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91)
  본문 : 행 6:11-15  
  제목 :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11.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까지 담보로 잡히고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복음을 위해 순교로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증인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거짓 증인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거짓증인을 동원하여 진리를 외치는 참 증인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초대교회에 일곱 봉사자로 뽑혔던 일곱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게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회당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을 것이고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고 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을 동원을 해서 스데반을 붙잡아서 재판정에 세웁니다. 정상적으로 판결을 하면 스데반에게 벌을 줄 수가 없으니까 아주 나쁜 방법을 동원합니다. 사람을 매수하고 거짓 증인으로 세워서 거짓증언을 하게 해서 스데반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본문 11-13절에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을 음해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노예로 타국에 팔려갔다가 자유의 몸이 되어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세워진 회당이 있었고 그 회당에서 그동안 그들이 먼 타국에서 그리워하면서 살던 율법을 배웠을 것이고 성전에서의 제사를 드리는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스데반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율법을 부인하고 성전제사를 부인하는 말을 하고 다니니까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소용이 없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성전에서의 제사도 소용없고 예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런 말을 듣고 당황했을 것이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이런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고 그들 아예 없애버리기로 작정을 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을 봅니다.

 

1)사람들을 매수했습니다.
  사람들을 매수했다는 것은 은밀하게 가르쳐서 거짓말을 하게 했다는 뜻이 있고 우리말 번역처럼 돈을 주고 매수를 했다는 뜻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그냥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있을 때 거짓말을 합니다. 돈을 얼마나 주고 매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거짓말을 하게 하는 야비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그것도 그들의 거짓말에 의해서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되고 사형을 당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일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진리를 거역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반대하는 이런 거짓말은 스데반 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질 중에 악질적인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돈 때문에 남의 인생을 망치고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 가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작은 이익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가짜 약을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겨우 100원하는 일회용 주사기 아끼려고 재사용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C형간염에 걸리도록 한 일이 최근 우리나라 병원에서 일어났습니다. 돈 몇 푼 벌려고 다른 사람을 마약 중독에 빠지게 하여 인생을 망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돈 몇 푼 빼앗으려고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흉악한 죄는 종교를 이용해서 돈 좀 벌어보려고 진리를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런 아주 나쁜 사람들도 우리 주변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돈에 유혹을 당하면 안 됩니다. 돈에 매수를 당하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돈 때문에 그것이 악한 줄 알면서도 따라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권력자들을 충동시켰습니다.
  장로와 서기관을 충동시켜서 스데반을 붙잡아 오게 하고 법정에 세우게 했습니다.
돈과 함께 권력을 이용하여 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장로나 서기관에게 권력을 준 것은 그들에게 봉사의 직분을 맡긴 것입니다. 맡은 바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르게 살고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 필요한 권력자들을 새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권력자들을 충동을 하여서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을 억울하게 벌을 받게 하고 죽임을 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권력을 가지고 봉사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자기편을 봐주려고 합니다. 특별히 교회의 직분은 철저하게 봉사를 하는 직분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다 자기가 맡은 달란트를 가지고 성도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봉사의 직분을 큰 권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을 해서 사람들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더 잘 되게 하고 특별히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천국으로 향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교회의 직분 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3)거짓 증인을 세웁니다.
  증인이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 말을 하면 그 말이 바로 진실이 되고 그 증인의 말에 의해서 죄인이 되기도 하고 의인이 되기도 하는 아주 막중한 일을 맡은 사람이 증인입니다.
  이 증인이라는 말에서 순교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이든 자기가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그런 증인이 거짓말을 하는 거짓증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이 거짓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다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증언을 해야 하고 증인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증인이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실실 거짓말이나 하고 다닌다면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목사가 강단에서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말하고 비 진리를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전한다면 목사가 아닌 사탄의 앞잡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하고서도 그 고백에 맞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람도 거짓증인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 거짓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본문 13절과 14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자유민이 된 헬라파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1)성전에 대하여
  본문에서 “이 거룩한 곳”, “이 곳”이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최고로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거기 하나님께서 계셨고 유대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섬김이었습니다. 그런 성전을 헐어버리겠다고 하는 말은 성전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고 유대교의 존립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특별히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 대제사장이나 또 제사장들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성전이 직장이자 삶이었을 것입니다. 또 일반 백성들도 그동안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왔던 그들의 본부인 성전을 헐겠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실제로 그 성전을 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에 온갖 장사꾼들이 들어와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제사에 제물로 드릴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채찍을 만들어서 그들을 내어 쫓으시고 판을 엎으시면서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정당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요2:19-20).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지고 그 말을 스데반이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성전을 헐어버리겠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뒤 21절에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성전으로 비유를 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미리 예언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전 건물을 헌다는 말은 아니지만 성전에서의 제사를 폐지하고 성전 중심의 유대교를 폐지하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성전이 아니라 교회이고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우리 성도들은 몸이 되는 것이며 그 교회들 즉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새로운 기독교의 예배가 시작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2)율법에 대하여
  본문에서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라고 했습니다.
  자유민이 된 헬라파 유대인들의 주장은 스데반이 율법을 거슬러서 말하기를 계속한다는 것이고 그 율법의 규례들을 고치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법이고 그것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을 하고 그 율법을 온 천지에다가 써 붙이고 그 율법을 공부하고 행함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율법을 업신여기고 율법에 어긋난 말을 계속하고 또 뜯어고치겠다고 하는 것은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며 그 율법을 받아서 내려온 모세에 대한 모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의 제사가 율법에 명시 되어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성전 제사를 폐지하는 것이 곧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율법에 대해서 더 확실하게 설명을 해 주신 것을 율법을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폐지한다는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온전하게 하고 율법을 완성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용도를 완전히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지켜서 복을 받거나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고만 알았지 그 율법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인간들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과 어쩔 수 없이 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리해서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려면 이 죄에서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로 알려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3)오늘날 교회의 현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런 유대교 사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성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늘날의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생각하고 성전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성전처럼 크게 짓고 최고의 좋은 것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강단 앞에 선 사람을 거룩하게 생각합니다.  중세시대 때는 성당을 아주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그 안에서의 예배도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드렸습니다. 화려한 치장 엄숙한 진행 마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곳은 성전도 아니고 성당도 아닙니다. 그냥 예배를 드리는 장소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이 성전이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게시는 것이지 이런 장소는 함께 모인다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교회당을 화려하게 짓고 그 안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읍니다. 그 건축비를 지불하기 위해서 엄청난 헌금들을 끌어 모읍니다. 건축비에 건축할 때 빌린 돈을 갚느라고 정작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은 하지 못하고 건물에만 돈을 들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정입니다.

 

  오늘날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더 바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도 결국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천사 같은 삶을 살고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구원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15절 말씀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공회 중에 라는 말은 재판을 받는 재판정이라는 말입니다. 스데반은 고발을 당한 피고가 되어서 재판대 앞에서 재판을 받는 죄수였습니다. 그것도 이제 곧 사형을 당해야 할 그런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그런 죄인 같은 얼굴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은 얼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이렇게 붙잡혀 끌려오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담대함이 그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은 모함을 당하여 누명을 쓰고 잡혀온 신세였습니다. 성전과 율법을 폐한다는 혐의를 받고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이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권력을 동원하여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 증인을 세워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는 스데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거기 굴하지 아니하고 담재하게 복음을 전하고 참된 증이니 되는 스데반을 따라 우리도 참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