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08)

본문 : 마 1:21

제목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2.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사이에 비밀리에 자신을 나타내는 암호가 하나 있었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냈습니다.

 

헬라어로 물고기라는 단어가 “익두스”(ιχθυs)입니다.

이 물고기라는 단어의 첫 자로 시작되는 단어들이 Ιησουs(이에수스) Χριστουs(크리스투스) Θεοs(데오스) Υιοs(휘오스) Σωτηρ(소테르)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주이십니다.”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나 오늘날의 성도들이나 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이 성경전체의 핵심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특별하신 뜻이고 그것이 우리가 고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그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며 성부하나님과 동등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특별히 존재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구원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처럼 말씀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가 되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철수, 영희처럼 각 사람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름 뒤에다 “님”자를 붙이는 것이 문법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님”은 직책 뒤에 붙이는 접미사입니다. 사장님 부장님 목사님 장로님 이렇게 직책 뒤에 붙여서 쓰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이름이 너무나 존귀한 이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라고 부릅니다.

 

가끔 문법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원칙대로 예수라고 그냥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거나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에 배우게 될 “그리스도”는 직책에 해당되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님”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는 “님”자를 붙이지 않습니다.

 

“예수”는 개인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직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분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전해주신 말씀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정해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 “예수”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철수 영희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예수라는 이름이 많으니까 우리 예수님을 다른 예수와 구별해서 나사렛에서 난 예수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30년 동안 사신 곳이 나사렛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이름을 아주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주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특별한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름을 아주 귀하게 여겼습니다.

구약시대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만들어 주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는 아이가 좀 자라는 것을 보고 그의 특성을 따라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름을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에 이름이 천하면 오래 산다고 해서 이름을 아주 천하게들 짓기도 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아주 부르기도 좋고 그 뜻도 좋은 이름들을 지어줍니다.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은 희망사항입니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천수” “만수” 이런 이름을 붙이지만 이름대로 오래 살지 못합니다.

 

성공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대성”이나 “창성”이라고 이름을 짓지만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시면 꼭 그 이름에 맞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지어주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름이 소중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소원을 담아서 이름을 지었다면 별 소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구원에 관한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역사이래로 자칭 혹은 타칭으로 신이 되기도 하고 교주가 되기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따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그 사람은 따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신으로 믿고 따르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닌 짐승이나 사물들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양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태양을 신으로 섬깁니다.

달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달에게 소원을 빌면 된다고 달을 신으로 섬기기도 합니다.

호랑이나 사자나 소나 심지어는 뱀이나 쥐새끼까지 신이라고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특별히 생각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이요 구주로 믿고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특별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그 이름을 직접 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님”입니다.

 

 

2.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시고 뒤이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1)“예수”라는 이름의 뜻 은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이 너무나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에 유일하신 주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 이름을 예수 즉 구원이라고 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는지를 보여주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중심은 야곱과 그 자녀들이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거기 정착하여 큰 민족을 이루었으나 애굽의 노예가 되어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어서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게 해 주신 일일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던 그들을 구원하시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하시는 일을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크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 두 사람이 있는데 그 두 사람의 이름이 모세와 여호수아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져냄”이라는 뜻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아들을 낳았는데 애굽의 박해로 아들을 낳아서 기르지 못하게 하니까 상자에 담아서 강물에 흘려보냈는데 바로의 공주가 그 아이를 물에서 건져내서 아들을 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모세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지만 그 이름의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거기 정착하여 살게 한 지도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여호수아입니다.

원래 여호수아의 이름은 “호세아”이었습니다.

모세가 그를 보고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민 13:16)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다른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는데 호세아가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장차 그를 후계자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헬라어 단어가 “예수”입니다.

 

이렇게 모든 성경은 그 중심이 구원입니다.

그 구원의 모습을 여러 가지 예표로 보여주고 드디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2)자기의 죄에서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의 이름의 뜻을 구원자라고 하시면서 그 구원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주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구원이란 결국은 이 죄에서 구원을 말합니다.

노예생활에서 구원, 포로생활에서 구원, 질병에서 구원, 가난과 고통에서 구원 등을 말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면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죄를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결국은 우리 자신들도 그 영향을 받아서 흉악한 죄에 물들어져 있고 늘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다 죄가 있고 그 죄는 정말로 멸망하고 남을 정도로 흉악하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그 죄를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십자가가 내가 짊어져야 할 형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교적이고 외형적인 죄만 생각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 주초를 금하지 못한 것 교회에 충성을 하지 못한 것 이런 것들을 죄로 생각하고 그런 것만 잘하면 자신은 의롭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종교 생활 좀 잘한다고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외형적인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와 비교하면 죄도 아닙니다.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온갖 욕심들 추악한 생각들이 죄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하고 뭐든지 남보다 더 앞서려고 하고 뭐든지 자랑하고 싶어 하고 이런 저런 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죄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우리의 흉악한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3)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이라는 이름 속에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누구나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에게만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한 사람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는 이 구원에 대하여 크게 두 종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든지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부류는 우리들처럼 하나님의 택한 백성 누구든지로 제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데 그 누구든지는 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누구든지 그가 가난하든지 부자든지 잘났든지 못났든지 잘 살든지 못살든지 유색인이든지 백인이든지 상관이 없이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기 때문에 결론으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고 또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또 아무리 전도를 해도 교회를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3.오직 예수님만 구주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 즉 구속사가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중심에 우리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장 11-12절에 베드로 사도가 설교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다른 사람의 이름을 그 곁에 곁들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리아를 그 곁에 둡니다.

예수님 믿다가 잘 안되면 마리아에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나 요한이나 특별히 성자로 불리던 사람들의 공로를 예수님 곁에 둡니다.

예수님으로 잘 안되면 바르게 살다가 간 이 사람들의 공로를 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 사람들도 은근히 자기의 공로를 예수님의 이름 곁에 둡니다.

기도를 많이 했다거나 착한 일을 많이 한 것을 가지고 은근히 자랑합니다.

그 공로를 통하여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교회 수많은 성도들의 숫자를 예수님의 이름 곁에 둡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당을 교회가 하는 좋은 일들을 예수님의 이름 곁에 둡니다.

훌륭한 목사 외국에서 유학을 한 똑똑한 목사를 예수님의 이름 곁에 둡니다.

그런 것들을 은근히 자랑하며 예수님의 이름보다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 이름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이 있다고 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지 못하면 구원은 절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냥 잘난 척만 하고 자랑만 하다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이 만든 노래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의 이름 속에 있는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만 이 구원의 비밀을 알려주셨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이름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이름 속에 있는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고 했습니다.

그 비밀은 신비한 비밀 미스테리온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다 같이 들어도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이 이 예수님의 이름 속에 있는 구원의 비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자신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이십니다.

주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은 우리 택한 백성만 아는 비밀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시고 예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