하나님께 벌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얼마나 큰 복을 받는 것인데 그렇게 밖에 못해 하고 큰 소리로 말씀을 선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전할 때 여러분을 섬기는 자세로 말씀에 봉사하는 자세로 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이 잘 되고 여러분이 행복하고 여러분이 평안을 누리도록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을 종처럼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대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말씀을 드리는 것이 섬기는 자세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늘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여러분을 섬기는 자세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여러분을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키울 수 있지만 오직 믿음으로라는 복음을 선포함으로 여러분이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목사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로나 집사나 권사나 모두가 다 성도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평안하게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직분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직분은 우리 중에 우리가 선택을 해서 세웁니다.

 

  교회가 봉사자를 뽑을 때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봉사자들을 택하였다고 했는데 여기 온 무리라는 말은 그냥 아무런 뜻이 없어 모인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온 무리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 성도들 가운데서 선택을 해서 사도들 앞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택하시듯이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선택하시듯이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의 성도들이 선택을 하여 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판단을 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실 때는 무조건 선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하거나 똑똑하거나 부지런하거나 그런 것을 보시지 않으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하나님 마음대로 그냥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창세전에 미리 최우선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좀 못난 사람도 있고 많이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선택하실 때는 어떤 선택이셨을까요? 무조건 선택이셨을까요 아니면 조건을 보고 선택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이 비교적 좀 무식하고 천한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무조건 뽑으신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큰일을 맡기실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장점들을 보시고 뽑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일꾼을 뽑을 때는 무조건 선택이 아니라 조건을 걸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선택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을 통해서 그 조건에 합당한가를 보고 뽑게 하신 것입니다. 그 조건을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그리고 칭찬을 듣는 사람을 뽑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아무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도 성령님을 통해서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나 해서도 안 됩니다. 봉사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이 갖춰진 사람이어야 그 일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뽑을 때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교회에 문제가 생깁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봉사자들을 뽑으면서도 지혜롭게 뽑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뽑은 일곱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의 이름이 다 헬라식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지만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돌아 온 사람들이고 그 중 한 사람은 아예 이방인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일꾼을 따로 뽑는 이유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비해서 구제를 받지 못함으로 인해 불평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꾼을 뽑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전원 헬라파 유대인으로 뽑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선거를 하면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뽑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헬라파 유대인들을 다 봉사자로 뽑았습니다.

 

  만약에 교회의 일꾼이 봉사자가 아니고 직책이고 계급이고 이권에 개입을 하는 자리라면 어떻게 하든지 우리 편을 뽑고 아니면 절반만이라도 우리 편을 뽑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봉사하는 자리이고 섬기는 자리였기 때문에 네 편이나 내편을 가리지 않고 봉사를 발 하고 공평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았을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서의 선거도 아는 사람끼리 친한 사람끼리 뽑습니다. 그래서 편이 갈라지고 문제가 있으면 서로 싸우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이 봉사의 직분이고 섬기는 직분임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봉사하는 일 섬기는 일 희생하는 일을 서로 하려고 하면 좋겠지만 군림하려고 서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헬라인으로의 선택은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봅니다. 오늘 선택된 봉사자들은 단순히 식탁의 봉사자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말씀의 봉사자로도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서계 만방에 전하는 사람들이 될 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시 사람들이 다 쓰고 있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능통한 언어 실력으로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봉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사람들이 교회의 직분자를 선택하면서 기본적으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자질로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봉사하는 자세로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일꾼을 선택해서 사도들 앞에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안수하여 일꾼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뽑았다고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일꾼을 세우셨다는 표시로 안수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절차도 이 절차와 방법을 사용하여 일꾼을 세웁니다. 먼저 교회의 성도들이 투표를 해서 선출을 합니다. 그리고 교육을 하고 안수식을 통해서 일꾼을 세웁니다. 그런 절차를 통해서 인간적으로 볼 때 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그 일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고 안수하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택을 하는 것은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꾼으로 뽑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핑계들을 가지고 맡은바 사명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은사들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봉사와 수고에는 반드시 그 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인용한 베드로전서 5장에 의하면 교회의 일을 맡은 자들은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남을 억지로 시키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봉사함으로 본을 보이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4)라고 하셨습니다.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즉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받는 그 축복들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수고하고 봉사한 것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의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일꾼은 봉사하는 일꾼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우리 가운데서 우리가 선택하여서 세우는 일꾼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일을 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고 그 일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상급을 주십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교회의 일꾼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희생과 헌신과 봉사가 반드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