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89)
  본문 : 행 6:7  
  제목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저희들이 살았던 시대는 정말로 변화가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세상을 비교해보면 마치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처럼 모든 것이 변한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많이 배우지 못해서 뭘 잘 모르고 살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이라도 모르는 것이 없고 네이버에 물어보면 별별 것들을 다 가르쳐줍니다. 안방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것 다 보면서 살수가 있습니다.

 

  과학도 엄청나게 발전을 해서 과거에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현실 속에서도 볼 수 있고 우리가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편리한 것들이 많은지 손가락만 까딱해도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위로부터 오는 권위에 복종만하고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면 무조건 순종을 해야 하고 부모님뿐만 아니라 이웃의 어른들이나 선배들이 뭐라고 하면 순종을 해야 했습니다. 정부나 관리들이나 공무원들에게 잘못 보였다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굽실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라고 해도 잘 못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항의도 할 수 있고 기분 나쁘면 표를 안 찍어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요즈음은 부모님들이 자식들 눈치 보면서 섬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살 수 있고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원칙이 소용이 없고 무엇이든지 내가 행복하면 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의 인권이 엄청나게 향상이 되었고 우리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고 편리한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그로인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간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눈을 돌리고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살다가 보니까 영원한 세상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나를 중심으로 살다가 보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외심을 잃어가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권위에서 해방 된다고 하다가 하나님의 권위까지 무시해버리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내가 아는 지식대로 살다가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까지 잊어버리고 무시하면서 사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살다가 보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교회에서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사람들의 말과 사람들의 경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해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가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간섭받지 말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하나님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그 중요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라고 해도 이것과는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알게 하고 그 복음을 세계만방까지 선포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살도록 하는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일차 목표였던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성공했음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도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오늘 본문 말씀에 예루살렘에 제자들도 많아지고 제사장들도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하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우선은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록을 했지만 성령님께서 기록자들의 마음을 주장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선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도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기록을 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철학이나 인간의 경험들이 더 많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그냥 폼으로 읽기만 하고 그 내용은 성경 본문과 전혀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성경의 원 뜻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타락한 본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들어야 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성령님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상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싫어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뭐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뭔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하나님도 없고 진리도 없고 원칙도 없고 자유로운 시대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마음대로 산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삽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탄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인지 인생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어가고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그 말씀의 주요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중요한 말씀이겠지만 그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고 성경말씀을 샅샅이 뒤지고 수백 독 수천 독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의 그 많은 말씀들을 기록하실 때 정말로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자 그런 여러 가지 말씀들을 하셨기 때문에 그 핵심의 말씀이 무엇인 줄 알면 성경이 쉬워지고 잘 보입니다.

 

  그 핵심이 무엇이냐고 할 때 사람마다 대답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성경말씀을 생각하고 있는 틀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먼저 배우고 잘 아는 사람은 율법을 잘 지키고 복을 받는 것이 성경이 핵심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먼저 배운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들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복이나 여러 가르침들을 좋아하고 그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처럼 로마서나 에베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먼저 배운 사람들은 당연하게 하나님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당연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신학교에서 갈라디아서를 강의하면서 갈라디아서가 이신칭의를 가장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는 서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밖에 구원을 얻을 방법이 없음을 강조하고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신칭의를 주장하는 갈라디아서가 신약성격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사실의 의미도 알았습니다.(물론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신학자에 따라서 주장하는 것이 조금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이신칭의를 강조하는 갈라디아서가 먼저 기록이 되고 다른 서신들이 그 사실을 확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이 이신칭의가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그 복음이 시작되는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사도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복음서들이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신서나 사도행전이나 복음서의 예수님까지도 이 하나님의 말씀이 구약성경의 예언에서 왔다는 것을 자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신학자들의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고 꼭 그렇다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교회에 그렇게 오랫동안 다니는 사람들이 또 성경을 그렇게 많이 연구했다는 신학자들이나 목사님들이 이렇게 쉽게 보이고 이렇게 중요한 복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것에 신경을 많이 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먼저 안 것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쉽게 깨트리지 못합니다. 그것을 패러다임이라는 말로 쓰는데 그동안 자기가 듣고 배워서 형성이 된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천동설 즉 지구가 가만히 있고 태양이나 달이 뜨고 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갈릴레오와 몇몇 사람들이 그것이 아니고 태양은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돈다는 학설인 지동설을 발표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지구가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이 거대한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공전을 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믿고 싶고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지구가 뱅뱅 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동설이 발표되고 난 후에 그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60년 동안 10명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말씀들도 구약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 유대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성전을 교회로 바꾸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버리시고 아무 권력도 없고 유대교 지도자들에 비해서 성경도 잘 모르는 사람들을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쉽게 깨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선한 삶을 살아서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힘이 든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못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배운 성경들 때문에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행함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신칭의를 쉽게 전적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먼저 가지고 있었던 다른 종교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다른 종교들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 말씀의 핵심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였다고 했습니다.

 

  점점 왕성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힘 있게 선포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점점 더 많은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이 그 무엇보다도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고 다른 일들을 봉사자들에게 맡기고 오직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한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을 줄줄이 외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약성경의 말씀들이 왕성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과거에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구약성경보다 더 힘 있게 확실하게 선포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숫자가 전 세계적으로 많아졌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성도라고 하거나 교인들이라고 하지 않고 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많아졌다고 하는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게 되었다고 하는 보고입니다. 여기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이 복음을 가지고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되는 박해를 피해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들은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됩니다.

 

  그들을 특별히 제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그들을 제자라고 특별히 호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현장에는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모임입니다. 자기들만 행복하고 자기들만 구원받고 자기들만 천국 가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모이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크게 자랑할 일은 못됩니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라고 할지라도 진정한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헌신할 줄 알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의미 없이 모인 수천 명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제사장들은 대제사장들과 달리 종교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늘 성전에 있으면서 제사를 드리는 일에 종사를 하고 그에 상당한 보수를 받지만 제사장들은 특별한 절기 때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수종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 받은 사례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제사장들과는 다르게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도에 복종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의 도에 복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이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 진리와 너무나 다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른 길을 가던 사람들이 진리의 길을 따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이 가는 길은 같은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배우고 알았던 길과는 너무나 다른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자기 이권을 내려놓을 수 없이 많은 권력을 가지 대 제사장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비교적 권력이나 이권이 충분하지 못한 대제사장들은 쉽게 그것을 내려놓고 복음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쉽게 복음의 길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부와 명예와 기득권이 큰 사람들은 복음을 따르지 못합니다. 비교적 쉽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진리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권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빈손이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쉽게 복음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심히 더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들이 이 도에 복종한 것처럼 우리 교회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점점 더 강하게 선포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이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심히 많아지고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데 쓰임 받는 제자의 수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