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96)
  본문 : 행 7:9-10  
  제목 :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9.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0.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 언약을 실천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언약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그 언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재 지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믿고 따르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고 따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기 어려운 언약일지라도 반드시 이루시고 마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그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놓으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믿고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믿음의 훈련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믿고 그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스데반이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변증을 하면서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이어서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요셉의 이야기를 몰라서 이렇게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요셉을 잘 알고 있었고 요셉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급박한 순간에 요셉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요셉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여러 면에서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마치 요셉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행했던 그들 조상의 모습에서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행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요셉의 이야기를 하면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깨달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배반을 하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가를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요셉의 이야기는 창세기 37장 이하에 자세히 기록 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설교 한두 편을 통하여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스데반이 요셉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략적인 이야기만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면서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이 아들 열두 명을 낳았는데 그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요셉은 열한 번째 아들이지만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아들 열두 명을 낳았는데 한 아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네 명의 아내에게서 낳았습니다. 그 네 명의 아내 중 둘은 아내의 몸종이었고 두 아내는 자매였는데 원래 야곱은 동생 라헬을 좋아해서 라헬과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조금 부족한 언니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아내로 주었기 때문에 언니와 동생을 다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사랑한 여자는 라헬이었습니다. 요셉은 라헬이 임신을 하지 못하다가 늦게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요셉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형들은 들에 가서 양을 치게 하였고 요셉은 집에서 당시에 입기 힘든 채색 옷을 입히고 특별한 사랑을 주면서 키운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이유는 야곱에 요셉을 편애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셉 자신도 형들에게 미움을 받을 짓을 좀 했습니다. 요셉 이야기를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은 꿈 이야기일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꿈 이야기가 형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창37:5)라고 했습니다. 그 꿈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37:7)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37:9) 
 
  안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형들이 그를 미워했는데 또 형들이 뭘 잘못을 하면 아버지께 달려가서 고자질을 하고 해서 미워했는데 한 술 더 떠서 꿈을 꾸고 그 꿈 이야기를 형들과 가족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데 그 내용이 정말 형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곡식 단이 서 있는데 형들 곡식 단이 자기를 둘러서서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둘러서서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꿈을 꿨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에게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형제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자기에게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꿈은 후일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 형들이 곡식을 얻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요셉은 그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었고 형들은 요셉에게 절을 하고 곡식을 얻어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까지 요셉에게 절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예표하고 있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로 인해서 미움을 받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야곱에 요셉에게 양을 치는 형들에게 가서 잘 있는지 보고오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형들을 보러 갔을 때 형들이 시기해서 요셉을 죽이기로 모의하고 웅덩이에 빠트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 마침 노예상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중에 좀 착한 형인 유다가 죽이지 말고 노예로 팔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고 은 20에 노예 상인에게 요셉을 팔아버렸습니다. 그길로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가는 곳마다 거기 함께 계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견디게 하시고 오히려 그런 어려움들을 통하여 더 좋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비록 노예로 팔려갔지만 팔려간 집이 보통 사람의 집이 아니라 애굽 왕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에다가 팔았습니다.

 

  그 집에서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니까 요셉이 하는 일이 늘 형통하였습니다. 무엇을 시켜놓으면 그 일이 잘 되고 그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종이 아니라 가정총무가 되어서 모든 일을 맡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니까 또 그 감옥에서 하는 일도 형통하여 잘 되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사람들이 보아서 알 정도로 잘 되어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의 눈에 띄게 되고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해줌으로서 애굽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가 꾼 꿈 즉 칠년 풍년 후에 칠년 흉년이 온다는 꿈을 바르게 해석을 하고 그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임을 알고 칠년 동안 풍년이 들었을 때 미리 대비를 하였고 칠년 흉년이 들었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일을 잘 했습니다.
 
  이런 요셉의 이야기는 어려움을 당하고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형통함을 누릴 수 있고 그 어려움들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서 더 좋은 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열두 아들로 이어지는 그들의 조상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난 척 해서 얄미운 동생이라고 해도 그 동생을 그렇게 죽이거나 노예를 팔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혈육을 그렇게 비참한 노예가 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인간이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불러주셨으니까 그런 사람이 된 것이지 그들 자체는 참 악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형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고 요셉이 하는 일을 도와주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을 방지해주셨고 그를 통하여 죽어갈 인간들을 구원하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

 

  스데반이 요셉의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들 조상이 요셉을 애굽에 팔았으니까 나쁜 사람들이다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기지지 말아라. 단순히 그런 의미로 말했을까요? 스데반이 요셉의 이야기를 하면서 요셉을 예수님에 비유를 하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행한 악행을 지적하고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그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트집을 받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따라다녔습니다. 유대인들이 들을 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마다 기분이 나쁘고 시기질투가 나는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처럼 단순히 자기가 조금 높은 사람이 되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그런 정도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30)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8)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유대인들이 그동안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이나 성전의 제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시고 율법이나 성전 제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따르는 길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고 구원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화가 머리끝 까지 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데모를 했고 그들의 사주를 받은 가룟 유다가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너희들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의 종으로 팔아넘긴 것처럼 너희들도 그 뒤를 따라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너희들이 팔아넘기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분이시다. 너희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심으로 오히려 그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큰일을 하신 것임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교훈
 
  그동안 우리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유리도 요셉처럼 꿈을 꾸는 자가 되자 이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요셉처럼 어려서부터 꿈을 꾸어야 한다. 그 꿈이 있어야 어려움이 와도 참고 견딜 수 있고 드디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합니다. 마음의 소원을 두고 행하는 사람이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는 그런 꿈을 가지게 하기 위한 말씀은 아닙니다. 간접적으로 그런 교훈은 받을 수 있겠지만 요셉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요셉이 예표 하는 예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요셉을 팔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이 이런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처럼 칭찬을 받을 사람이고 요셉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요셉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회개를 해야 할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정말로 필요한 요셉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 중대한 사실을 놓치게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요셉을 노예로 판 그 형들이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던 유대인들이 얼마나 악한 인간들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십자가의 은혜를 잘 모르고 십자가를 비웃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악함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는 교만한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을 때 그 어려움이 오히려 그에게 형통함이 되었고 큰일을 하게 되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을 때 사람들에게 당했던 그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는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고 그것도 영원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모든 어려운 일들이 다 형통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 믿음이 점점 더 왕성해지는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비록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한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삶은 더욱 형통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우리와 우리 가족 우리 친척 이웃들이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종으로 팔았지만 하나님계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십자가를 지셨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 십자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 십자가의 길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형통한 삶을 살게 될 줄 믹습니다. 우리의 이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함께 기뻐하며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