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34)

  본문 : 행 2:42   

  제목 :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돌아가신지 오래 되셨지만 시인이자 국문학자이신 양주동 박사라는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다.

  스스로를 국보 1호라고 할 만큼 국문학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이분이 어려서 독학으로 영어공부를 하면서 겪었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 때는 영어 선생님이 잘 없고 영어를 아는 사람도 없어서 책을 보고 독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1인칭 2인칭 3인칭 하는 인칭대명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20리길을 달려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나는 1인칭이고 너는 2인칭이고 그 밖에 우수마발(牛溲馬勃) 즉 소 오줌이나 말똥 같은 모든 것이 다 3인칭이라고 아주 쉽게 가르쳐 주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나면 별 거 아닌데 모르면 참 답답한 것이 많다는 것이고 또 배우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공자가 한 말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라고 하면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습니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참 좋은 마음입니다.

  뭔가를 자꾸 더 배워야 더 좋은 세상을 보고 더 바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하여 가지 않으려는 게으른 사람이고 바보같이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책도 읽으시고 좋은 강의도 들으시고 뭔가 연구도 하고 생각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멋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난시간에 제가 교회에 오는 목적을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씀 드렸고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한데 그 믿음이 무엇인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한 편이 된 성도들이 무엇을 우선적으로 했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에는 오로지가 기도 앞에 붙어서 기도하기를 오로지 힘썼다고 했지만 헬라어 원어에서는 이 오로지가 사도의 가르침 앞에 붙어서 문장 전체를 수식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도 오로지 교제하며 떡을 떼는 일에도 오로지 그리고 기도하는 일에도 오로지 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됩니다.


  여기 오로지라고 번역된 단어는 프로스칼테레오(προσκαρτερέω)라는 단어인데 전심으로, 항상, 끊임없이, 헌신적으로, 골몰하여, 계속해서, 변함없이 이런 뜻으로 해석이 되는 말입니다.


  그냥 시간이 나면 배우고 안 되면 말고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이 일에 헌신적으로 계속해서 꾸준히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 중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예수님 편이 된 사람들이 왜 계속해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침 받기를 원했나.


  오늘 본문에는 그들이 ‘사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보다는 열두 사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는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열두제자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도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의 공생애동안 계속해서 함께 다니면서 하신 말씀도 듣고 행하시는 일들도 직접 목격을 한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었고 특별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족이나 명예나 재물이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고 결국은 비참한 순교를 당하면서 까지도 그들에게 맡겨준 사명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많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학력이나 그들의 경력이나 그들의 업적을 살펴보면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에게서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서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교육을 시키는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교육 저 교육 잔뜩 시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이런저런 행사들을 하는지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합니다.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지 밤잠을 안자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 목적이 사도들과 다릅니다.

  내 교회 내 명예 내 욕심을 위해서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람이 독일 점령지인 폴란드에서 공장을 인수하여 유대인들의 값싼 인력으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 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나치가 유태인들을 학살하려고 하자 1100명의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전 재산을 다 바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모았던 돈을 유태인을 구하는 데에 다 썼는데 마지막에 자신도 도망가는 처지에서도 "이 차를 팔았다면, 이 반지도 팔았다면 유태인들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처절하게 우는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이야기 하면서 울먹이던 목사가 은퇴를 했는데 자신은 차만 아니라 여러 채의 아파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들이 가르친 핵심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저것 가르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복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항상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먼저 가르치고 핵심적으로 가르치고 그리고 그 복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세상에서 좀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가르치는 교회를 좋아하고 그런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의 복음이 없다면 그런 것은 아무리 많이 배운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는 것들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그렇게 끝임 없이 가르침을 받은 것은 사도들이 헌신적으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삶을 다 내어놓고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고 그들에게서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런 가르침이 있는 교회에서 계속해서 열심히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 가르침 받기를 원했나?

 

  당시에 거기 모인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이상한 바람소리가 들리고 불이 각 사람 위에 임하고 방언으로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 말로 알아듣는 신비한 현상을 본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이 설교하는 내용도 들었고 감동도 받았고 회개하고 세례도 받았습니다.

  이제 볼 것 다 보고 알 것 다 알았다고 생각하고 예수님 믿고 살면 될 텐데 왜 계속해서 끊임없이 간절하게 헌신적으로 배우려고 애를 썼을까요?


  베드로전서 2: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갓난아기들이 태어나면 먼저 젖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젖을 먹어야 하니까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엄마젖을 찾아서 먹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갓난아기처럼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말씀 배우기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했든지 불구로 태어났든지 뭔가 잘못되어서 말씀 배우기를 싫어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을 사모하고 가르침을 받으려고 전심전력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했는데 그 사람이 말씀을 사모하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면 정성적인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기는 하는데 억지로 오거나 예배드리기 싫어하고 예배에 참석해도 말씀을 잘 안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뭘 안 먹으려고 하면 병이 들었나보다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병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도 말씀을 사모하지 않으면 병든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보고 치료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방치를 해 두니까 점점 더 먹기를 싫어하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영혼이 거듭난 영혼이라면 본능적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배우기를 힘쓴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 것은 그들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이 너무나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 유대인이거나 유대교에서 성경을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배우기는 배웠는데 엉터리로 배워서 성경이 계시하는 가장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당국에 넘겨서 처형하려고 할 때 당당하게 그를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라고 소리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엄청난 실수였고 엄청난 죄였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그들의 무지했음을 인정하고 새롭게 배우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많이 배웠다고 하지만 잘 못 배운 것도 많고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일은 물론이고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알아야 할 진리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 들은 설교 몇 편 가지고 어려서 성경학교에서 배웠던 성경지식 조금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평생 써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길로 가야 되는데 성경을 배우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되는 것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착한 일을 해야 하고 고행을 해야 하고 그래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학교에 가니까 학생 한 사람이 교회에는 착한 일 하려고 가는 것 아니에요 라고 질문을 합니다.

  교회에서 장로라고 하는 사람이 동생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데 천국에 가겠냐고 서슴지 않고 말합니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알면서도 자신이 다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합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해서 죄인이 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은 그저 이 세상에서 좀 보람되게 살고 좀 뜻 깊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핵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잘 알아서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기 위해서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계속해서 점점 더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나?


  교회에 와서 가장 중요한 진리인 십자가의 복음을 배우는 것이 제일 우선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복음만 배우면 된다면 일평생 동안 계속해서 배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배우면 늘 그 말이 그 말이고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을 아는 것만으로 배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젖먹이 어린아이는 순전한 젖을 사모하고 먹으면 되지만 장성하면 단단한 것도 먹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5:12-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초신자 때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은혜의 말씀 사랑의 말씀 축복의 말씀 이런 좋은 말씀만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늘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오래되면 다 선생의 자리에서 남을 가르치기도 해야 되는데 아이들이나 먹는 젖만 먹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먹는 음식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좋은 음식인지 무엇이 몸에 나쁜 음식인지를 구별하면서 먹습니다.

  뭘 좀 아는 사람은 부드러운 음식이 몸에 나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의 몸에는 거친 음식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잘 압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통째로 된 음식 조리를 잘 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음식이 몸에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부드러운 말씀을 좋아합니다.

  칭찬 받기를 좋아하고 위로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도 칭찬하고 위로가 되는 은혜로운 말씀들만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드러운 말씀이 우리의 영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들을 때는 좋지만 그것이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쓴 나물이 몸에 좋듯이 듣기 싫은 말이 우리에게 좋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일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입에 쓰다고 싫어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가는 이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 길을 십자가의 길이고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이 길입니다.

  때로는 시간을 때로는 물질을 때로는 명예와 생명까지도 버려야 하는 길이 이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런 험한 길을 가면서 어떻게 행복하고 즐겁게 갈 수 있는지를 알려면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될 때 성숙한 어른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금년 들어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설교가 예전보다 좀 딱딱해지고 입에 쓴 맛이 나게 들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아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는 일이 하나님께 바른 찬송을 드리고 바른 예배를 드리는 일임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그런 은혜를 알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장성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고 실천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좀 딱딱하고 쓴맛이 나는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교회에 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중에는 병든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윤리에 대한 바른 교육을 받지 못해서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어린 아이로 남는 어른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성장의 부족으로 인해서 보편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제대로 성경공부도 하지 못하고 설교도 좋은 설교를 듣지 못해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육은 계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하고 

  우리 중에 그런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가르쳐서 구원에 이르게 하고

  구원 받은 백성이 어떻게 사는가를 가르쳐서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곳입니다.


  때로는 젖먹이가 먹는 것 같은 부드러운 은혜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때로는 장성한 성인이 먹는 딱딱한 음식과 쓴 음식 같은 말씀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바른 신앙을 배우지 못해서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정상적이지 못하고 병든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배우는 일에 헌신하시고 끝까지 배우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육 간에 강건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