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소서
본문 : 시 119:129-136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100세이하의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인생살이입니다.
눈물없이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 할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슬픔 가운데 보낸 세월이 더 많지 않았겠습니까?
야곱은 인생마지막에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창47:9)고 했습니다.

성도님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각자 나름대로 인생철학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관, 자녀교육관, 물질관, 그리고 미래에 관하여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행복했습니까? 후회는 없습니까? 잘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실 계획이십니까?
혹시 인생의 안내서를 만들어서 계획대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기 시편 119편을 기록한 영감의 사도도 자기의 가는 길을 밝히기를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행보란 자기의 가는 길, 향하는 방향, 인생관, 역사관을 뜻하는 것입니다.
기자는 주의 말씀에다 자기의 향방을 정립하기를 소원했습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은 주의 말씀을 따르는 인생이 되어야 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미래에 대하여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점치는 사람들입니다.
신년이 되면 토정비결이니, 사주팔자니 하는 것들이 바빠지게 됩니다.
요즘은 컴퓨터에서 24시간 서비스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점치는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일을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나아갈 길에 관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토정비결이나 사주팔자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겠습니까?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 인생에게 확실한 미래를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말씀은
1. 나의 행보에 관한 것입니다.
나의 행보는 걸어온 길에 관한 것과 걸어갈 길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걸어 온 길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광성교회는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걸어왔습니다.
16년동안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면서 걸어왔습니다.
십자가와 복음을 제외한 그 어떤 말씀도 강단을 통하여 전달되지 아니했습니다.
양용근 순교자의 피가 더해져서 더욱더 강한 십자가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순수한 복음이 이제 결실을 맺을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순수한 복음이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 순수한 복음을 사모하며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사모해 왔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죄를 짖지 아니하고 온전히 무릎을 끊는다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베푸시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에 내가 굳게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세상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바로 영혼 구원과 세계 선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는 동안 우리의 해야 할 일은 바로 전도와 선교입니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면서까지 
이루시고자 하시는 원대한 꿈이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는데, 타락한 인생을 구원할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내려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요, 부활은 영광입니다. 고통이 없이 영광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 광성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고통가운데 겸손하게 살아 왔습니다.
기도하면 주시겠다고 했지만, 허망한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100명의 예배자를 주옵소서. 

16년만에 본당을 옮기고 하나님께 처음구하는 것이 죽어가는 생명을 전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100명의 예배자를 주옵소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제목입니다.
부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을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한것 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을 구하고 있습니다.

2. 왜 우리가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까?

1) 깨닫는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30절에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릴때마다 빛이 비춰, 우매한 자를 현명하고 총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선교사의 활동을 통하여 문맹률을 퇴치하는데에 많은 운동을 하였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하여 의료는 물론 교육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은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주의 말씀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자에게 그것을 밝히는 자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렇게 알고자 간구하였던 자가 바로 시인입니다.
그가 입을 벌리고 신음하였습니다. 즉 하늘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주기를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에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열리자마자, 우리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가지고는 우리의 영안의 눈을 뜨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꼭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따로 모아놓고 풀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주의 말씀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고 싶어도 주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소리를 누가 듣지를 못하겠습니까? 누구나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구원의 자리로 나오지를 못하고 있겠습니까?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닫는 은총을 주신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말씀을 읽으려고 하면 얼마나 그 내용이 어렵습니까? 아무뜻고 모르고 읽자니 그것이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러다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에 깨달음이 올때에 감격에 빠진적이 있지 아니합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의 글을 내용도 모르고 읽다가 제자의 해석을 듣고 그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영혼의 말씀을 읽다가 발견되어지는 장엄한 신비에 의해 가슴을 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던 열왕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온 백성과 함께 회개를 했습니다.

느헤미야 선지자는 학사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게 하고 그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울어서 오늘은 성일이니 울지 말라고 권면을 합니다.
이토록 주님의 말씀은 사단의 세력에 있던 자들을 이끌어 내어 깨닫게 하고 주님을 따르게 하는데에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전도가 어려운 것은 사단의 권세에 묶여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고 믿어 순종하기 까지 만들어야 하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왜 우리가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야 합니까?
2) 죄악에 빠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본문 133절에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죄를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로 하여금 그 죄악에 승낙하지 말게 하시며 그로 인해 잡힌 바 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해야 합니다. 죄의 지배를 벗어나야 합니다.
죄는 묘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빠지면 나오기가 힘든 것이 죄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있지 아니하면 죄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후에 그것을 은폐시키기 위한 처절한 장면을 보십시오.
그는 다시 충성스러운 우리야를 죽여야만 하는 슬픈 현실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서 이기기는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죄는 멀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소서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욥은 욥기 23장 10절에서 14절에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욥기 31장 4절에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세지 아니하시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욥의 결론은 나의 길을 오직 그가 아신다는 것과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욥의 행사를 다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갈때에 가장 편한길은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모든 것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으로 돌아올때 영혼의 고향도 찾고, 육신의 고향도 찾았습니다.
저는 광성교회가 여러분의 진정한 말씀의 고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참 평안을 얻는 시성소가 광성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곳에서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세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